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진실 중심 한일우호파’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위안부사기청산연대(공동대표 김병헌·이우연·주옥순 등, 이하 청산연대)가 15일 정오, 광화문 위안부상이 위치한 인도에서 ‘위안부사기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기 위한 ‘위안부사기청산연대 연합집회’를 개최했다.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집회는 국민의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건너편에서는 정의연 등 반일좌익 단체들의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이날 청산연대 쪽의 ‘수요맞불집회’가 더 성황을 이뤘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는 국민계몽운동본부,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엄마부대, 신자유연대, 한미동맹지원단, 한미일동맹강화국민운동본부 등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20여 명 남짓 모인 정의연을 숫자로 압도했다.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주익종 이승만학당 교사 등도 현장에 함께 했으며, 락TV 최락 대표는 색소폰 연주와 열창으로 행사의 흥을 돋우었다.
주옥순 위안부사기청산연대 공동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이 30여 년간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시켜 왔다고 지적한 후 “윤미향 구속, 정의연 해체”를 외쳤다. 주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특히 위안부 사기극의 핵심으로서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의 대표였던 윤정옥 씨를 지목하고 나섰다.
주 대표는 현장에서 윤정옥 씨와 김일성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주 대표는 “윤정옥은 과거 한명숙과 함께 김일성을 만나고 온 사람으로 김일성의 은총을 받고 대한민국에 와서 정신대·위안부 여성들을 31년 동안 이용해 역사왜곡을 해 왔다”며 “윤정옥의 실체를 알아야만 지금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으며, 위안부 운동은 일본에서 요시다 세이지가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윤정옥이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상에 선 한민호 공자학원실체바로알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한미일 동맹’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방패라고 규정하고 “일본을 빼면 한미일 동맹이 힘을 쓸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좌익들이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실제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건 2017년 중국을 방문했던 문재인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2017년 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공산당을 방문해서 ‘3불 정책(한미일동맹 거부, 사드 추가배치 거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참여 거부)’에 대한 밀약을 했다면서 “그 대가로 중국은 광화문 촛불난동에 자금을 지원하고 유학생을 동원했으며, 3천만 명이 넘는 우마오당 댓글부대를 동원해서 인터넷 여론을 민주당에 유리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위안부 사기극의 배후에 북한과 중국 공산당이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결의안이 통과되는데 힘썼던 마이크 혼다(전 하원의원), 그리고 러셀 로우(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의 전 보좌관) 등이 중국 공산당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도 소개했다.
다음 연설자는 국민계몽본부 최세운 본부장이었다. 최 본부장은 반일종족주의를 조장하는 위안부 동상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까지 이런걸 세우는 건 우리 선조들이 무능했다고 광고하는 일이고 창피한 일”이고 비판했다.
한미동맹강화국민운동본부 김병규 총재는 “한미일 동맹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중국, 북한, 러시아에 의해 압도당하고 침략당할 것”이라며 북한과 중국이 위안부 운동을 통해서 한미일 안보를 깨고 대한민국, 대만, 일본을 모두 공산화시키려고 한다고 경고했다.
다음 연사는 이날 입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집회 장소로 달려온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였다. 니시오카 교수는 동료 학자인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 카츠오카 칸지(勝岡寛次), 에자키 미치오(江崎道朗), 나가타니 료스케(長谷亮介)와 이날 집회에 참석,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1991년부터 일본 좌익들이 퍼뜨리기 시작한 ‘위안부 거짓말’과 싸워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후 “위안부 거짓말이 일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국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일본의 좌익들이 위안부 거짓말을 만들어 한국에 수출했고, 한국에서 그걸 수입해 이용한 사람이 윤미향과 윤정옥”이라고 설명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1991년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이 대대적으로 위안부 관련 날조보도를 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당시에 일본 국민들이 모두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에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신이 아사히신문의 과거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보도가 조작이라고 주장했다가 아사히 기자로부터 소송을 당했으나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간 법정승부 끝에 결국 승소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선 “이런 사실까지도 한국에서 꼭 수입해주셔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어 답사자로 나선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약 2년 전 같은 장소에서 사상 최초 안티반일-한일우호 집회를 했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당시 반일종족주의와의 이 싸움은 일본의 자유보수 세력과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 연구위원은 “여기 오신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님을 비롯해서, 우리가 일본분들과도 함께 싸워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지금 니시오카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에서 만들어진 ‘위안부 거짓말’과 ‘전시노동자 거짓말’을 멍청한 한국의 좌파 연구자라는 사람들이 그대로 수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반일을 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세력은 윤미향과 북한이며, 북한으로부터 가장 위협을 받고 있는 쪽은 한국과 일본이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반(反)윤미향, 反정대협, 反위안부동상 운동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우리 한국인과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이어 일본 측 외빈들과 손잡고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김병헌 소장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의연이 말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든 범죄, 즉 전쟁범죄라는 뜻”이라며 “하지만 정의연에서 주장하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 ‘전쟁범죄 피해자’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호에 명시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지적했다. 즉, 일본군위안부피해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인데, 하지만, 위안부는 포주의 모집대상이지 국가 공권력의 동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
김 소장은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 위해서는 출국 전에 반드시 포주와 계약을 맺은 다음 관할경찰서에 직접 출두하여 오늘날 비자에 해당하는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으며, 현지에 도착해서도 현지 영사관 경찰에 출두하여 친권자승낙서, 호적등본, 인감증명서, 영업허가원서, 영업인조사서와 함께 사진 2장을 제출하고 영업허가를 얻어야만 했다고 사실관계를 설명했다. 결국 일본군은 위안소를 관리·감독을 할 뿐 관련 법령도 없이 민간 여성을 강제로 동원할 수도 없었고, 그런 사례도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그는 “당시 조선은 일본의 점령지가 아닌데다 조선인은 일본 국민이었고, 위안소는 점령지 여성에 대한 납치, 강간, 살해와 같은 전쟁범죄 방지를 위해 설치·운용된 합법적 매춘 공간이었다”며 그런 곳에서 일본군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돈을 번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범죄 피해자냐고 반문했다.
