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은 CNN이 `가장 대통령답지 않다'고 표현했듯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지명을 받아 대통령직을 떠맡음으로써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다.


미국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서 지난 1974년 8월 제38대 대통령 자리에 오
른 포드 전 대통령은 그러나 이후 2년반의 임기동안 "나는 포드이지 링컨이 아니다"
고 외치며 안정적인 행정부를 이끌어 미국이 깊은 상처를 동여매고 치유의 길을 걷
도록 하는데 앞장섰다.


개방적이고 직설적인 그의 이미지는 은폐적이고 음모적인 닉슨과 극명하게 대비
됐는데, 이런 그의 성향은 25년간의 의정생활에서 몸에 익었다는 평가다.


1913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2주만에 생부와 결별한 어머
니를 따라 제2의 고향인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성장하며 공부와 스포츠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경제와 정치를 전공한 미시간대에서 풋볼팀 선수로
맹활약, 팀을 대학선수권 정상에 올려놓았으며 프로풋볼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
치고 예일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면서 풋볼팀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때 해군에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나자 소령으로 예편, 고향인 그
랜드래피즈로 돌아와 변호사 실무를 익히던중 공화당원이 됐으며 계부의 격려속에
처음 정계에 발을 디딘 1948년 미시간주 제5구역 연방 하원의원 선거를 불과 수개월
앞두고 엘리자베스 블루머와 결혼해 자녀 넷을 뒀다.


상원 및 주지사에 도전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1973년까지 늘 60%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12차례 연속 하원 의원에 당선된 그는 하원 공화당협의회 의장 등 여
러 직책을 무난하게 소화했으며 마침내 1973년 10월 세금 문제로 사임한 스피로 애
그뉴 부통령의 뒤를 이어 부통령에 취임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이처럼 전임자들의 불명예 퇴진으로 생긴 부통령과 대통령직
에 연달아 취임함으로써 `가장 대통령답지 않다'는 불명예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외교 문제에서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공산화를 지켜보며 강력한
미국의 힘을 유지하려 애썼다.


특히 중동의 새로운 전쟁 발발을 막기위해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동시에 지원하
며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새로운 미.소 핵무기 감축

에 합의하기도 했다.


2차례 암살 기도에서 벗어나기도 했던 그는 1976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후보에 도전했지만 조지아주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에 패했고 1977년 1월 20일 짧은
대통령직 임기를 마감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익상 특파원
isjang@yna.co.kr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