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삼성 이건희(李健熙), 현대차 정몽구(鄭夢九), LG 구본무(具本茂), SK 최태원(崔泰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에 앞서 별도로 마련된 환담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는 강신호(姜信浩) 전경련 회장, 손경식(孫京植) 대한상의 회장도 참석했고, 청와대측에서는 이병완(李炳浣) 비서실장, 변양균(卞良均) 정책실장, 윤대희(尹大熙) 경제정책수석이 배석했다.
노 대통령이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이들 총수들과 접견 형식으로 이 처럼 만남의 자리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5월 처음 개최된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 때 이들 4대 그룹 총수를 한 자리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수십명의 다른 기업대표들도 함께 참석한 행사여서 별도의 접견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4대 그룹 총수와의 환담은 참여정부 임기 1년여를 앞두고 재벌 또는 대기업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으면서 정작 본 행사인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 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날 환담은 노 대통령이 접견실로 입장하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날씨, 건강 등을 주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노 대통령이 입장하며 "차 한잔씩 하셨습니까"라며 인사를 건네자 이건희 회장이 "예, 하고 있습니다"라고 화답했고, 이어 "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죠"라며 날씨를 화제로 삼은 노 대통령은 강신호 회장에게 "해외갈 때마다 고생하시죠"라고, 정몽구 회장에게는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라며 관심을 표했다.
인왕실로 이동, 자리에 앉은 후 노 대통령은 "올해 기업 상황은 어땠느냐"라고 질문을 했고 이를 받아서 이 회장이 "조금 힘들었다. 환율, 고유가, 불경기 등 때문에..."라며 어려운 경제 여건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환율이 걱정이죠"라고 공감을 표시하자 이 회장은 "예"라고 답변했고, 환율문제로 고전중인 정몽구 회장은 미리 준비한 메모지를 꺼내 "현대차는 75%가 수출이다. 환율이 급락하면서 손익면에서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고 수출 주력 기업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날 환담은 오후 3시부터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가 열리기 전까지 30여분간 이어졌다.
4대 그룹 총수들과의 별도 회동은 노 대통령이 참모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마련됐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일단 모양새가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재벌 총수와의 '독대' 형식의 만남은 피했지만, 간헐적으로 재계 총수들과 회동을 가진 적은 있었다.
취임 첫해 6월1일 청와대 인근 삼계탕집으로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회장,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손길승(孫吉丞) SK그룹 회장 등 미국 방문 때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던 재계인사들을 초청, 오찬을 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구본무 LG 회장 부부를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별도의 배석자 없이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만찬 자리를 가졌고, 같은 해 4월17일 터키 순방시 이스탄불 인근 이즈미트 현대자동차 현지공장을 방문한 후 현지 영접을 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단독 오찬회동을 가진 바 있다.
앞서 노 대통령은 3월 11일에는 청와대 본관앞에서 열린 현대차 '투싼' 수소 연료 전지차 시승식에 참석, 정몽구 회장과 함께 차를 타고 청와대 경내를 도는 '이벤트'도 가졌다. 또 같은 달 13일에는 삼성그룹 리움 미술관을 방문, 관람을 마친 후 이건희 회장과 부부동반으로 15분 가량 별도로 만나 환담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해외순방 때나 국내 시찰중 대기업 공장을 방문했을 때 총수들을 만난 적도 몇 차례 있다.
2003년 7월 중국 방문 당시 베이징(北京) 인근 현대차 현지공장, 10월4일 인도 방문 당시 LG 전자 인도 현지공장을 방문했을 때 정몽구, 구본무 회장의 안내를 받았고, 올해 4월27일 LG필립스 LCD 파주공장준공식, 10월27일 충남 당진 현대 일관제철소 기공식 참석 때도 각각 두 회장을 행사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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