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시작되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퇴직연금 시장의 개방 문제가 금융분야의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보험강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이 한국의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현지법인이나 지점없이 이뤄지는 '국경간 거래'의 허용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10일 재정경제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EU가 FTA 금융분야 협상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기업을 상대로 판매하는 퇴직연금과 석유화학업체들을 상대로 하는 화재보험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장에 대한 국경간 거래 허용이 EU 측의 핵심 요구사항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팽창 국면에 있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EU의 주된 관심 분야다.
신제윤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은 "영국과 프랑스의 보험사들은 개인을 상대로 한 생명보험 등보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퇴직연금과 화재보험 등에 관심이 많다"며 "이 분야에 대한 요구는 미국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끝난 한미FTA 협상에서는 선박보험, 항공·우주보험, 수출입적하보험, 재보험에 대해서만 국경간 거래를 허용키로 합의됐다. 이 경우에도 인터넷, 전화 등 비대면 방식으로만 판매가 허용된다.
그러나 만약 EU와의 FTA에서 퇴직연금 시장의 국경간 거래가 허용되면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일부 잠식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류건식 보험개발원 재무연구팀장은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력이 아직 열악해 국경간 거래가 허용될 경우 상당한 시장잠식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유럽 보험사들은 퇴직연금 자문과 운용에 있어 훨씬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시장이 개방되면 자산운용에 강한 유럽 금융사들이 확정기여(DC)형을 중심으로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적극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형으로 나뉘는데, 확정급여형과 달리 확정기여형은 운용실적에 따라 근로자가 퇴직 때 받는 금액이 달라진다.
반면 한미FTA 협상에서 보험의 국경간 거래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데 비춰 한-EU FTA에서도 큰 폭의 개방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실제로 퇴직연금 시장이 EU에 개방되더라도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퇴직연금에 대한 국경간 거래가 허용돼도 인터넷이나 전화, 팩스를 통한 비대면 판매만 가능하기 때문에 영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퇴직연금 제도도 나라마다 다르고 초기 투자비용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영국 등의 보험사들이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적극 뛰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올 2월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는 23만명으로 전체의 3.5%에 그쳤다. 적립금액은 약 8200억원.
그러나 오는 2010년까지는 지금의 퇴직보험(보험사)과 퇴직신탁(은행, 증권사)도 반드시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험개발원은 2010년 퇴직금이 100% 퇴직연금으로 전환될 경우 퇴직연금 규모가 67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김익태기자 ep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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