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자들은 수준이 높지 않았다
윤석호 감독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당시, 필자는 윤감독과 함께 일본 내에 출판할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겨울연가> 단 한 편이 우연히 일본에서 성공한 게 아니라, 윤감독을 비롯한 한국의 드라마는 분명히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저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책이었다.
이 책의 원고가 다 끝나갈 무렵, 일본의 출판사와 필자는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 일본 측 출판사는 “일본의 독자들은 그리 수준이 높지 않으니, 내용을 쉽게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고, 이 때문에 필자는 책 내용을 계속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은 <‘겨울연가’ 끝나지 않은 이야기>란 제목으로 일본 내에서 출판이 되었고, 필자는 해외 독자를 겨냥한 출판작업을 처음으로 해보면서 소중한 경험 얻게 되었다. 가장 중요했던 체험은 일본이나 미국의 독자들이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문화를 즐기는 일본내 비주류 층
이는 윤석호 감독의 <겨울연가>도 똑같았다. 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 전문가 김지룡씨는 한 방송 토론회에서, “일본문화를 개방하면 아마도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둘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문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 주간 영화 매체에서는 김지룡씨에 대해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신랄한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겨울연가>가 위성채널을 거쳐 일본 NHK 공중파 채널에서 방영되었을 때, 20%의 시청률을 올리며, 일본 내에서 신드롬을 만들어내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너도 나도 일본에 드라마 수출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개방하면 한국 대중문화는 완전히 잠식된다고 주장했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2002년 윤석호 감독이 <겨울연가>를 한국에서 방영했을 때, 전문가들의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윤석호표 운명적 사랑이 너무나 상투적이란 이유였다. 시청률은 20% 중후반을 유지하며 선전했지만 <가을동화>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실 윤감독은 <겨울연가> 이후 자신의 드라마의 관을 새롭게 정립해야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윤감독은 새로운 세계에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겨울연가>의 일본 흥행은 30-40대 일본 주부층이 이끌었다. 그 때문에 <겨울연가>는 일본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층을 위한 드라마로서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한류를 찾고 있는 한국의 지성 김지하 선생은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의 여성층에 흡수되기 때문에, 이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익숙하게 즐기는 일본의 여성을 비롯한 비주류들은 언제든지 일본의 주류가 될 수 있다”
하나의 문화가, 타 지역의 문화권에 유입될 때, 대개 그 문화권의 비주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문화가 힘이 있다면, 그 문화를 흡수한 비주류가 이를 동력으로 주류로 올라서게 된다. 특히, 한국과 같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떨어지는 국가의 문화가 해외로 전파될 때는 이 같은 문법을 따를 공산이 크다.
<디워>의 경쟁상대는 <트랜스포머>가 아니다
<디워>의 미국시장 진출에 대해 관심을 쏠리고 있다. 과연 <디워>가 미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막말 파문으로 화제가 된 진중권씨는 “미국의 관객들은 <디워>를 <트랜스포머>와 비교해서 볼 것이다”라며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이는 미국시장과 대중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편견이다. <트랜스포머>는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디워>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들과 경쟁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 내에서는 저예산 B급 SF 괴수영화 시장이 있다. 물론 저예산이라 해봐야 <디워>의 300억원보다는 더 많다. 한국과 달리 DVD와 캐릭터 등 극장 입장 수입 이외의 부대수입이 많은 미국에서는 이 시장의 활기가 대단하다.
미국의 메이저영화사 역시도 이 시장을 겨냥하여 B급 SF 영화를 만든다. 대표적인 영화가 2004년 개봉된 폴앤더슨 감독의 <에일리언 VS 프레데터>이다. 이 영화는 에일리언과 프레더터를 좋아는 팬들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괴물 보여주기식으로 편집했다. 서사구조나 스토리구조는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냥 에일리언과 프레데터를 보기를 바라는 관객층을 겨냥하여, 저예산으로 만들어 B급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디워>의 영상과 짜임새로 볼 때, <에일리언 VS 프레데터>의 수준은 충분히 넘어섰다고 평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워>가 할리우도 B급 SF 시장을 돌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디워>는 현재 할리우드 영화의 최대고민이나 다름없는 스토리 원천의 부족을 이무기 신화로 간단히 해결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SF기술력은 갖추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스토리의 원천이 없다. 그러니 그야말로 아무 이유없이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싸우는 영화라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아직 그대로 묻혀있다. 만약 <디워>가 성공한다면, 그간 전설의 고향에서나 표현되었던 한국의 수많은 신화들이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디워>가 미국의 아동층을 겨냥한다면, 이들이 성장하면서, 한국의 문화는 더 많은 미국시장의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미국이 <디워>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겨울연가>수입을 주도했던 일본의 하라다 의원은 일본 내의 영화와 드라마 산업이 침체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일본은 <겨울연가> 수입 이후, 갑자기 멜로영화와 드라마 붐이 일면서, 영상 산업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간 비주류로 분류되던 30-40대 주부층을 대중문화 소비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겨울연가>는 한국과 일본의 윈윈전략의 산물이었다.
지금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영화도 <타이타닉> 이후, 계속되는 구조조정과, 미국의 대외관계 악화 등으로,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신화를 SF로 성공시켰을 때, 미국의 B급시장은 물론, 미국영화에 산뜻한 충격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자꾸 진보 측 지식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미국과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단정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들은 90년대 후반에 일본문화를 개방하면 한국문화는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화될 거란 주장을 했었던 사람들이다.
우선 그에 대해서 자신들의 진단이 왜 틀렸는지, 그것부터 분석하며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심형래의 <디워>가 반드시 미국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는 일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마치 실패하기만을 바라는 투의 발언을 하는 것이 과연 책임있는 지식인의 자세이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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