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환영하는 넷심(Net心)의 일부라며 소개한 인터넷 댓글들 가운데 한 개다.
이걸 읽는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장사가 될 만하면 손님에 앞서 똥파리들 먼저 꼬이는 법이다. 특검을 수용할 때도, 파병을 강행할 때도, 분당을 시도할 때도, 연정을 제안할 때도, 삼성 X파일을 뭉갤 때도, 개헌을 발의할 때도, 한미FTA를 체결할 때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족속들이 노무현 정권의 그릇된 정책과 결정을 막무가내로 두둔하기에 바빴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로선 광노빠들의 돌연한 문국현 지지가 마냥 불안할 따름이다.
전여옥이 인간성은 막장일망정 눈치만큼은 기똥차게 빠르다. 문국현을 일컬어 ‘재계의 노무현’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잘 나가던 문국현이 뜬금없이 노무현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섰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다. 여론장사에 관련해서라면 동물적 후각을 지닌 인물로 꼽히는 김용옥이 갑작스럽게 문국현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태 역시 의미심장하다. 충고하는 바이다. 이명박을 이기고 싶다면 친노세력과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진짜 민심을 듣기 바란다면 당대의 출세한 권력자들만 만나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 김용옥 등의 속물들과도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옳다.
문국현의 딜레마다, 본인은 사업가 출신인데 그를 떠받치는 개인과 무리는 순전히 먹물 일색이다. 문국현의 딜레마는 한국사회의 진보개혁진영이 직면한 고질적 모순의 축소판이다. 진보개혁진영은 자기네가 서민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들이 서민대중을 위한답시고 펼치는 논리가 정작 당사자인 서민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게끔 생겨먹었다는 거다. 가령 최장집 교수의 저서를 보통의 생산직 노동자가 쉽사리 소화할 수 있겠는가? 민중의 손에 월간조선과 우먼센스가 쥐어져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의 상당량은 진보개혁진영 스스로가 져야 마땅하다.
문국현에게 감동했다는 사람들은 문국현이 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요한 이유로 문국현의 두 딸이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 평범한 비정규직 노동자인 사실을 내세운다. 나 또한 문국현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픈 부분이다. 서민이미지 팔아 집권해놓고는 아들딸은 물론이고 며느리와 사위마저 모조리 미국으로 유학 보낸 노무현 따위의 양아치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노무현의 살붙이들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런데 의문이다. 딸자식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한다는 문국현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세계관과 생활상을 참말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를 이해한다면 도올 부류의 가방끈 지상주의자들과 어울리는 광경을 유권자들에게 결코 노출하지 않는다. 도울은 적당히 배우고, 적당히 진보적이며, 적당히 먹고살 만한 사회계층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과시적 소비대상이다. 과거 이문열의 소설집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면 교양있는 것처럼 비쳤듯, 오늘날은 도올 김용옥과 함께 이른바 야부리를 까면 무슨 석학이라도 되는 양 으스댈 수가 있다.
도올과 노닥거릴 여유 있으면 차라리 드라마나 봐라. 연속극을 보고 있으면 지금 시대 민중들의 소망이 무언인지를,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가를 비교적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문국현이 자신의 잠재적 표밭으로 인식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드라마는 ‘커피프린스 1호점’과 ‘칼잡이 오수정’이다. 전자는 아이돌 취향이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잔주름과 더불어 먹고살 걱정만 늘어나는 집단은 아마 후자에 더 애착이 갈 듯싶다. 우선은 주인공부터가 미래가 불투명한 30대 중반의 노처녀니까.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왕년의 퀸카였던 오수정(엄정화)이 그녀가 버렸던 옛 남자 고만수(오지호)와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한다는 내용이다. 오수정의 직업은 체불이 일상화된 보석가게의 디자이너 겸 판매팀장이다. 고만수는 미운 오리새끼에서 화려한 백조로 기적적으로 변신한 골프선수다. PGA서 활동하는 고만수의 예명이 칼 고다. 아마 그래서 드라마 제목이 ‘칼잡이 오수정’인 모양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등장인물은 오수정과 고만수가 아니다. 오수정의 부하직원이자 하숙생인, 감춰진 미모의 소유자 육대순(박다안)이다. 육대순은 이중인격을 지닌 악녀 중의 악녀로 묘사된다. 남들 앞에서, 특히 고만수 곁에서는 온갖 착한 척 순진한 척을 다하면서, 오수정과 고만수 사이를 어떻게든 갈라놓으려 획책하는 못된 아가씨다. 때문에 시청자들한테서 별의별 욕을 얻어먹는다. 육대순의 위선과 악행에 분노한 몇몇 열혈 시청자는 탤런트 박다안의 미니홈피로까지 직접 쳐들어가 상스러운 악플을 남기고 온다는 소식이다.
