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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에 묻힌 동악산 월평리 들길

지난 5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애플의 전설 스티브 잡스의 장례식이 가족들만으로 조용히 치러지고 있다는 뉴스 자막 속보를 보니, 창문너머 보이는 안개 자욱한 동악산의 가을 아침이 쓸쓸하기만 하다.

이브와 뉴턴의 사과에 이어 세 번째 사과를 인류에게 주고 떠난 스티브 잡스의 삶이 그랬듯이, 더 많은 창의와 기술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천재였는데, 심란한 마음 속 생각들이 안개만큼이나 어지럽다.

나는 십여 전 년 전복사고로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며, 2007년 초에는 3번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실려 간 적이 있었다.

십여 년 전 사고 당시에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2007년 의식을 잃고 스러졌을 땐 상황이 달랐다.

퇴원 후 몸을 추스르며 무릇 생명이란 숨 쉬는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는 옛 선사(禪師)의 말씀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속에 존재하는 하찮은 것으로, 언제든 한 순간에 “아!” 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음을 다시 깨달고, 사후에 대비하여 유서를 미리 써놓으려고 했지만, 막상 A포 용지를 들고 유서를 쓰려하니, 단 한 줄도 쓸게 없었다.

가족들에게 행복하게 잘 살라는 구차한 이야기도 우습고....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지만, 이후 나의 삶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하나뿐인 딸아이에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비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상황을 설명해 주고 딱 하나만 부탁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지켜줄 유일한 가족인 딸아이에게 만일 아비가 여기 동악산 기슭에서 죽으면, 당황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장례도 치르지 말고, 곧바로 아버지의 친구인 OO아저씨에게 말해 두었으니 연락하여 도움을 받아라, 그리고 수고스럽지만 화장터로 끌고 가서, 화장터의 재로 만든 뒤 그걸 등산배낭에 매고 동악산 성출봉에 올라가서 동서남북 바람으로 흩뿌려 달라고, 그러면 그것으로 족하겠다고, 그 부탁 하나만 하였다.

그리고 그 후 나의 일상은 매일 매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날마다 오는 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로 알고 살았고, 항상 부딪혀 오는 매 순간을 내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알고 소중하게 붙들었다.

날마다 오는 하루, 항상 부딪혀 오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붙들고 살다보니, 내 스스로 나에게 바랄 것이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바람이 없으니 사는 일상이 편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순간 그것이 최선이라고 했던 말과 행동들이 지나고 보면 여전히 아쉽고 부끄러워지는 일들이 다반사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지, 솔직히 말하면 부끄럽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오늘 이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지인들을 초대해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마지막엔 가족이 전부였다는 애플의 전설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을 접하면서 그가 39년간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었다는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지금부터 하려는 바로 이 일을 할 것인가.”를 나 역시 여전히 나에게 묻는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1년 10월 8일 동악산에서 박혜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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