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IT 붐이 일면서 동시에 다양한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 10여 년 동안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분야가 바로 콘텐츠 산업, 그 중에서도 콘텐츠 저작권과 유통 문제는 ‘불법 다운로드’라는 말과 함께 보통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문제가 됐다. 12월 9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정식출범할 예정인 ‘콘텐츠공정유통협의회’는 지난 2일 사전 배포한 보도 자료를 통해 웹하드-P2P 업체들의 자율정화 지도와 사용자들에 대한 올바른 저작권 교육, ‘공정이용’에 대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 제시, 저작권자와 콘텐츠 유통업체 간의 새로운 수익창출 방식 등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콘텐츠공정유통협의회는 인터넷 개혁을 주도해온 중도우파 측의 인터넷미디어협회, 진보좌파 측의 인터넷기자협회 인사가 동시에 참여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본지는 이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게 된 전경웅 前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사무국장을 만나 이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 그동안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주로 포털 비판에 주력했는데, 이번 협회 창립에 나서게 된 계기는?
답변: 지난 3년 동안 인터넷미디어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의 문제는 뉴스 콘텐츠와는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생산자 겸 사용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동안 제가 직접 보고 겪은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은 말 그대로 극단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시장은 소프트웨어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한 상황이다. 반면 불법적인 콘텐츠 유통시장은 법적제재와 다양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 원인을 다각도에서 검토한 결과, 답은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문화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지적 노동의 가치’와 ‘창의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측면이 강했다. 대표적인 예가 논문표절이나 대학에서의 교재 복사물 배포, 대기업의 특허침해 등이다. 여기다 90년대 말 IT 붐이 일면서 한동안 유행하던 ‘카피레프드 운동’이 퍼지면서 ‘콘텐츠 무료공유’가 마치 첨단유행인양 인식된 적이 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돈을 내고 콘텐츠를 구입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부와 언론, 저작권자들만의 노력으로는 콘텐츠 시장을 회생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부터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역시 눈에 확 띠지는 않지만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유통업계’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생각을 하던 차에 뜻있는 웹하드-P2P 업체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질문: 하지만 웹하드-P2P 업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특히 ‘야동’이라 불리는 음란물, 드라마와 영화 등의 불법 다운로드 대부분이 웹하드-P2P를 통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이것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돈벌이를 포기하겠는가.
답변: 당연한 지적이다. 지금의 서비스를 모두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업체들이 직접 이 같은 콘텐츠를 올리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웹하드-P2P 업체들은 ‘불법 다운로드’의 장(場)을 마련해 회원만 끌어 모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공유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문제를 바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웹하드-P2P를 사용하는 인구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업계 추산으로는 자그마치 2천500만 명 이상이 될 거라고 한다. 물론 중복가입한 사람도 있겠으나 그 수를 아무리 줄인다 해도 국내 거대 포털 사용자와 맞먹는 사용자들이 저작권 문제에 대해 수긍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웹하드-P2P업체를 모두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사용자들은 오히려 또 다른 불법 다운로드 공간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알려진 웹하드-P2P사이트가 아니라 정말 음성적인 사이트가 범람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 보호 또한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차라리 유통업계와 저작권자, 정부기관이 협력해 단계적인 ‘온라인 콘텐츠 사용료 합리화’ 추진을 통해 사용자들이 서서히 합법적인 콘텐츠 사용에 적응토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3~5년의 기간을 두고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단계적인 가격 합리화를 추구한다면, 유통업계의 반발이 적은 것은 물론 저작권자와 사용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생각이다.
사용자와 저작권자와의 다운로드 적정 가격 합의가 문제의 핵심
질문: 그 가격 합리화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단순한 가격인상 아닌가.
답변: 현재 웹하드-P2P 업계가 사용자들로부터 받는 돈은 업체의 회선 사용료, 스토리지 비용 등이다. 불법 콘텐츠의 사용료가 저렴한 이유다. 350mb 정도의 드라마는 150원 내외, 700mb~1gb 정도의 영화는 300~500원 수준이다.
하지만 저작권자들은 다운로드도 아닌 다시보기 요금을 드라마 한 편에 700~1,000원 정도(공중파 방송 기준), 영화는 3,500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저작권자들이 주장하는 요금과 사용자들이 지불하는 요금의 차이가 무려 10배 이상 난다.
여기다 국내 저작권자들은 콘텐츠 유통업체에 지금까지의 모든 손해를 배상하는 건 물론이고 새로운 콘텐츠 사용료로 수억 내지 수십억 원의 거액을 일시에 내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통업체나 콘텐츠 서비스 업체의 입장에서는 거액의 사용료를 주고 구입한 콘텐츠가 잘 팔리지 않을 경우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런 거래방식에도 변화를 주자는 것이다.
우리 협의회는 앞으로 사용자와 저작권자 간의 기대요금 격차를 줄이면서 장기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과금 방식을 제안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물론 사용자들이 내릴 것이다.
질문: 저작권자들과 웹하드 업체의 시각 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답변: 우후죽순 생겨나는 웹하드-P2P 업체들을 찾는 사용자의 숫자가 사이트 당 100만 명이 넘는다는 건 뭘 의미하겠는가. 지금 국내 저작권자들이 사용자들에게 요구하는 사용료가 우리 소득 수준에 대비해 과연 적절한 수준인가.
