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뉴탐사 측과 특약으로 뉴탐사의 단독보도'를 그대로 전재하는 것입니다.
https://newtamsa.org/news/8wVpsO
31일 오후, 주요 언론사들이 일제히 같은 소식을 전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발단이 됐던 첼리스트 A씨가 강진구 기자와 유튜버 등 3명을 경찰에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노컷뉴스, 아시아경제, 조선일보, TV조선이 잇따라 보도에 나섰다.
첼리스트 측 법률대리인인 이제일 변호사는 서울 서초경찰서에 강요미수와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인 측은 "지난 26일부터 강진구 기자 등이 유튜브 방송을 통해 'A씨가 증거 조작을 했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고 밝혔다.
초기 보도는 일방적이었다. 4개 매체 모두 첼리스트 측의 주장만 담았을 뿐, 피고소인인 강진구 기자의 입장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강진구 기자가 이미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고소인 측의 주장이 기사의 전부였다.

뉴탐사가 그동안 제기해온 핵심 쟁점, 즉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1200개 네비게이션 파일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에 대한 언급이 초기 보도에는 전혀 없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동 기록 등 구체적인 증거 오염 의혹은 기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고소 사실만 전달하고, 정작 고소의 배경이 된 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는 빠진 것이다.
오후 7시를 전후해 반전이 일어났다. 4개 언론사의 기사가 모두 '수정'됐다. 노컷뉴스는 오후 7시5분, 아시아경제는 오후 8시12분, 조선일보는 오후 6시37분, TV조선은 오후 7시35분에 각각 기사를 수정했다. 기사 말미에 한 단락이 추가됐다. 4개 매체 모두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1200개 네비게이션 파일을 분석한 결과 9.8km를 1분에 이동한 것으로 나오는 등 명백히 조작된 사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다만 누가 이 디지털 증거를 조작했는지는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강진구 기자의 반론이 뒤늦게 추가된 것이다. 강진구 기자가 고소 보도 직후 4개 언론사에 모두 연락을 취해 반론을 요청한 것이다. 언론사들은 이를 받아들여 기사에 강진구 기자의 입장을 추가했다.
9.8km를 1분에 이동. 시속으로 환산하면 588km다. 서울 시내 도로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속도다. 이 수치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디지털 증거 파일에서 직접 추출한 데이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실 뉴탐사는 고소 사실 보도 하루 전인 10월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첼리스트 휴대폰에서 추출된 1200개 네비게이션 파일을 분석한 결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동 기록들이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이 기자회견을 보도하지 않았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202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의겸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제기했던 이 의혹은,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진술하면서 사실무근인 것처럼 다뤄져 왔다. 이미 '거짓 의혹'으로 보도했던 사안을 다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전문 영역의 기술적 주장을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뉴탐사는 9.8km를 1분에 이동한 기록 외에도 여러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동시간대에 여러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GPS 좌표, 휴대폰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Windows 방식의 중복 파일명 생성 패턴 등이다. 뉴탐사 측은 이러한 조작이 특정 장소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이었지만, 언론들은 침묵했다.
첼리스트 측의 고소가 상황을 바꿔놓았다. 고소장 제출은 명백한 '사건'이었고, 특히 이제일 변호사라는 공인된 법률대리인을 통한 공식 절차였기에 언론들은 이를 보도할 명분을 갖게 됐다. 정치적 부담이나 기술적 검증의 어려움과는 무관하게, 고소라는 사실 자체가 뉴스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뉴탐사가 반론권을 행사하면서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국회 기자회견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던 '디지털 증거 조작 의혹'이 4개 주요 매체를 통해 동시에 보도되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기사 말미의 한 단락에 불과했지만, "9.8km를 1분에 이동", "명백히 조작된 사실이 무더기로 확인" 등의 구체적 내용이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기록이라는 것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소 소식을 전하려던 기사가, 오히려 디지털 증거의 신뢰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첼리스트 측은 강진구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문제 삼는 바로 그 주장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강진구 기자는 반론에서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다. "누가 이 디지털 증거를 조작했는지는 수사를 통해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라는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첼리스트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증거 자체의 오염 사실에 초점을 맞춘 전략으로 보인다.
누가 조작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법정에 제출된 디지털 증거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점이다. 증거가 조작됐거나 오염됐다면, 그 증거를 바탕으로 한 수사 결과와 재판 과정 전체의 신뢰성이 흔들린다. 왜 이런 조작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형사사법 시스템의 근간인 증거의 무결성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만약 디지털 증거에 실제로 조작 흔적이 있다면, 이 사건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디지털 증거의 신뢰성 문제가 공론화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검증이다. 뉴탐사가 제시한 분석 결과가 타당한지, 아니면 데이터 해석상의 오류가 있는지는 독립적인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확인돼야 한다. 9.8km를 1분에 이동한 것으로 나타나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것이 정말로 조작의 증거인지, 아니면 다른 기술적 이유로 설명 가능한지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디지털 증거의 무결성 문제가 제기된 만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나 차기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룰 가능성도 있다. 증거 수집, 보관, 분석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는지, 경찰의 디지털 포렌식 과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일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성찰도 요구한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기술적 검증 문제를 외면한 것은, 언론의 감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증거의 신뢰성은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검증돼야 할 객관적 사실의 영역이다.
"9.8km를 1분에 이동"이라는 한 문장이 이제 독자들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이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증거의 무결성은 형사사법 시스템의 근간이다. 법정에 제출된 디지털 증거에 실제로 조작 흔적이 있다면 단순히 한 사건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포렌식 과정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다. 이제 공은 수사기관과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 그리고 국회로 넘어갔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검증을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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