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청자위원회 5월 정례회의가 지난 27일 열렸다. 이날 회의는 몇몇 시청자위원들이 불참하고 의견서 또한 모두 16건으로 지난 회의들 중 가장 적은 축이었지만, 사실상 제20기 시청자위원회 정례회의 중 가장 뜨거운 논의의 장이 벌어졌다. KBS1 ‘뉴스9’에 보도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은 가운데, 지난 5월5일 방영된 ‘추적 60분’ ‘천안함, 무엇을 남겼나’ 편에 대해 시청자위원들과 KBS 사측의 열띤 공방이 벌어지면서 여러 위원들과 사측 임원들이 함께 질의와 대답을 반복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디어워치 56호에 게재된 KBS1 책 소개 프로그램 ‘책 읽는 밤’의 패널 및 서적 선정에 있어서 좌편향 문제에 대해, 본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문원 시청자위원의 의견이 11번째로 제기됐다.
KBS 측 “공영방송에 이념편향 안 된다는 지적 겸허히 수용”
이문원 위원은 무려 5페이지에 걸친 의견서 내용에 대해 “이미 저희 매체에서 제기된 내용”이라며, “간단히 말하자면, KBS 책 소개 프로그램이자 지상파 유일의 책 소개 프로그램 ‘책 읽는 밤’이 채널 구성 및 서적 선정 등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 좌편향돼 있다는 문제다. ‘좌편향적 경향’ 정도가 아니라 그냥 ‘좌편향’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 지적했다.
이문원 위원은 이어 “모든 패널들, 임헌영, 강지원, 박태균, 이여영, 조한혜정, 강명석, 이숙경, 기선 등은 모두 이념적 좌편향 인사들이며, 게스트로 출연한 안동복 교사와 이번 교육평론가는 한겨레에 글을 기고하는 인사들, 그리고 한겨레 자매지 씨네21의 김소희 기자도 출연했었다”면서 “소개하는 서적들도 번역서나 전문서적을 제외하곤 대부분 좌파 성향 서적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짚었다.
이문원 위원은 “기사화된 후 최근 몇 회를 보니 상당부분 좌편향성이 해소된 것 같아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래도 지난 방송분을 통해 시청자들에 끼친 영향과 출판시장에 끼친 영향 등을 감안해, 어떻게 이런 게이트키핑 실패가 이뤄졌는지 자초지종을 듣고 싶다. 또 담당PD가 “뭐가 좌편향이냐. 아무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건 공영방송으로서 마인드 차원 문제다.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는 물론 있지만, 공영방송 입장에서 개인의 사상적 경향을 프로그램에 부여해선 절대 안 된다. 제도적 틀을 아무리 갖춰놔도 공영방송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대처방안 또한 듣고 싶다”고 제기했다.
이에 답변에 나선 오필훈 KBS교양제작국장은 “일단 지적하신 방송분에 대해서는 출연자 섭외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섭외가 되는 측을 선정하다보니 무리가 생긴 측면이 있었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념편향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이게 된 점을 많이 반성하고 주의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5월 개편에서는 지적하신 문제점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알렸다. 오 교양제작국장은 “먼저 출연자를 교체 또는 보강했다. 지적하신 이여영, 이숙경, 기선 등 반고정 출연자들은 모두 교체했고, 아예 반고정 출연제도 자체를 없앴다. 책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 다양한 패널들을 모실 예정이다. 패널들도 객관성이 확보된 각계각층의 중립적인 인사들을 모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제작진도 일부 교체한 상태다. 향후 게이트기핑에 주의하겠다. 공영방송에 이념편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추적 60분’, 편집 과정에서 균형 못 잡았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추적 60분’ ‘천안함, 무엇을 남겼나’ 편에 대해서는 호천웅 시청자위원과 김상준 시청자위원이 함께 의견을 제시했다.
호천웅 위원은 “이 방송을 시청하고 내 머리 속에 남는 내용은 ‘침몰 원인은 좌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군에서는 일은 엉터리 많다. 이번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도 엉터리다. 조사하나 마다나’ 등이었다”면서, “첫째, 무엇을 얻으려고 기획하고 제작하고 방송한 프로그램인가. 둘째, 방송이 나간 뒤에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하는가. 셋째,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내용이었고 합당한 KBS의 제작이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김상준 위원도 “이날 ‘추적 60분’에서 이종인씨의 ”버블제트는 아니다“라는 말을 비롯해서 유가족을 대표한 인사의 ”최초 보고에 좌초란 말의 설명을 들었다“는 말 등은 국가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말이다.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지 아직도 휴전상태에 적을 대치한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아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답변에 나선 오진선 KBS기획제작국장은 “민군합동조사단의 버블제트에 의한 침몰이라는 중간발표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의혹제기는 군의 일관성 없는 보고와 나중에 결국 공개하는 자료까지 보안을 이유로 미루는 태도 등이 원인이라 지적했다. 이러한 의혹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조사가 가능한 한 투명하게 진행되고 더 많은 것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다만 의혹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쪽에 무게를 둔다는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민감한 사안의 방송은 방송을 보는 여러 가지 시각을 고려해서 더욱더 신중을 기해 제작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오 기획제작국장의 답변에 호천웅 위원이 “방송이 나간 5월5일은 김정일이 중국에 가 있던 시점이었고, 또한 다음날 KBS 뉴스광장 해설에선 아예 버블제트가 원인이라고 확정되는 시점이었다”면서 “그 시점이 과연 좌초 의혹을 제기할 시점이 맞았느냐”며 반박했고, 이외 여타 시청자위원들이 계속 KBS 측 답변에 불만을 제기하자 길환영 KBSTV제작본부장이 마이크를 이어받아 보충설명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길환영 TV제작본부장은 “기획의도 자체는 그 당시까지 상당히 많은 침몰 원인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횡행하고 있던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뭔가 저희가 정확한 취재를 통해서 여론이 조금 수그러들 수 있도록 순기능적인 그런 기획의도를 가지고 했다”면서 “그러나 편집, 취재 과정에 좌초에 무게가 실렸다. 그로인해 당초 기획했던 대로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한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길 TV제작본부장은 “내부에서도 논의가 있었고, 제작진에도 이를 전달했다”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근거로 해석됐어야 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다. 향후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조직 개편 시 시청자 중심 조직으로 재편할 것”
결국 KBS 측 답변에는 조대현 KBS부사장까지 나서야했다. 조 부사장은 “앞에 이문원 위원이 지적하신 ‘책 읽는 밤’과 ‘추적60분’은 크게 보면 시청자에 대한 우리 제작자들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는 다양한데 그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는가에 대해서 좀 더 수용자 위주로, 시청자 위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읽는 밤’은 개선이 됐고 ‘추적60분’도 내부적으로 상당히 토론이 있었다”면서 “이런 시점에서 굉장히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인데 편집이라거나 내레이션이라거나 인터뷰나 이런 것을 상당히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 KBS가 조직 개편을 하는 첫 번째 목표가 시청자 중심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며, “프로그램도 따라서 다양한 시청자의 의견을 어떻게 KBS가 기준을 잡아서 가느냐는 것을 목표로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제작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BS 시청자위원회 다음 정례회의는 6월1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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