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가까이 절차적 논란을 일으켰던 민주당 추천의 양문석 신임 방통위 위원이 결국 대통령의 임명에 따라 19일부터 공식 활동에 들어간다. 양문석 위원은 막판까지 15년 활동 경력 부분의 논란으로 임명이 지연되어왔다.
대체 양문석 사무총장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방통위를 파행까지 몰고 갈 정도로 첩첩산중을 거쳐야 했는가? 지난 3월 초 사임한 이병기 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상임위원 후임으로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함께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에 민주당 방송통신TF전담팀은 3월 18일 공모와 추천 등을 통해 후보를 모집하여 양 총장과 최 전 부위원장을 최종 명단에 올렸다. 이때부터 양총장과 최 부위원장을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권 당시, 정권과도 대립각을 세웠던 양문석
최 부위원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의 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언론계와 언론학계에서는 노무현 정권에서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 부위원장을 통해야 한다는 설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 KBS 정연주 사장이 임명될 때와 연임될 때 최 부위원장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는 보도가 공개되기도 했다. 최 부위원장이 재직할 때 방송위에서는 IPTV 시범사업자 선정이 있었는데, 탈락업체들이 “노정권이 미디어다음에 특혜를 주었다”며 조창현 방송위원장에 항의했을 때, 조 위원장은 “모든 것은 최 부위원장에게 물어보라”고 책임을 회피한 바도 있다.
그러나 최 부위원장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합쳐 방통위로 재편되면서 사직하게 되었다. 이후 최 부위원장은 역시 민주당을 통해 방통위 위원에 지원하고자 했다. 최부위원장의 임명은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 당시는 총선을 앞둔 비상체제에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민주당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친노세력과는 매우 다른 노선을 걸은 인물로서, 노무현 정권의 언론계 실세였던 최민희 부위원장을 추천하지 않았다. 대신 노무현 정권 당시의 친노좌파 언론세력과는 교류가 깊지 않은 이병기, 이경자씨를 임명하였다. 이 때문에 언론노조 등에서는 미디어법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방송개혁을 이들이 적절히 견제하지 못했다며 민주당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바로 이 때문에 중도우파 진영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가 민주당 대표로서 남긴 유일한 업적이 바로 방통위 위원 임명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곤 했다.
그러나 양문석 사무총장의 경우는 친노좌파 언론세력의 행동파이긴 하나 최 부위원장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최 부위원장이 노무현 정권 시절 최고 실세로 활약한 반면, 양문석 위원은 한미FTA와 EBS 건 등으로 노무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즉 최민희 부위원장이 노정권의 주류였다면 양문석 총장은 비주류였던 것이다.
반대로 양총장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역할이 커진 이유도 최 부위원장의 민언련이 급격히 약화된 측면이 크다. 친노좌파 입장에서는 정권 재창출 실패의 책임이 있는 민언련보다는 노정권 당시에도 큰 방향에서의 원칙을 지킨 언론연대의 양문석 위원의 명분이 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른바 중도우파 진영에서의 양문석 총장에 대한 호감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양위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적 토론의 장에서도 운동판에서의 구호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압박해간다는 점이다. 이런 양위원과 중도우파 진영의 언론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직접 마주친 계기는 지난해 3월 국회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양위원이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과 함께 대체 위원으로 합류한 때이다. 양위원은 한나라당 측 추천 위원들을 다그쳤고, 이에 “양위원과 최상재 위원장이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양문석은 안티조선의 조선일보 기고 거부론에 동의하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달리 양위원은 초강경파라고 보기만은 어려운 측면도 함께 갖고 있다. 양위원은 미디어위 당시에 한나라당 측 추천의 강길모 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과 소통 채널을 열어놓고, 강경 대립하는 와중에 최대한 협상을 해왔다. 물론 당시 양위원은 강길모 회장에게 한나라당 측 위원들이 여론조사 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방적 협조를 구한 측면이 크지만, 어쨌든 양위원은 협상의 끈은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다. 또한 양위원은 미디어위 활동 이후 소통포럼에서 주최한 평가토론에도 유일하게 민주당 측 위원으로 참여한 바도 있다.
이러한 양총장의 태도는 단순한 인맥관리 차원을 넘어서, 상대를 압박을 하든 회유를 하든 협상 채널만은 유지한다는 근본적인 가치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위원은 친노좌파 언론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선일보 기고의 정당성을 주장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시기는 안티조선 세력의 최고 절정기였던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양위원의 조선일보 기고론은 “조선일보의 많은 독자들에게 진보진영의 메시지를 던질 기회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이는 강준만 교수의 안티조선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미디어위 활동 당시에도 상대 측의 채널을 놓지 않았듯이 양위원의 가치관으로 굳이 조선일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양위원은 민주당의 추천과 국회 의결, 대통령의 임명 절차 과정에서 방송과 통신 관련 영역에서 15년 이상 활동 경력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진통을 겪었다. 1966년생으로서 사실 상 방송위까지 합쳐 최연소 위원에 오르다보니 연수가 안 맞았던 것이다. 이에 양위원 측은 EBS, 한국방송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구 한국언론재단)의 경력까지 합쳐 15년 10개월을 입증하여 가까스로 데드라인을 넘어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도우파 진영에서는 양총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이는 이념적인 잣대보다도 오히려 산업적 측면에서의 경계심이 발동하는 듯하다. IT 전문매체인 아이뉴스24의 김현아 기자는 양위원이 민주당 추천으로 확정되었을 당시 “활동가 시절의 투쟁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방통위까지 소모적 이념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방통위가 건전한 합의 기구 역할을 하는 데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자칫하면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며 합리적인 정책가로서의 역할을 주문했다.
미디어위 활동 당시 양위원과 비공식 협상 채널로 소통을 해온 강길모 회장 역시 “어차피 누가 되든 민주당이 추천하는 인사는 친노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면, 양문석 카드는 그나마 괜찮은 편”, “다만 방통위는 미디어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중요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공식 기구이므로, 추천 세력이 아닌 국민만을 보고 성실히 활동해주기 바란다”는 점을 양위원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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