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원로가 출타한 사이에 우리 동네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회창이 11월 15일 목요일 오후, 이곳 노량진에 들렀다는 것이다. 노량진서 선거유세를 펼친 대한민국 유명 정치인으로서는 내 기억으로 이회창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강금실이었고, 두 번째는 정동영이었다.
이들 중에서 이회창이 동네 안쪽으로 가장 깊숙이 진입했다. 신기하면서도 씁쓸한 노릇이다. 서민대중을 위하겠다고 떠드는 진보개혁세력 인사들은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의 아늑한 회의실에서 부유하고 출세한 명망가들과 어울리는데, 수구꼴통이라 손가락질 당하는 이회창이 노량진의 구석진 뒷골목까지 잠바차림으로 ‘진취적’으로 쳐들어와 평범한 청년실업자들과 부대꼈으니. 와서 수험생들을 상대로 고시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비결을 전수했대나.
이회창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과 함께 끼니를 해결한 국수집은 나도 가끔씩 이용하는 장소다. 좀 허름하기는 하되 따끈한 멸치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원래의 가게이름은 ‘칠갑산 국수집’이었다. 최근에 주인아줌마가 바뀌면서 상호 역시 덩달아 변경됐다. 시설과 조리방법에는 특별한 변함이 없다.
브랜드의 관점에서 상호변경은 실패한 결정이었다. 그 국수집이 장사가 잘된 배경에는 철두철미하게 면 종류의 음식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었다. 그러나 신장개업 아닌 신장개업을 단행하면서 김치볶음밥 등의 이물질(?)이 식단에 포함됐다. 노량진에 수두룩하게 널려있는 수많은 분식집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브랜드의 확장이야말로 상표가치를 말아먹고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천정배에 관련된 뉴스가 오랜만에 떴다. 정동영 진영에서 발족시킨 ‘블로그 수호천사단’ 위원장에 취임했단다. 참 쓸데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 천정배한테 강금실과 동업해 노량진 지역에 고시학원을 차리라고 권하는 바이다. 수강료가 엄청 낮은. 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지명도에 저렴한 학원비가 합해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단시일 내에 노량진 제일의 명문학원으로 등극할 게 명확하다.
노량진에 포진한 사교육 자본의 행태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돈에 환장한 나머지 영세한 구멍가게들까지 고사시키려 작정한 듯하다. 대로변에 빌딩 서너 채 지은 것도 모자라 현재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150평 내외의 중형 할인마트마저 운영하더라.
국민의 가려운 곳을 찾아서 긁어주는 게 진짜 민생정치다. 그걸 하필이면 이회창이 수행하고 있다. 실직이 전쟁보다도 무서운 세상이다. 김근식과 정욱식 같은 먹물 나부랭이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昌의 강경한 대북정책만을 공허하게 물고 늘어진다. 노무현은 앞장서서 국민의 염장을 긁어대고, 김대중은 차기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동북아 문제에 합당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따위의 민의와는 동떨어진 현실인식을 강요한다.
김경준 송환됐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명박 낙마하고 박근혜나 이회창이 저쪽 대표주자로 등장하면 (범)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지지율만 오히려 더 올라가게 마련이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성조기 흔드는 노인들만 수구가 아니다. 민심의 변화된 여망을 거부한 채 과거의 의제들을 죽어라 고집하는 부류들 또한 수구다. 전통수구가 신흥수구를 박살내는 구도로 판세가 정리된 2007년 대통령 선거의 풍속도를 나는 노량진에서 1,500원짜리 잔치국수 사먹는 이회창과 Keyboard Warrior들 데리고 한 방 터트릴 궁리하는 정동영ㆍ천정배 듀오의 엇갈린 행보를 통해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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