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대표적 우파논객인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을 오피니언면 새 필진으로 위촉했다. 그러자 미디어오늘이 곧바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언론노조 기관지 미디어오늘은 경향신문과 민주노동당이 북한 3대 세습 문제로 논쟁을 벌였을 때도 민주노동당 측을 도와 경향신문의 백기투항을 끌어낸 바 있다. 그런 과거사에 더해 이번엔 경향신문이 우파논객을 필진으로 참여시켰으니, 경향신문은 미디어오늘에 그야말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셈이다.
미디어오늘은 12일자 기사 ‘경향신문 ‘앞마당’에 대표 보수 류근일씨?’를 통해 “2008년 12월 23일, ‘가장 행복할 때 이만 접고자 한다’며 지상(紙上)을 떠난 보수 논객 류근일(73?사진) 전 조선일보 주필이 다시 ‘펜’을 들었다. 보수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의 고문을 맡으며 칼럼을 써오긴 했지만, ‘오프라인’ 신문에 ‘복귀’하는 건 2년 여 만”이라며 “류 전 주필로 하여금 다시 펜을 들게 한 곳은 조선일보가 아니다. 경향신문이다.”라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경향은 지난 8일자 1면에 새로 개편되는 오피니언면 필진을 소개하면서 하승수 변호사,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박찬운 한양대 교수와 함께 ‘언론인 류근일씨’가 <경향논단>의 필진으로 참여한다고 밝혔다.”면서 “경향의 ‘알림’이 나가자 언론계에는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일반 기사가 아닌 오피니언면에까지 굳이 보수의 목소리를 실어야 하느냐, 왜 하필 ‘보수 중의 보수’로 ‘악명’ 높은 류 전 주필이냐는 반응” “이에 대한 경향의 입장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진영의 논리를 벗어나 진보, 중도, 보수의 다채로운 시각’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사는 “신문사가 독자들에게 자사의 편집 방향이나 경향성과 관계없이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는 건 탓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 신문이 지나치게 획일적인 지면을 제작해 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할 만한 시도이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필진의 면면이나 필진이 내놓을 칼럼의 내용에 따라 경향신문의 ‘텃밭’인 진보개혁진영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경향으로서는 큰 ‘모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피니언면에까지 보수적인 목소리 다룰 필요 있나”
이어 미디어오늘은 류근일 전 주필의 인터뷰도 소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류 전 주필은 어떻게 필진에 참여하게 됐냐는 질문에 “난 라이터(writer)다. 매체에서 내게 ‘우리 지면에 글을 좀 쓰겠느냐’는 오퍼(제안)가 왔고, 그러면 뭐, ‘한 번 써 봅시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답했다.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부담스럽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겠는데, 사설이나 사내 칼럼의 경우 회사 자체의 정리된 입장을 논조대로 쓰는 것이고, 외부 필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필자 입장에서도 내가 거기 사원이 아닌데 ‘와서 내 생각을 쓰라’면 쓸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물론) ‘류근일 칼럼’으로 나간다면(필자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지면이라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게 아니고 ‘경향논단’이라는 지면에서 보수, 중도, 진보적인 필진이 골고루 쓰는, 스펙트럼이 다양한 체제라면 부담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향신문 지면 내부에 중립 지대가 있다는 건데, 그런 운동장에서 왜 못 쓰겠느냐. 보수신문에 진보적인 필자가 쓸 수 있고, 진보신문에 보수적인 필자가 쓸 수 있는 거고, 그게 정상 아닌가. (성향이 다른 매체라고) 못 쓰겠다고 한다면 그게 편견”이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류 전 주필이 몸담았던 조선일보엔 진보적 필진이 없었다는 미디어오늘 측 질문에 그는 “내가 있을 땐 진보적인 필자들이 (조선일보에 칼럼을) 안 쓰려고 했던 게 컸다. 안티조선 하면서 (기고를) 거부한 게 큰 이유였다”면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고 들어와서 써라, 중립적 체제엔 (진보적인 필자들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중도에서 조금 왼쪽에 있는 분들도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후 미디어오늘은 엄밀히 말해 류 전 주필과 별 상관이 없는 질문들까지 제기, 류 전 주필을 압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디어오늘은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은 독자들이 온라인에서 ‘댓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봉쇄해 독자와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질문도 류 전 주필에 건넸다. 이에 류 전 주필은 “(글은)내가 양심껏 쓰는 거고, 일단 말(글)을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주변을 살펴도 할 소리를 못 하는 거니까, 대범하게 생각하려고 한다.”고 답하긴 했지만, 김대중 전 주필 당사자도 아닌 류 전 주필에 ‘같은 조선일보 주필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을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이어 미디어오늘은 “경향신문이 일반 기사가 아닌 오피니언면에서까지 지향성이 다른 보수적인 목소리를 다룰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도 있다”는 질문도 추가로 류 전 주필에 던졌는데, 이 역시 류 전 주필이 아니라 경향신문 측에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우파언론은 이전부터 좌파 성향 필진에 지면 마련해줘
미디어오늘의 류근일 전 주필 인터뷰엔 문제가 더 있다. 미디어오늘 주장과 달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이른바 우파신문들은 이미 오피니언면을 통해 장하준, 박경철 등 좌파지식인들 의견을 담은 일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오피니언면 말고도 많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온갖 욕설과 모욕을 일삼은 방송인 김구라에게 2005년부터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 ‘김구라의 쿨아이’라는 코너를 맡기는 파격적 행보를 보인 바 있고, 동아일보도 현재 좌파연예인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제동에게 고정칼럼을 맡긴 일이 있다. 중앙일보 역시 지난 1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인터뷰를 싣는 등 이념적인 부분에서 주요독자층 성향을 벗어나 광범위한 수용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우파 성향 언론들은 자사의 이념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좌파진영 목소리를 듣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던 과거가 확고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미디어오늘 측은 이 같은 점을 아예 무시한 채 또 다시 왜곡을 일삼은 것이다. 오히려 우파진영 목소리를 듣는데 그간 경직된 태도를 보여온 건 좌파언론 쪽에 가깝다. 앞선 오연호 대표의 중앙일보 인터뷰 경우에도 미디어스는 “멀쩡히 봐주기 참 아찔한 관통”이라며 극단적 폐쇄성을 드러낸 바 있다.
어찌됐건 미디어오늘 측 주장대로 경향신문의 우파논객 초대는 자칫 실패작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 북한 3대 세습 논쟁 당시처럼, 경향신문은 좌파진영의 압박과 비판에 못 이겨 끝내 태도를 180도 뒤바꿨던 사례가 존재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경향신문 방침에 좌파진영이 ‘절독’선언 등을 해가며 전 방위로 압박할 경우 경향신문은 제2의 백기투항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쩌면 미디어오늘이 아직 시작도 안한 류근일 전 주필의 오피니언 필진 참여를 놓고 이 같은 ‘딴지성’ 기사로 먼저 경향신문 측에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도 하나의 징후로 분석될 수 있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장은 “경향신문이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류근일 선생을 오피니언 필진으로 초빙한 것은 신선하고도 바람직한 시도”라면서 “이 같은 좌우소통의 새 장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선 경향신문의 역량과 뚝심이 필요하다. 과거 백기투항 사건 같은 마인드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면, 류근일 선생 필진 결정은 안 하느니만 못했던 시도로 남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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