마지막 연사로는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가 나섰다. 김 대표는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반일시위를 벌이는 친중반일 세력을 “손톱 밑 가시”라고 규정하고 민간(자유우파) 차원에서 그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 말미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다음주 수요일부터는 위안부상을 중심으로, 바로 옆 왼쪽에서 집회를 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번 집회에서 발표된 성명서 전문.
[성명서] 국회는 위안부사기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오늘날 국내 진영 간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고 대외적으로 한일 관계를 파탄지경에 빠트린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중심에는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있다. 1990년부터 위안부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정신대 문제를 내걸고 30년 가까이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2018년, 뜻도 모호한 정의기억연대로 단체명을 바꾸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정의연이 말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든 범죄, 즉 전쟁범죄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의연에서 주장하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 ‘일본군 성노예’, ‘전쟁범죄 피해자’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닌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한 바와 같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이다. 하지만, 위안부는 포주의 모집대상이지 국가 공권력의 동원 대상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 위해서는 출국 전에 반드시 포주와 계약을 맺은 다음 관할경찰서에 직접 출두하여 오늘날 비자에 해당하는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으며, 현지에 도착해서도 현지 영사관 경찰에 출두하여 친권자승낙서, 호적등본, 인감증명서, 영업허가원서, 영업인조사서와 함께 사진 2장을 제출하고 영업허가를 얻어야만 위안부로 영업할 수 있었다. 일분군은 위안소를 관리·감독을 할 뿐 관련 법령도 없이 민간 여성을 강제로 동원할 수도 없고 그러한 사례도 없다.
둘째, 1966년 대법원 판례에 “일상생활에 있어서 위안부라 함은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 바와 같이 위안부는 1년 내지 2년의 계약기간 동안의 임금을 미리 받고 포주와 계약을 맺은 다음 계약서에 명시된 곳에서 매춘 영업을 한 직업여성이었다.
일본군은 위안소 규정에 따라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한 고객으로 돈이 있으면 이용하고 없으면 이용할 수 없었다. 위안부도 돈을 버는 직업인이었기에 돈을 많이 번 위안부는 루비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사기도 하고, 고향으로 학비며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또 프랑스산 녹색 레인코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랑군 시내를 씽씽 달리며 젊음을 만끽한 위안부도 있었다. 그런 여성들이 어떻게 성노예란 말인가?
셋째, 1998년 게이 맥두걸 UN인권위 보고서에는 전쟁범죄에 대하여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행위가 국제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적군이나 점령군에 의해 자행되었을 때”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국제분쟁이나 무력충돌 지역에서 적대국의 여성을 납치· 강간· 살해하는 등의 행위가 바로 전쟁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일본의 점령지가 아닌데다 조선인은 일본 국민이었다. 더구나 위안소는 점령지 여성에 대한 납치, 강간, 살해와 같은 전쟁범죄 방지를 위해 설치·운용된 합법적 매춘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일본군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돈을 번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범죄 피해자란 말인가?
정의연은 여성가족부에 ‘생활안정지원대상자’로 등록된 240명의 소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중 일본군에게 강제 동원된 여성,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한 여성, 일본군에 의한 전쟁범죄 피해자가 있다면 단 1명이라도 제시해보라! 결코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문제는 정의기억연대와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이력의 불쌍한 노인들을 앞세워 국민을 속이고 세계를 속인 국제사기극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국회에서 정의연과 여가부의 천인공노할 위안부사기극을 철저히 조사하여 그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는 반드시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