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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이라 불리며 동교동계 상징으로 통했던 한화갑(4선)과 권노갑(3선), '경호실장'과 '비서실장' 별칭을 얻었던 김옥두(3선)와 한광옥(4선), 평민당-신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오는 DJ 정치역정 속에서 함께 격랑을 헤쳐온 정균환(4선), 장재식(3선), 이윤수(3선), 김경재(재선), 이훈평(재선), 조재환(초선), 최재승(초선)...이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갈수록 느끼는 소회는 "생각했던 것만큼 권력과 영달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DJ의 평생 정치적 맞수였던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비교할 때 특히 그렇다. 최형우(6선), 김동영(4선), 서청원(6선), 김덕룡(5선), 홍사덕(6선), 신상우(7선), 서석재(5선), 김무성(4선), 이규택(4선), 박종웅(3선) 등 YS 가신 그룹이 20년 이상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데 반해 DJ 가신 그룹이 천하를 호령했던 시간은 10년도 안됐다. 그나마 그 기간 동안 온전히 권력을 누린 것도 아니다. 90년대 초 중반에는 이기택계와 권력을 나눴고,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김종필과의 DJP 연대로 권력의 절반을 자민련에게 나눠줬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장관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했다. 2002년에는 기적 같은 정권 재창출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여 후인 2004년 친노계와 쇄신파로부터 버림을 받아 꼬마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불운의 역사가 고스란히 '난닝구'라는 표현에 함축적으로 들어가있다. 2003년 민주당 분당 국면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유시민, 김원웅, 정동영, 신기남 등 '동교동계 퇴출'의 선봉에 섰던 신당 추진세력에 맞서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오랜 당직자들과 당원들이 민주당사로 대거 몰려와서 신당파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상의가 벗겨져 TV 생중계 화면을 통해 난닝구(속옷)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DJ를 지키기 위해 비호남 출신 노무현을 대선에서 지지했고, 노무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 인사에서 소외되었음에도 묵묵히 참고 견뎌냈는데 자신의 정치적 분신인 줄 알았던 민주당을 파괴하려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민주당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같은 식구였던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옥새파동'을 일으키며 민주당에게 카운터 펀치까지 안겼다는 점이다. 조순형(대구), 김경재(서울) 등 당시 지도부가 살신성인(殺身成仁) 자세로 호남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기했음에도 김옥두, 이훈평, 최재승, 이윤수, 설훈 등 동교동계 핵심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사실상의 쿠데타를 감행했다. 비례대표 명단 또한 추미애 위원장과의 친소관계가 대폭 반영되는 원칙 없는 배정이 이루어졌다. 조순형 당시 대표의 뒤늦은 수습으로 바로잡기는 했지만 극심한 내부 권력투쟁으로 민주당은 이미 정치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흔히 김대중 정부 시절 호남출신에 대한 인사편중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난닝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어불성설이다. DJ 초기 내각 면면만 보더라도 이 같은 평가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무총리(김종필)-국정원장(이종찬)-대통령비서실장(김중권) 등 '빅3'가 모두 외부인사에게 돌아갔고, 내각 요직에도 동교동계는 기용되지 않았다. DJ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들이 철저히 몸을 낮췄기에 가능했다. DJ 핵심 측근들이 국회에서 5~6선 대열에 합류하고, 집권 기간 중 내각이나 청와대로 중용되어야 비로소 인사의 숨통이 트이며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데 그와 같은 메커니즘이 동교동계에는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 20년 이상 음지에서 핍박 받고 고생하다가 겨우 숨쉴 수 있을만한 세상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존경하는 DJ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또다시 음지에 머물러 왔는데… 야당이 제안한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함으로써 DJ에게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민주당마저 소멸시키려 하자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고생하고 음지에 머물러야 하냐?"는 자조와 허탈감이 밀려온 것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빼앗긴 것까지는 어금니를 물고 참았지만 최소한의 생활 터전인 지하 단칸방까지 뺏어가려는 것에 대해 온 몸으로 저항하겠다는 것이 이들이 마음가짐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해 우리도 한번쯤은 이들 '난닝구'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순천 재보선의 경우 김경재, 조순용, 허상만, 허신행 등 호남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좋은 후보들이 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학규 지도부는 "야권 연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노당 후보 김선동 당선을 위해 공천을 포기했고, 그 결과 "국회 최루탄 폭거의 원인 제공을 한 사람들"이라는 오명을 호남이 뒤집어썼다.

민주당의 좌경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에서도 야권 연대 국면이 지속될 경우 민주당은 호남 지역에서만 최소 10석 이상을 종친초 세력에게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제2, 제3의 김선동이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고 호남은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갉아먹는 '종친초 양성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난닝구'가 희망일 수 있다. 민주당의 좌경화를 막고,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심장부 호남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키고, '박근혜 사병'과 '노무현 잔당' 그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는 호남 유권자들에게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호남의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적 개혁층이 온전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포스트 한나라당'을 꿈꾸는 보수주의 세력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야말로 극우와 극좌로 왜곡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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