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외곽에서 수개월간 불꽃경쟁을 벌여왔던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29일 처음으로 여의도 한 중식당에 모여 공정경선과 결과 승복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 등 이른바 `빅3'와 원희룡(元喜龍) 의원이 강재섭(姜在涉) 대표 주선으로 최고위원단 등 당 지도부와 만찬 간담회를 가진 것.
이날 대권주자들의 `저녁식사'는 새해부터 더욱 치열해질 경선레이스를 앞두고 페어플레이를 약속하는 자리였으나 일부 주자가 유력후보의 `줄세우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초장부터 무너졌다.
나경원(羅卿瑗) 대변인은 간담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강 대표가 '지도부와 최고위원들이 (공정경선의) 중심에 서고 (각 캠프에서) 당직자들을 안 끌어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고 이에 모든 대선 주자들이 동의하는 눈빛을 보이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 시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으나, 언론에 공개됐던 회의 초반의 분위기는 '전운'이 느껴질 정도로 냉랭했다.
회의 참석자들 대부분이 "당 지도부의 출제 의도대로 '모범답안'이 나왔다"고 말한 것도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낸 반응일뿐 속으로는 상당한 경계심을 느낀 듯 했다.
강 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분골쇄신(粉骨碎身)', 멸사봉공(滅私奉公) 등의 표현을 써가며 "대선 후보들을 적극 지원.보호하고 공정 경선 관리 및 경선 불복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면서 "대선 주자들도 당의 노력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단결해서 국민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희망을 꼭 드렸으면 좋겠다"며 "더 노력해서 많은 지지 받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고, 이 전 시장은 "국민에게 심려 안 끼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권 창출을 해야 한다"며 "당도 잘 하겠다고 하니 당을 믿고 당이 중심이 됐으면 싶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 `우호적'이었던 분위기는 손 전 지사가 작심한 듯 원고를 꺼내 읽어내려가면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손 전 지사는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줄세우기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강 대표의 말씀대로 단합을 강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 의구심이 간다"며 "일부 최고위원이 줄세우기에 앞장 서는 현실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당 지도부가 앞장 서서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 광역기초의원까지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다"며 "구태정치가 되풀이되면 대선 실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전 시장과 가까운 이재오(李在五) 최고위원을 겨냥, "문제의 최고위원은 당원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특정주자의 참모장 역할을 내놓고 하든지, 최고위원을 하든지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를 두고 지지율 답보 상태에 있는 손 전 지사가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강수'를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당내 대권주자간 경쟁이 본격적인 과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손 전 지사의 발언이 끝나자 강 대표는 당황한 표정으로 "누가 써준 게 아니라 직접 썼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 전 시장은 어색한 미소를 띄며 "겁나네"라고 받아넘겼다.
이어 발언에 나선 원 의원은 "필요하다면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치열한 경쟁 조건을 당 지도부가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뒤 "이 자리에 참석한 후보들이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 힘을 합쳐야만 대선에서 이긴다"고 강조했다.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대선주자들이 전한 간담회 분위기도 서로 달랐다. 이 전 시장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말했지만 옆에 있던 손 전 지사는 "화기열렬했다"고 전했다.
이 전 시장은 손 전 지사의 `특정 캠프' 발언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고 손 전 지사는 자신의 발언 배경를 묻는 질문에 "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공정경선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기자들이 공정 경선과 결과 승복에 대해 묻자 "당연한 것을 왜 계속 물어보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이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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