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수 키운 상추를 뜯어 소박한 점심을 먹으면서 시골집 마당을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툭', '소라게 엉금이' 등을 쓴 동화작가 신정민(39)씨가 1년여의 시골 생활을 담은 어린이 대상 수필집을 펴냈다. 딸 홍비(13)양이 직접 그림을 그린 '행복한 느림보'(어린른이)다.
신씨 가족은 지난해 9월 '천천히 사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 도시를 떠나 전북 김제의 한 농촌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홍비양이 5학년, 아들 의석(8)군이 1학년 때였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경쟁을 하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게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초보농사꾼 가족에게 지난 1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말리던 고추의 3분의 1이 썩어버리는 '참사'가 벌어지자 윗집 할머니가 나서서 수습을 하기도 했고 도시에서처럼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살다 "거 왜 대문은 꼭꼭 닫아놓는겨?"하고 동네 어르신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집 대문 뿐 아니라 마음까지 활짝 열고 나니 시골살이가 더 없이 푸근해지더란다. "이거 좀 잡았는데 끓여먹어"하며 물고기를 한 양동이나 갖다주는 따뜻한 이웃도 있고 봄이 되자 집 앞 텃밭에 배추꽃, 열무꽃, 시금치꽃 등 채소꽃들이 활짝 피어 이들을 기쁘게 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집 뒤편 언덕에 올라가 '비료포대 눈썰매'를 탔고 눈밭에서 실컷 뒹군 뒤에는 흙방 난롯가에서 고구마며 은행 열매, 왕밤을 입이 시커매지도록 구워먹었다.
이밖에도 아이들의 시골학교 생활, 잡초 뽑기, 염소잡이 소동 등 책에는 생기 넘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꼬마화가' 홍비양이 직접 그려넣은 삽화들도 친근하고 재치가 넘친다.
"아파트에 살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도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고작 30여 세대가 살아도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요. 누구네집 밥숟가락 수까지 알 정도로 활짝 열어 놓고 살아서 그런가봐요."
어린이들에게 천천히 사는 즐거움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어서 책을 냈다는 신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오래 이곳에 살면서 많은 동화를 천천히 쓰고 싶어요. 그것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죠."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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