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로 예정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 투표불참 운동에 나선 좌파진영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복병이 나타났다.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7일 취임 100일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면무상보육’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당내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 황 원내대표는 이날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0~4세 영·유아 보육·교육을 의무교육 개념에 준해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우선 0세부터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늦어도 3~4년 내엔 (0~4세 무상보육이) 실시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부모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0~5세 영·유아에 대해서만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황 원내대표는 필요 예산에 대해서는 “0세에 대해 무상보육을 실시해도 예산은 1조원 미만으로 들 것”이라며 “(4세까지도)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연평균 3조원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전면적인 무상보육을 실시하는 예산 조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내대표 취임직후 ‘반값등록금’ 논쟁을 촉발하며 정치권의 복지포퓰리즘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황 원내대표가 이번엔 당정 조율 없는 ‘전면 무상보육’을 덜컥 내놓아 혼란을 가중시키며 적전분열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오 시장 주도의 전면적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지원하기로 한 상황에서 당내에선 이 같은 황 원내대표의 행위가 과연 바람직한지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심재철 “황우여 또 사고쳐” 유승민 “오 시장 지원하기로 한 우리당 국민이 어떻게 보겠나”
정책위의장 출신 심재철 의원은 9일 홈페이지에 황 원내대표의 이 같은 좌충우돌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심 의원은 ‘황우여 원내대표가 또 사고를 쳤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황 원내대표가 느닷없이 전면 무상보육이라는 포퓰리즘을 내놓았다”며 “당장 서울시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야당은 ‘무상 보육은 되는데 왜 무상급식은 안되느냐’고 나올 텐데 황 대표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심 의원은 황 원내대표의 ‘전면 무상보육’ 주장에 대해 “당론으로 결정한 서울시 주민투표 지원방침을 훼방놓은 해당행위”라며 “황 대표가 취임 직후 저지른 포퓰리즘 1탄 ‘반값등록금 문제’는 아직도 정리를 못해 어지러운 판인데 여기에다 다시 2탄을 터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야당과의 최일선 대척점에 서는 원내대표가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걸며 혼선을 일으키고 야당 따라 하기나 하는 것은 자격이 없는 짓”이라며 “황 원내대표는 발언을 즉각 취소하라”고 사과를 요구했다.
오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반대했던 유승민 최고위원 조차 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원내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유 최고위원은 “오 시장이 발의해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오 시장을 지지하기로 했던 한나라당이 무상보육에 대해 굉장히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과연 우리 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며 “국민들이 보기에는 급식과 보육이 별 차이도 없는데 당 지도부가 왜 이렇게 모순된 입장을 보이는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개인적 소신은 다르지만 한나라당이 주민투표를 당론으로 삼은 이상, 반드시 야당을 꺾어야 할 시점에서 ‘전면 무상보육’을 꺼내든 황 원내대표의 발언이 투표참여를 끌어내야할 상황에서 서울시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고, 한나라당의 힘을 뺄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원희룡 최고위원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차이를 물으면 답변이 궁하다”며 당혹감을 표했다.
민주당 “무상급식 사회주의라며 무상보육 주장하는 건 국민 기만”
실제로 좌파진영은 당장 황 원내대표의 ‘전면 무상보육’ 주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논리적 모순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조배숙 최고위원은 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적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무상보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좌파언론도 황 원내대표의 ‘무상보육론’을 정략적인 주민투표 철회논리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은 9일자 사설 ‘한나라당, 헷갈리는 복지 담론부터 정리해야’를 통해 “여당 인사들도 우려하듯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무상보육을 얘기하는 것은 스스로 복지에 대한 무철학·무개념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며 “무상보육론에 진정성을 더하려면 무상급식 반대투표 지원부터 접을 일이다. 복지 담론을 둘러싼 집권당의 횡설수설을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힐난했다.
한겨레신문 역시 같은 날 ‘무상보육은 되고 무상급식은 안 된다는 억지’ 사설을 통해 “무상보육을 주장하면서 무상급식은 망국적이라고 주민투표로 저지하겠다는 것은 억지”라며 “이율배반도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한나라당이 시민들의 믿음과 지지를 유지하고 싶다면, 무상보육을 추진하기에 앞서 무상급식 반대 운동부터 걷어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원내대표는 “급식과 의료는 개념적으로 복지 분야로 개인과 부모가 책임지는 성향이 강하고 보육은 교육의 개념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분야”라며 “급식과 보육은 프레임이 다르다.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당 안팎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결국, 당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주민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황 원내대표가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무상보육론’을 꺼내든 바람에 향후 당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주민투표 결과가 더욱 불투명해진 셈이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