이통일 `긴급구호성 인도적지원 조건없이 지속' 소신
노대통령 의사와 달라 정책 반영은 미지수
이재정(李在禎) 통일부 장관이 대북 인도적 지원의 개념을 재정립하겠다고 밝히면서 참여정부의 대북지원 원칙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달 28일 첫 정례브리핑에서 "미래지향적 화해협력 동력을 창출하
기 위해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념과 운영원칙을 새로 정립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
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제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취임한 이 장관은 그동안 북핵문제나 평화체제 구축 등 여러 현안
에 대해 입장을 밝혔지만 가장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이슈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분
석이다.
특히 이 장관은 2일 신년사에서 "북한의 빈곤에 대해 3천억불 수출국으로서, 세
계경제 10위권 국가로서, 또 같은 민족으로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며 북한의 식량
난 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한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이같은 높은 관심은 재야 시절이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재직 시 이 장관의 행보를 감안하면 그리 놀라울 것은 없지만 미묘한 시
기인 만큼 다른 이유도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작년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쌀 차관.비료 지원이 유보되면서 단
절된 남북대화를 풀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관측이 있다.
이 장관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인도적 지원 원칙 재정립과 관련, "수해 때
긴급구호로 지원한 것과 차관 형식으로 지원한 것 등을 어떻게 성격 구별해 정리하
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이라도 긴급구호성, 차관형식, 개발지원 등으로 성격을 세분화해 긴
급구호성 지원 등은 어떤 경우라도 지속돼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통일부는 이미 정부와 시민단체를 통해 이뤄지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전
반적인 점검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 장관은 국제기구인 WFP(세계식량계획)와 약속한 쌀 지원과
긴급구호성인 북한 수해 지원이 중단된 것에 상당한 아쉬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비료 지원을 재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사일 발사 이후 유보된 쌀과 비료를 분리, 차관형식인 쌀 지원은 6자회담의
진전이 없는 한 계속 묶어두지만 무상원조로 상거래 성격이 옅은 비료는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을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장관의 이같은 구상이 정책으로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이는 우선 `평화도 인도주의인데 미사일 발사가 이를 위협했으니 인도적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대북 쌀.비료 지원을 유보했던 전임 이종석(李鍾奭) 장관의
논리를 뒤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난 1일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대
북 쌀.비료 지원 문제에 대해 "핵문제에 진전이 있으면 우리가 그런 대북지원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겠나"면서 "우리 정부가 쌀과 비료의 대북지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우리와 국제사회가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요청을 강력히 했음에도
핵실험을 한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의지 있더라도 실천하기 어렵다"고 분명히 했다.
더욱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민주평통 행사에서 "지금 대북 지
원을 끊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 또 무슨 상호주의 원칙, 이런 원칙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다, 그 판단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장관이 인도주의 원칙을 내세워 정부 내에서 지원 재개를 관철시킬
여지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현재로선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이재정 장관의 개인 소신과 정부 정책 사이에 적잖은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한편에서는 나오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이 장관의 대북지원 관련 발언을 남북정상회담과 연계시키려는 시
각도 있다.
주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일부 보수세력에서 제기되는 지적으로, 남북정상
회담 성사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대규모 대북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3일 "남북정상회담이나 구체적 대규모 대북지원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평화와 통일이라는 한반도 미래를 설계할 때 북한 주민
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같은 민족으로서의 도덕적 책임감을 강조한 것"이라
고 해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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