내가 남자인 터라 솔직히 육대순 편을 들고 싶다. 20대의 박다안이 불혹에 육박한 엄정화보다 훨씬 상큼하고 풋풋하므로. 게다가 오수정과 박다안 모두 바탕은 동일한 된장녀 아닌가? 단지 차이점이라면 오수정은 이미 검증과정을 통과한 된장녀고, 박다안은 아직은 주변에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은 미지의 된장녀라는 것뿐이다. 똑같은 된장녀일 바에야 젊고 탱탱한 육대순이 낫지 않은가?
국민원로가 이명박의 선거참모였다면 필시 다음과 같이 문국현을 공격했을 게다. 이명박의 속이 시커먼 건 심지어 이명박 지지자들조차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문국현은 도통 그 속내를 알아낼 도리가 없다.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에는 이인제도 훌륭한 인권변호사였다. 정몽준이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술을 핑계로 집구석에 드러눕는 좀생원인 줄을 대선이 없었으면 그 누가 알았으랴? 노무현은 최악의 경우다.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인간이 광우병 걸린 미제 소고기 먹으라고 국민을 윽박지를지 어찌 예상했겠는가?
“출마선언을 가급적 뒤로 늦춤으로써 선거운동기간을 최소화해 검증을 피해간다.” 대통령 선거에서 게임의 법칙으로 굳어진 얄팍한 술수의 하나다. 고만수는 결국은 육대순의 간계를 간파하게 되어있다. 드라마니까. 허나 현실세계는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배하는 연속극과는 정반대다. 머리 좋기로 소문난 윤여준을 고만수 위치에 가져다놔도 육대순에게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기 마련이다. 만남에서 결혼까지 속전속결로 이루어지는 탓이다. 문국현은 할 달 안에 승부를 내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기업체에서 신입직원을 채용할 적에도 최소 3개월은 인턴사원으로 돌리는 게 예사다. 용감한 건지, 용의주도한 건지 문국현 캠프의 속내가 궁금하다.
이명박은 오수정이다. 검증된 된장녀인 까닭에 고만수 입장에서 더는 사기당할 여지가 없다. 된장이지 고추장인지, 빠다인지 마가린인지 육대순의 실체와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 이명박이 나는 된장녀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대신, 진정 문국현이야말로 오수정 뺨치는 육대순 같은 성격이라고 딱 한 달 동안만 집요하게 우겨대면 그걸로 문국현은 끝장이다. 문국현이 “오수정 이명박, 육대순 문국현”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략전술을 조율해야 한다. 도올 김용옥 및 초대 전대협 의장 이인영과 백날 얼굴 맞대고 있어봤자 아무 영양가 없다.
이왕 말나온 김에 현재의 박다안 나이었을 무렵의 엄정화 모습이나 다시 한번 감상해봐야겠다.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도도한 섹시미의 화신 엄정화조차 어린 후배에게 밀려 코믹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다니. 유하 감독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란 영화에 출연했을 즈음이 엄정화 전성기였구나. 한데 자세히 보니 민수형 정말 멋있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