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외압설 등 갖가지 논란 속에서도 시청률 25%를 넘나들며 인기리에 방영중인 SBS 수목드라마 ‘대물’이 특정 시사주간지 표지들을 드라마 속 배경으로 집중 배치해 여과 없이 방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의 장면이 등장한 것은 ‘대물’ 10회 방영분. 집권 여당인 민우당 대표 조배호(박근형 분) 비리의혹을 캐던 열혈검사 하도야(권상우 분)가 우연히 서점에서 조배호 인터뷰 기사를 실은 시사주간지(극중 ‘주간이슈’)를 발견한 뒤,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잡지 출판사를 찾아간 장면이다.
출판사 사무실로 찾아간 하도야가 자장면을 먹으며 출판사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설치된 소파 뒤와 창문에는 친노좌파 성향 시사주간지 시사IN 표지가 여러 장 등장했다. 창문에 붙은 표지들은 주간이슈와 시사IN의 제호를 달고 걸려있다. 가상의 주간지 표지는 드라마 설정 상 필수적인 것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주간지 시사IN을 제호까지 그대로 넣어 걸어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
드라마 내용과 관계없이 노출된 시사IN 제호와 표지
해당 장면을 살펴보면 창문에 걸려있는 4장의 주간지 표지들 중 2장은 주간이슈 제호로, 2장은 시사IN의 제호를 그대로 달고 걸려있다. 2장의 시사IN 표지 중 가장 오른쪽 것은 2008년 5월10일자 34호 표지다. 표지에는 ‘두려움, 식탁에 오르다’라는 커버 제목이 씌어있고, 미국 국토 모양으로 잘려진 쇠고기 사진이 등장하고 있다. MBC ‘PD수첩’이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왜곡 보도한 내용을 토대로 기획된 기사를 가리킨다. 물론 커버 제목과 기사 내용은 ‘PD수첩’ 내용을 옹호하는 것이다. 실제로 34호에는 ‘당신은 이제 ‘죽음의 식탁’ 앞에 앉는다’ ‘참혹하고 비참한 도살장 현장 중계’ ‘싫으면 먹지 말라고? 염장 지르는 소리 말라’ ‘정부가 나서서 축산 농가 죽이니…’ 등의 기사가 커버스토리로 담겼다.
왼쪽에서 두 번째 위치에 걸린 시사IN 표지는 2010년 7월17일자 148호 표지다. 표지에는 ‘포항 출신이면 개도 벼슬?’이라는 선동적 커버 제목이 적혀있다. 시사IN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이 기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독한 고향 사랑은 사람을 쓰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포항·영덕·영일·봉화·울진 출신은 성골, 경북 출신은 진골이었다”며 “현 정부에서 ‘출세’한 성골과 진골의 면면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표지 그림으로는 개가 조선시대 의관을 차려입은 인형 사진을 담았다.
흥미로운 것은 주간이슈 제호로 배치된 다른 2장의 표지다. 배경 가장 왼쪽에 걸린 표지는 주간이슈 라벨을 두르고 있지만, 그 아래 커버 내용은 시사IN 2010년 4월17일자 135호의 그것이다. 표지에는 ‘천안함… 거짓말… 불신공화국’이라는, 마찬가지로 선동적인 제목이 달려있다. 시사IN 홈페이지에 따르면 기사는 “천안함 침몰 이후 정부와 군 당국의 말 바꾸기가 계속되면서 불신' 신드롬이 확산되어 간다”며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한편으로, 군 기밀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드세다. 불신비용'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배치된 주간이슈 라벨의 또 다른 표지도 마찬가지로 제호 아래는 시사IN 표지다. 시사IN 2010년 6월19일자 144호 표지로, ‘한국형 연정의 씨앗, 고양시를 주목하라’는 커버 제목을 달고 있다. 시사IN 소개에 따르면 “경기도 고양시가 야권 연대의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고양시 지역구 국회의원 4명은 모두 파란색(한나라당)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이 승리했다”며 “선거연대를 거쳐 공동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무지개연대’를 들여다보았다”고 전하는 기사였다. 표지는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 등 야권5개를 상징하는 화분에 각각 걸친 뿌리들이 하나의 싱싱한 나무로 자라는 상징적인 그림을 실었다. 한 마디로 2장의 주간이슈와 2장의 시사IN 표지는 사실상 내용 면에서 모두 시사IN이었고, 대부분 선동적인 친노좌파 성향 카피를 내걸고 있었던 셈이다.
