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정관변경을 통한 우호 지분 확보 전략에 실패함에 따라 그룹 경영권 안정 및 향후 사업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그룹은 2일 현대상선의 주총을 통해 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제3자 배정 근거를 명시한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켜 우호지분 안정 및 현대건설 인수 자금 추가 확보 등을 노렸지만 현대중공업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 현대상선 주도권 '흔들' = 현대상선은 그동안 충분한 우호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왔지만 이날 주총에서 반대파의 거친 반격에 힘을 쓰지 못해 여전히 경영권이 불안한 상태임을 노출했다.
현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측은 우호지분이 현대엘리베이터(18.72%), 케이프포춘(8.70%), 우리사주조합(4.94%), 회장 일가(3.24%) 등 43%로 반대파인 현대중공업(17.6%), 현대삼호중공업(7.87%), KCC(5.97%) 등 31%보다 10% 이상 앞서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날 주총에서 그동안 반대파로 분류되지 않았던 현대백화점(지분 2.2%)과 소액주주마저 '주주 권리'를 외치며 정관 변경에 반대하는 등 복병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이날 의결권이 있는 총 주식의 96.13%인 1억4천715만여주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주총에서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KCC, 현대백화점 등 주요주주와 일부 소액주주들이 CB 및 BW의 제3자 배정을 명시한 규정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현대삼호중공업측은 "정관변경안은 기존 주주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현대상선측에 제3자 배정을 허용해 현정은 회장측의 우호 지분을 늘려주는 들러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동안 현대중공업측은 현대상선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정은 회장측의 우호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린데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주요주주와 소액주주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한 뒤 추후 다시 정관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날 정관변경안 통과를 낙관했던 현대그룹으로서는 적지않은 심적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과 KCC 등 웬만한 대기업들도 원활한 자금조달이나 효율성을 고려해 제3자 배정방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 정관변경이 부결된 것은 반대세력의 의도적인 반대로 밖에 볼 수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월등한 우호지분을 갖고 있어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이번 정관변경은 해운시장의 흐름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제안한 것인데 현대중공업그룹과 KCC측 등 주요주주가 모든 조항을 반대한 것은 납득할 수 없으며 혹시 다른 저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반발했다.
◇ 현대건설 인수전 난항 예상 = 현대그룹은 정관변경안이 부결됐어도 현대건설 인수 준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추가 실탄 확보 등에 어느 정도 어려움이 불가피하다.
현대그룹은 향후 그룹 수익구조 다각화와 현대가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건설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8.3%를 보유해 향후 현대상선 경영권을 가름할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그룹 전체 매출의 70%에 달하는 등 편중이 심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어 현대건설이 그룹에 편입되면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을 양축으로 하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아직 현대건설 인수 문제는 채권단에서 일정조차 나오지 않아 오늘 주총 결과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현대건설 인수 준비는 이미 지난해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에 별 문제될게 없다"고 단언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현대상선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7천억원 이상의 실탄을 마련한 데 이어 상환 우선주 발행으로 3천억원을 추가 확보하는 등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2조5천억원 가량을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건설 인수가격이 7조원 이상 치솟을 것으로 예상돼 현대그룹의 자금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그룹측은 지속적으로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두산그룹을 포함한 다른 대기업들도 현대건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다 현대중공업 등 반대파 또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현대그룹은 이번 주총을 통해 향후 현대건설 인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실감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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