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특종보도한 이른바 ‘국정원의 롯데호텔 잠입사건’을 놓고 친노좌파 언론매체들은 ‘글로벌 도둑’ ‘절도단’ 등 온갖 모욕적 표현을 동원해 국정원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친노좌파 매체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원세훈 국정원장에 있다며 원 원장의 사퇴와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23일자 사설 ‘국정원 사건, ‘국익’ 앞세워 얼버무릴 생각 말라’를 통해 “국정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을 놓고 곳곳에서 ‘국익론’이 난무한다”며 “그 논리도 해괴하거니와, 국익을 망쳐놓은 사람들 입에서 국익 옹호론이 나오는 것은 역겹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원세훈 국정원장을 지목, “국정원장 유임론 뒤에는 국익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국정원의 조직이기주의, 자리를 보전하려는 관계자들의 욕심, 아마추어 국정원장을 임명한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호도하려는 의도 등이 숨어 있다”고 힐난했다.
타 친노좌파 매체 주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향신문은 24일자 ‘원세훈 경질하고 국정원 전면 쇄신해야’라는 사설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특사단 숙소 침입은 국익을 위한 통상적인 정보활동의 범위를 한참 넘었다”고 비난을 이어간 뒤 “청와대는 국정원 연루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게 아니다. 원 원장을 해임하고 근본적인 국정원 쇄신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북매체 민중의소리도 23일 관련기사를 통해 “국정원의 ‘아마추어리즘’보다 더 큰 문제는 불법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국정원의 행태 그 자체”라며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의 말을 빌어 “전문가가 아님에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장을 맡기고, 대통령 독대 보고를 부활시킬 때부터 이 같은 일은 예고된 사태”라면서 “오직 ‘충성’만을 강조하는 국정원이 법과 국민위에 군림하는 한 이번 사태는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맹비난했다.
1999년 당시 ‘국익론’ 주장했던 현 친노좌파 세력
그러나 이렇듯 강도 높게 원세훈 국정원장 사퇴까지 요구하는 친노좌파 언론매체들은 국정원 관련 사건에 늘 일관된 태도를 보여 왔을까. 과거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현재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정원 사건을 기정사실화 한 채, 이에 대해 국익론을 펴는 것이 역겹다고까지 한 한겨레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자 조상기 편집부국장이 직접 ‘도깨비와 씨름하는 나라’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은 지도적인 위치를 망각한 채 사회적 쟁점을 감정적으로 무리하게 만들거나 부풀린다”며 “한마디로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도깨비’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을 향해 “중요한 문제라 해서 아무 증거도 없이 짐작이나 개연성만으로 마치 정부가 조직적으로 ‘불법감청’을 해온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국민을 항상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뿔난 도깨비를 하나 만드는 셈이다. 사회안정을 우선해야 할 정치 지도자로서는 취할 행동이 아니다”고 충고했다. 한겨레는 당시 언론과 정치인의 무리한 ‘국정원 흔들기’가 사회 안정을 해친다는 취지로 ‘국익론’을 편 셈이다.
한편 원 국정원장이 이 대통령 측근이며 비전문가라는 점을 들어 ‘국정원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고 있는 친노좌파 매체들이지만,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오히려 그런 아마추어리즘을 대대적으로 긍정하는 기사를 게재한 적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소위 1세대 인권변호사로 통하는 고영구 변호사를 첫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고 전 원장은 노 전 대통령과 1980년대 민변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을 통해 국정원 수장을 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03년 3월27일자 경향신문은 ‘고영구내정자 개혁 어떻게-민변출신 국정원 수장 脫정치 개혁바람 예고’란 기사에서 “국정원이 대대적인 개혁을 위한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 20여년동안 국정원으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아온 재야출신 인권변호사에 의해서다”라며 국정원 개혁이 “막강 권력기관인 국정원의 철저한 ‘무력화’ ‘탈정치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하고 있다. 자신들 집권기간 동안에는 ‘개혁바람’이었던 대통령 측근-비전문가 인사를 정권을 빼앗기자 ‘아마추어리즘’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다.
원세훈 원장 비판한 신건 의원, 국정원장 재직 시절 1800여명 불법 감청
한편 정치계에서의 180% 입장 바꾸기는 더 가관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준영 현 전남도지사는 지난 1999년 당시 국정원 감청지구 논란에 ‘국익론’을 내세우며 ‘안보를 위한 국정원의 불법성’은 문제가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1999년 10월18일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준영 전 대변인은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정보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폭로하고 이를 무력화시키려 하지는 않는다”면서 “감청이 모두 불법은 아니다. 국가의 안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감청이 필요하고 국정원의 그런 기능은 역대 정권도 갖고 있었다”고 국정원의 불법감청 논란을 일축한 바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현 민주당 전신 새정치국민회의도 “간첩과 외사 등 국가의 중요한 사항을 취급하는 정보기관을 무력화하는 게 이회창 총재와 이 총무의 안보관이냐”며 맹비판을 퍼부었고, 1999년 10월21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당시 김현미 부대변인 역시 “공작정치의 대가들의 배후조종에 놀아나 국가정보를 누설하는 것이 인권이고 민주주의냐”며 ‘국익론’을 주장한 바 있다.
가장 엽기적인 사례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현 민주당 의원의 경우다. 신 의원은 최근 오마이뉴스를 통해 “국정원은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목적의 기관이지, 외국의 산업 기밀을 빼내는 것과 같은 일은 본래의 임무가 아니다”며 “이 사건 진상을 엄격하게 조사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국회차원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출신인 신 의원은 국정원장 재직 당시 정치인, 언론인, 공직자 등 각계 인사 1800여명을 무차별적으로 불법 감청했던 사건으로 2007년 12월20일 서울고법 형사10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가 불과 수일 만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돼 논란이 된 바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신 의원 행동과 논리를 어기지 않으려면, 외국의 산업 기밀을 빼내는 것은 국정원 본래 임무가 아니지만, 1800여명에 이르는 정치인, 언론인, 공직자 등을 무차별 불법 감청하는 것은 본래 임무에 속한다는 주장이 나와야만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신 의원 입에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편 신 의원은 국정원장 임명 당시 정보 문외한이라는 점을 지적받은 바도 있어, 이번 원세훈 원장의 비전문가 임명 논란에 동참할 수 없는 입장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을 몰아세우는 친노좌파 언론과 좌파 정치인들의 행각은, 그저 정략적 공세이자 친노좌파 특유의 이중잣대 적용에 불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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