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대선주자인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이 연예계에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중견배우를 두고 '한물 살짝 간 배우'라고 표현한 것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18일 구로동 벤처기업협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올초 개봉됐던 코믹 영화 '마파도2'에 대해 "돈 적게 들이고 돈 번 영화"라며 "요즘 젊은 배우들이 뜨는데 그 영화는 '한물 살짝 간' 중견배우들을 모아 만든 영화다. 돈은 요즘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적게 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젊은 배우 비싸게 들이지 않고, 시간이 남아서 '누가 안 불러 주나'하고 있는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에게 역을 하나씩 주니 얼마나 좋겠냐"고까지 덧붙였다.
이 발언에 대해 '마파도2'에 출연했던 여운계는 "농담으로 한 이야기인데 기분나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별 일 아닌듯 받아넘겼다.
만약 이 발언이 연예계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을 옮긴 것이었다면 파장이 컸을 것. 현재 중견배우들의 위치가 예전과는 달리 웬만한 스타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전 시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영화계와 방송계 인사들은 "만약 정말 그렇게 알고 있다면 대중문화계 현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언"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한 드라마 PD는 "농담이라고 하기엔 배우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말"이라고도 했다.
김지영 여운계 김을동 김형자 등 중견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던 '마파도2'의 이상훈 감독은 "이 분들 스케줄이 너무 바빠 촬영 스케줄 맞추는 게 촬영중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이들의 위상이 몰라지게 높아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견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이 젊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에게 호평받으면서 새로운 중년 스타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으며, 이때문에 중견배우 잡기가 톱스타 못지 않게 어려운 현실. 당연히 개런티도 치솟고 있다.
물론 3~4년 전까지는 미니시리즈 등이 젊은 톱스타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이들의 개런티가 높아지면서 중견배우들의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톱스타로 군림했던 중견배우들은 4~5편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젊은 스타 못지 않은 수입을 벌어들였다.
최근 중견배우들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지면서 이들의 개런티도 올랐으며, 중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계만 보더라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나문희는 이 작품의 인기를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종영한 MBC TV '고맙습니다'에서 신구와 강부자의 열연은 아직까지 가슴에 남는다는 시청자들의 평이 대부분이다.
'하얀거탑'에서 이정길, 김창완, 정한용 등의 연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끌었으며, 윤여정 고두심 김해숙은 늘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심을 받는 배우다.
영화계는 중견배우들의 활약이 더 활발하다.
백윤식은 '지구를 지켜라' '범죄의 재구성'으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 후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타짜'에 이어 주연작 '성난 펭귄'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등 충무로에서도 가장 바쁜 연기자로 손꼽힌다.
'가문의 부활'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에 이어 '못말리는 결혼'에 주연으로 출연한 김수미와 '열혈남아'에서 설경구와 투톱을 이룬 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 이어 김선아와 함께 '걸스카우트'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나문희도 마찬가지.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김영옥 서승현, 드라마 '고맙습니다' 이전에 영화 '방울토마토'의 주연을 맡아 개봉예정인 신구, '가족' '구미호가족'의 주현, '우리 형' '해바라기'에서 젊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춘 김해숙, CF에 이어 영화계까지 주연으로 진출한 임채무 등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이들의 활약이 크다.
SBS드라마국 김영섭 CP는 "중견 배우들이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한동안 젊은 세대에 국한됐던 드라마의 소재가 확장되면서 이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하며 "이 때문에 중견배우들의 개런티도 급상승중이다"고 밝혔다.
MK픽쳐스의 박재현 실장 역시 "최근 영화계에서는 중견배우 캐스팅 전쟁이 치열하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아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다 이젠 중견배우들이 영화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개런티도 만만찮다. 현재 방송사 최고 등급인 18등급은 60분 기준 회당 170만 원선. 그러나 이 가격을 그대로 받는 연기자는 거의 없다. 외주제작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중견배우의 개런티도 급상승한 것.
회당 400~500만 원 정도였던 개런티가 최근 8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김CP는 "톱스타급을 빼고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화쪽도 마찬가지. 앞서 언급한 배우들중 상당수는 편당 2억~3억 원의 개런티를 받는다. 박실장은 "이 정도면 송강호 설경구 등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고 최고 수준의 개런티"라고 말했다.
'한물 살짝 간 배우'라고 하기에 이들의 힘은 너무나 막강하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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