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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야후가 프랑스법에 완패한 이유

사이버세계를 조종하는 인터넷권력전쟁

1995년 스탠포드의 두 대학원생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취미로 시작해 2000년 ‘포털의 제왕’으로 등극한 야후는, 1900년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던 사이트였다. 당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집착했던 그들은 정부를 답답한 바보로 취급했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짓으로 여겼다.

2000년 2월 평생을 바쳐 신나치주의에 맞서 싸우던 유태계 프랑스인인 마크 노벨은 파리에서 인터넷을 통해 나치 기념품을 검색하던 중, 야후닷컴의 경매 사이트에서 나치의 상징인 철십자가 새겨진 완장, 비밀경찰 전용 단검, 강제 수용소 사진, 독가스인 자이클론 B 가스통 복제품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나치 기념품들이 줄줄이 검색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 물건들이 야후가 호스팅 한 사이트를 통해 프랑스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2년 전 AOL(America Online)에서 나치 사이트를 발견한 뒤 공개적인 투쟁을 벌여 회사의 대외 이미지를 추락시키겠다고 위협해서, AOL이 결국 문제의 사이트를 폐쇄하게끔 만들었던 그는 “야후가 프랑스 내에서 나치 물품 거래를 금지하는 프랑스 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야후는 노벨이 어처구니없고 시대착오적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야후는 “프랑스 법이 미국에 있는 웹사이트에 적용된다면 독일과 일본법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게 따지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중국 법도 예외가 아니다. 매일 아침 ‘자, 오늘은 누구 법을 따를까?’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며 “나라도 많고 법도 많은데 인터넷은 단 하나뿐 아닌가”라며 노벨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노벨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현실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은 나라마다 다른 규제를 적용 받는데 왜 야후는 프랑스에 해를 끼치고도 예외인가”라고 되물으며 “예를 들어, 포드는 자동차를 판매할 때 여러 나라의 다양한 안전 및 환경 관련법들을 의무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는데 왜 야후는 사업 대상 국가의 법에 대해 예외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냐”면서 야후가 해당 사이트를 삭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장-자끄 고메즈를 수석판사로 한 파리 대심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야후는 “프랑스 법을 준수하는 프랑스어 판 사이트가 있지만 프랑스인들도 미국 야후 사이트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후는 자신들은 포드와 달리 고객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아낼 능력이 전혀 없는 만큼 자사의 디지털 상품이 어디로 가는 지 통제할 방법도 없다면서, 만약 야후가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법을 따라야 한다면 미국 서버에서 나치 관련 물품을 삭제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나라의 야후 사용자들도 그 물품을 구매하지 못하게 됨은 물론 사실상 ‘프랑스 법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고메즈 판사는 야후에게 프랑스 웹 사용자를 차단할 방법을 찾아내라며 일단 두 달의 사간을 줬다. 그런데 이 기간 중 신생 미국 기업인 인포스플릿(infosplit)의 창업자 시릴 하우리가 원고 측 변호사인 스티븐 릴티에 연락해 인터넷 콘텐츠의 발원지를 찾아내 그걸 기준으로 콘텐츠를 차단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한 사실을 알렸다. 이 신기술을 통해 미국 헌법 1차 수정조항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아야 한다던 야후 서버가 실제로는 엉뚱하게 스톡홀롬에 있는 어느 사이트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야후가 유럽 내 사이트 접속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야후 사이트를 스웨덴에 있는 미러 사이트에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고메즈 판사는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빌트 서프, 영국의 인터넷 전문가 벤 로리, 프랑스 기술전문가 프랑수와 월롱 세 사람을 임명하여 하우리의 IP확인 기술과 국적 자동보고 기술을 동원해 야후가 프랑스로 전송되는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차단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들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는 야후가 사실상 프랑스 사용자의 90%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고메즈 판사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2000년 11월 20일 역사적인 최종 판결문을 발표했다. 그는 야후가 금지된 나치 경매 사이트를 프랑스에서도 접속할 수 있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법원이 야후와 야후 서버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야후가 미국 야후 사이트를 방문하는 프랑스 사용자에게는 프랑스어로 된 광고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며 야후가 프랑스 사람들을 위한 맞춤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는 증거인 동시에 지역별로 사용자를 찾아내 차단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발끈한 야후는 미국 법원의 다른 명령이 없는 한 고메즈의 판결을 무시하겠다고 발표하고 한 달 뒤 미국에서 프랑스 법원의 판결에 대항해 맞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야후에겐 약점이 한 가지 있었다. 프랑스 법원이 미국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야후 프랑스 지사로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수입을 포함해 프랑스 안에 있는 야후 자산을 압류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야후의 우려처럼 고메즈 판사는 2001년 2월까지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하루 10만프랑(약 1만3천달러)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고민하던 야후 경영진은 결국 프랑스 법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2001년 1월 2일 야후는 “앞으로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단체와 관련된 물품은 야후 내 어떤 상거래 품목으로도 등록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야후 경매 사이트에서 모든 나치 물품을 삭제해버렸다. 물론 야후는 “이 결정은 프랑스 법원의 판결 때문이 아니라 나치 경매에서 비롯한 부정적 대외 이미지 때문”이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이 야후 이야기에는 ‘국적과 관계없이 사람이나 물건이 속하여 있는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한다’라는 국제 사법의 원칙인 ‘속지법’에 저항하는 기술이었던 인터넷이 속지법 집행을 도와주는 기술로 탈바꿈하게 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00년 “우리 사이트에 접속하는 웹 사용자들을 국적에 따라 걸러내라는 건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난하던 야후 창립자 제리 양이 현재는 “세상 어디에서든 사업을 하려면 해당 지역 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본글은 잭골드스미스의 <인터넷권력전쟁>을 발췌요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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