‘대물’ 제작사 측의 궁색한 변명
이 같은 배경 설정에 대해 ‘대물’ 제작사 이김프로덕션 전흥만PD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도한 바가 전혀 없다”며 “보는 분 입장에선 그런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만일 ‘시사IN’이 아니라 다른 잡지였더라도 썼을 것” “출판사 사무실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뿐이고, 하필이면 (카메라)앵글에 잘 잡혀 방송에 나갔고 게시판에서 글 올라온 것을 보고 나도 그게 시사IN 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전PD는 또 “우리가 (시사IN으로부터) 협찬을 받은 것도 전혀 아니다”면서 “소도구팀이 갖고 있던 포스터를 갖다 썼다고 하더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그러나 막상 표지를 배열한 소도구팀 이이진 담당자는 전PD 해명과 달리 “시사IN에 직접 협조요청을 해서 자료를 받은 것”이라 답했다. 이씨는 “여러 잡지사에 협조 요청을 넣었지만 마감 시간에 쫓겼던 다른 잡지사들과 달리 시사IN과 유일하게 연락이 닿았고 자료를 빨리 줄 수 있다고 해서 받아쓰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간조선, 주간한국, 주간동아 등 대표적 타 시사주간지들에 문의한 결과 이들은 모두 ‘대물’ 측으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었다.
한편 시사IN 제호를 바꾸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씨는 “시사IN으로부터 자료를 받아서 고친다고 고쳤는데도 그게 나갔다면 실수라면 실수”라고 답했지만, 잡지를 그대로 걸어놓은 것도 아니라 시사IN 측으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토대로 대형 컬러프린트까지 새로 뽑아 배치하기까지 여러 장에 걸쳐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는 주장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멀리 보이는 또 다른 벽면에 주간이슈로 라벨이 수정된 표지가 걸려있음에도 잘 보이는 위치에 굳이 시사IN 제호가 박힌 표지를 배치한 점, 주간이슈와 시사IN 라벨 표지가 하나씩 교차하면서 배경을 꾸미고 있다는 점 등에서도 그저 “몰랐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정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대물’ 측 의도성도 강하게 의심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미디어평론가 오창석은 “TV드라마 촬영현장은 그런 상황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소품 배치조차도 수차례에 걸쳐 꼼꼼하고 치열하게 조율되고 배우 옷에 붙은 작은 상표까지 철저히 체크해 가린다”면서 “더군다나 그 잡지 표지들이 걸려있는 현장에서 아무리 바빠도 수 시간 이상에 걸쳐 수십 차례 테이크를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몰랐다는 주장은 방송제작 환경에 대해 조금만 이해도가 있는 이들이라면 코웃음을 칠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격 해명”이라 지적했다.
정치웹진 다요기 박한명 대표는 “‘대물’ 제작진이 만일 그런 식으로 반정부 코드를 장면에 넣어 시청자들과 세간의 주목을 끌어 시청률 확보에 나서겠다는 의도였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라면서 “그런 식으로 무리한 노이즈 마케팅을 시도한 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둔 예는 없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마저도 그런 장치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대중의 반감을 사 시청률이 급락한 바 있다. 물론 노이즈 마케팅 의도가 아니라 제작진의 정치적 ‘신념’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밝혔다.
시사IN 간접광고는 명백한 방송법 시행령 위반
그동안 엄격하게 규제됐던 TV프로그램 간접광고는 올해 1월 통과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드라마?예능프로그램 등에서는 가능해졌지만, 간접광고를 할 경우에도 기존 방송광고와 마찬가지로 KOBACO(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판매되는 기존 방송광고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도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드라마 ‘대물’의 시사IN 간접광고는 명백한 방송법 위반에 해당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상파방송심의팀 오인희 차장은 KOBACO를 통하지 않은 간접광고의 경우와 KOBACO를 통했더라도 프로그램 전 사전고지를 하지 않은 간접광고의 경우는 명백히 시행령 위반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대물’의 시사IN 표지 장식은 정치색 논란 이전 법적 문제에 속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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