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이 발표되었다. 경제나 외교 관련 부처의 경우, 내각의 장관에 따라 향후 어떤 정책이 집행될지, 모든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국가의 비전이나, 젊은 세대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처임에도, 별다른 정책적 논쟁없이 장관이 임명되는 곳이 있다. 바로 문화관광부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서라면, 외교 및 경제와 관련하여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좌우를 망라하여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노정권이 젊은 세대의 꿈을 앗아간 결정적인 실정이 바로 문화정책이었다는 점은 다들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실수가 아니라 사실상 의도한 결과였다.
첫째, 노정권은 인터넷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포털사 등의 저작권 침해를 방조했다. 저작권법의 개정으로 상습적인 저작권침해를 방조하는 회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졌지만, 문광부는 정권 말기에 가서야 형식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음반시장과 출판만화 시장은 정권 5년간 4분의 1 규모로 축소되었다. 영화는 DVD 등 2차 판권 시장이 사라졌고 인터넷콘텐츠 시장은 붕괴되었다. 정권이 임명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안정숙 위원장조차 “정부의 인터넷 우대 정책 탓에 영화시장이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정도였다.
둘째, 노정권은 문화예술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통해 제작자 및 문화단체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권과 코드가 맞는 단체나 인사의 기금 나눠먹기 논란을 야기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진보좌파단체인 민예총의 독식 문제나, 대선 때만 되면 정권과 코드가 맞는 영화가 제작되는 현상은, 과다한 직접 지원 정책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셋째, 규제중심의 경제 영역과 달리, 문화영역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공정 경쟁 및 독과점 현상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는 인터넷 권력과 문화권력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존재 자체가 도로법과 옥외광고물법의 위반혐의가 짙은 지하철 무료신문이 번성하여 유료신문가판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다. 또한 연예기획사들은 무차별적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웠고, 포털뉴스는 공룡화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규제는 최소, 지원은 최대”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이러한 명분에 자유시장주의자들조차도 현혹되어, 이들의 문화권력 장악에 대해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문화강국 미국이, 문화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강력한 저작권보호 및 공정경쟁 정책을 펴왔다는 점은 무시되었다. 차기 정부는 현재의 문화정책을 180도 돌려놓을 정도의 근본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유명무실했던 저작권보호센터의 기능을 확대하여, 문화 콘텐츠 보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관련 법규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집행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
둘째,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패거리들의 나눠먹기 싸움이 불가피한 직접 지원 정책을 소비자 지원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가장 좋은 사례가 공연예술의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사랑의 티켓’ 제도이다.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공연, 미술 등 순수예술은 물론 영화와 출판물 등을 경제적 부담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이 제도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점차 권력화되는 대중문화산업의 경우, 미국이 성공적으로 도입한, 공인에이전시, 즉 매니저 자격제도 등을 입법화하여, 대중문화시장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문화권력을 양산하다보니, 이들의 해외 진출만 지원하여, 오히려 필리핀, 태국, 몽골 등 이웃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과 대만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점점 자폐화되고 있다. KTV 같은 정권 홍보 방송은 폐지시키고, 24시간 내내 아시아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영채널이라도 하나 개설하는 것이 문화네트워크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세계로 뛰어들고자 하는 분야는 바로 문화이다. 고로 문화정책은 세대정책이자 미래정책이다. 정권 홍보와 기금 지원이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접고, 규제는 최소화하되 정확히 하고, 지원은 최대화하되, 국민 모두가 혜택받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 변희재
* 조선일보 기고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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