불법유출로 논란이 됐던 <해운대> <박쥐> 등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가 일부 웹하드-P2P 업체와 계약을 통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했는데 이 서비스로 저작권자와 유통업체가 함께 상당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건 뭘 의미할까. 연 매출 수십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형 미디어기업들이 만든 웹 TV가 자국과 영국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비스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한 마디로 지금까지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은 사용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공급업체와 관계자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이에 대한 반발로 음성적 시장이 커졌고 결국 양성 시장과 음성 시장 모두가 패배하는 게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황폐화된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 시작을 위해서는 먼저 양 쪽이 한 걸음씩 양보해야 한다는 게 우리 협의회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협의회는 먼저 콘텐츠 유통기업들에 다가선 것이다.
질문: 국내 콘텐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그렇다 치자. 가장 심한 게 해외 저작권 침해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답변: 중요한 지적이다. 해외 저작권 침해 문제를 지금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가는 나중에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실은 웹하드-P2P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받는 저작물이 소위 ‘야동’이라고 부르는 포르노, 해외 드라마, 해외 영화 순이라고 한다. 포르노는 국내법상 음란물이므로 저작권 문제로 논의하기에는 부적절한 듯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그 다음 우리나라 사용자들이 즐겨 다운로드 받는 해외 드라마나 영화 등의 저작권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이들 저작권은 국내에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 있는 저작권 대리단체 또는 업체가 수백여 개 있다고 하나 이들은 해외 저작권자를 대신해 업로더를 신고하고 합의를 보는 일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이들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 미디어 그룹의 콘텐츠를 정식으로 수입 유통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24’와 같은 작품은 전체 제작비가 1억 달러 이상이 들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프린지’는 첫 방송 제작비만 4천만 달러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콘텐츠를 미국식대로 저작권료를 내고 사온다면 온라인 사용 요금이 얼마로 책정될 것이며, 그 돈을 맘 놓고 내고 볼 수 있는 네티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형편이니 불법 업로더가 양산되고 저작권 대리업체들은 권리 침해자 신고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3년 이내 국회 비준이 예상되는 한미 FTA가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가 아닌 비친고죄로 바뀐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 지출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국내법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는 실제손해액을 배상하게 되어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 업체들이 막대한 제작비, 그동안의 한국 내 흥행기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 거액의 손해배상을 하게 될 사람들(다운로더)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 때쯤 되면 미국계 미디어 그룹들은 아마도 우리 국민들을 한국 법으로 들었다 놨다 하게 될 것이고 여기서 생기는 갈등은 사회 문제를 넘어 외교 문제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 협의회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향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각자의 눈앞의 이익은 잠시 제쳐두고 모두 협력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다.
해외 거대 미디어그룹 콘텐츠도 합법화 시켜야
질문: 해외 콘텐츠 유통시장은 어떤가. 다른 나라에서도 엄격히 처벌한다고 알고 있다.
답변: 해외 콘텐츠 유통시장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웹하드-P2P 업체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일본,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아예 무료로 볼 수 있는 웹 TV 서비스를 하는 미국, 개인들이 개인적 용도로만 콘텐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프랑스, 콘텐츠 불법유통이 심각한 수준임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러시아나 중국 등 나라 별로 자신들의 정서와 문화에 따라 다른 환경이 형성되었고, 그 환경에 맞는 제도와 원칙이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선진국 대부분은 저작권이라는 개인의 배타적 권리를 상업적으로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EU, 일본 쪽 저작권 업체들은 우리나라에서 웹하드-P2P 업체가 융성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무튼 다른 국가들은 자신들의 정서에 맞게 콘텐츠 산업 육성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불법 다운로드가 보편적 현상이며 그 원인이 저작권자와 유통업체, 사용자 간의 시각차가 심한 데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모두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 국민의 다수가 웹하드-P2P를 통해 콘텐츠를 즐겨 다운로드 받는 게 현실이며, 그 원인이 어느 한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 콘텐츠공정유통협의회에서는 향후 어떤 활동을 전개할 건가.
답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미 밝힌 것처럼 초기에는 웹하드-P2P업체들의 ‘굿다운로더 캠페인’ 동참 권고, 콘텐츠 불법유통 자율단속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 저작권자와 유통업체 간의 간담회 주최 등을 해나갈 것이다.
또한 콘텐츠 사용자 중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위해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불법 콘텐츠를 다운받으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협의회와 연대 단체들이 나서 교육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그동안 거의 없었던 저작권자와 유통업체 간의 대화 기회를 마련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자금난에 어려움을 겪는 저작권자를 위해 유통업체가 기금을 마련한다거나, 훌륭한 콘텐츠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유통업체와 저작권자가 협력한다거나 하는 기회를 계속 마련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자와 유통업체 간의 대화가 일정수준 결실을 보게 되면, 함께 해외 저작권 업체들과의 대화도 시도할 것이다. 특히 개별 기업이 접촉하기 어려운 해외 거대 미디어 그룹들과의 접촉에도 노력할 예정이다.
질문: 협의회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답변: 우리 협의회는 구성부터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게 아니라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주로 인터넷 시장 개혁을 주장해온 중도우파진영의 인터넷미디어협회와 진보좌파 진영의 인터넷기자협회 인사들이 동시에 참여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단순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웹하드-P2P 사용자의 숫자와 우리 국민들의 열정으로 미루어 잘만 다듬으면 몇 년 내에 수조 원 이상의 시장으로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다각도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런 공감 속에 이념과 성향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속속 참여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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