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지난 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을 7(찬성)대 4(반대)로 가결했다. 야당 측 이사 4표에 여당 측 이사 3표가 더한 결과다. KBS 이사회가 해임제청안을 의결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지만 KBS 이사회의 결정을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언론노조 등으로부터 보도개입 등의 이유로 사퇴 압박을 받던 길환영 사장이 이처럼 사실상 해임되자 양대 노조가 업무에 복귀하는 등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촉발한 KBS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BS의 문제는 길 사장이 해임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KBS 이사회는 해임 제청안의 사유로 △직무 수행능력 상실 △세월호 보도 논란과 공적 서비스 축소 △경영 실패 등을 지적했지만, 김 전 보도국장의 보도개입 폭로 등이 핵심 원인이 된 만큼 이런 논란 끝에 길 사장을 해임한 것은 보도의 공정성 문제와 연결돼 노조에 명분을 준 꼴이 됐다. 즉, KBS 이사회가 노조의 ‘보도개입 주장’을 인정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길환영 해임이란 쉬운 길 택한 KBS 이사회, 언론노조에 힘 싣는 악수뒀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있을 사장 선임에서 노조는 더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언론노조KBS본부는 “길 사장의 퇴진은 우리 싸움의 목적지가 아니”라며 “길 사장을 비롯한 수많은 부역 간부들이 정권에 갖다 바쳤던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지난한 싸움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논의돼 온 특별다수제를 비롯해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 넘는 독립적인 사장을 선임하기 위한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 사내외의 모든 세력의 지혜를 모아나가고, 그 결과를 정치권에 당당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의 입맛에 맞는 KBS 사장 선임이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야당 등 진보좌파 진영이 요구하는 특별다수제 관철을 위해 총력투쟁을 각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게 되면 길 사장 이후 KBS 보도는 더욱 좌클릭 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노조와의 마찰을 기피하는 정부여당의 무기력한 방관 속에 이들에 유화적인 인물이 새로운 KBS 사장으로 낙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조와 KBS 사장이 야합을 하든 말든 표면적으로 KBS가 시끄럽지 않길 바라는 중도·기회주의 성향의 이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길 사장 해임에 여당 측 이사 3명이 동참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KBS 이사회가 노조 압박과 공세에 굴복한 꼴...노조와 야합할 허약한 사장 만들 가능성도”
만약 노조에 비판적인 인물이 선임될 경우에는 노조는 또 다시 총파업 등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총파업으로 길 사장 해임이란 과실을 맛본 노조로서는 한층 더 강도 높은 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KBS 사태가 한층 더 늪으로 빠지게 되는 셈이다. 길환영 사장의 해임은 KBS 사태를 더욱 키우는 촉매제가 되는 꼴이다.
자유언론인협회 박한명 사무총장은 “노조의 궁극적 목적은 길환영 사장 제거가 아니다. 단지 KBS 장악을 위한 투쟁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면서 “KBS 이사회가 결국 노조의 압박과 정치공세에 굴복하여 길 사장을 해임한 꼴이 됐다. 길 사장을 이런 식으로 해임한다면 KBS를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과 정치투쟁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사무총장은 “앞으로 어떤 인물이 KBS 사장으로 올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는 싸움 끝에 앉힌 새 사장에게 노조와 야당은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배포가 있고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인물이 새 사장이 되지 못한다면 그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언론노조의 눈치를 보다가 노조와 야합할 가능성이 크다. KBS의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여당이 과연 이 현실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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