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강종구기자][신용등급 즉각 '부정적 관찰대상'…전문가들 "생존가능성 위협"]
동부한농의 동부일렉트로닉스 흡수합병이 의혹의 도마에 올랐다. 납득할만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결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고, 합병을 전후한 일련의 과정이나 정황에도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부그룹측의 설명과 달리 합병의 목적이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이 아니라 동부일렉트로닉스 구하기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동부그룹측이 적극적으로 나선 합병이 아니라 은행 등 대주단의 압력에 의한 결정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 "중환자 간병인데 무슨 시너지?"
동부일렉트로닉스 흡수합병은 동부한농에게 차세대 성장엔진을 달아주었다는 것이 동부그룹측의 설명이다.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동부그룹측은, 경상이익이 계속 줄고 있는 동부한농은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필요가 대두됐고, 바이오와 전자재료의 육성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세계적 강국인 반도체업종에 주목했고 결국 동부일렉트로닉스 합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신용평가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동부측은 전했다.
그러나 실제 신용평가사와 기업분석가들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중환자 간병하게 생겼는데 시너지는 무슨 시너지냐, 한마디로 동부한농이 피보는 케이스"라고 말했다. 성장동력 확충, 반도체사업의 경쟁력 제고 등 동부그룹측이 내세우는 합병 이유는 설득력이 없고,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결합이기 때문에 아무도 합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합병발표가 나오자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동부한농의 신용등급에 `부정적관찰대상`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물론 투기등급(BB)과의 합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모 증권사가 합병직후 `사내한`으로 내놓은 보고서는 매우 비관적이다. 동부일렉트로닉스 흡수합병이 동부한농의 재무구조는 물론 생존가능성까지 크게 위협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마어마한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차입금이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투자규모(10조원 추산)를 흡수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 이에 따라 동부한농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BB+이하)으로 추락이 불가피하고 결국에 가서는 동부제강 등 다른 계열사가 제2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 "동부일렉트로닉스 일병구하기..동부한농은 희생양"
회사 합병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신용평가사나 기업분석가들은 합병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위기에 처한 `동부일렉트로닉스 구하기`라는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익명을 전제로 "합병은 회사가 말하는 성장동력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가 더욱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는 근거중 하나가 여러 은행으로 구성된 대주단과 동부일렉트로닉스가 맺은 신디케이트론 계약이다.
2005년 12월 동부일렉트로닉스는 대주단과의 대출계약을 변경했다. 1조200억원 및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신디케이트 대출금중 198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의 거치기간을 2년 연장한 것. 그러나 전에 비해 훨씬 완화된 2차 신디케이트론의 재무약정 비율을 동부일렉트로닉스는 맞추지 못했다. 부채비율 500% 미만은 충족했지만 이자비용 대비 이자ㆍ세금ㆍ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이 기준인 1.5배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0.6배에 불과했다.
약정대로 하면 대주단이 대출계약을 파기하고 기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셈. 그러나 회사와 대주단은 조건부로 2006년에는 재무약정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해 놓았다. 그 조건이란 것이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으로 4000억원을 조달한다는 것이었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재무상태는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 2005년과 지난해 적자규모가 3000억원대로 급격히 확대됐다. 자산규모는 동부한농의 2배에 달하면서도 매출액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2003년 50%도 안되던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현재 458%로 급격히 높아졌다. 차입금은 무려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외부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도 일종의 경고를 보냈다. 감사보고서에서 `계속기업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음을 언급했다.
삼정회계법인은 "재무제표 작성의 전제인 계속기업 가정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하에서는 부채상환과 기타 자금수요를 위한 자금조달계획과 안정적인 경상수지 달성을 위한 재무 및 경영개선계획의 성패에 따라 그 타당성이 좌우되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 복잡한 이해관계..`절묘한 타협?` 의혹 제기
일부 회사채 전문가들은 합병이 장기적인 비전과 검토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 동부그룹의 자발적 합병이 아니라 대주단 등 외부압력을 수용하기 위해 떠밀렸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의 한 관계자는 "동부한농측에 문의한 결과 상당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도 합병 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임박해서야 알았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동부그룹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래 줄기차게 다른 계열사에 부담을 전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며 "그래서 동부일렉트로닉스 문제가 심각해도 다른 계열사가 부담하는 위험을 제한적으로 해석해 왔고 이번 합병이 충격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의 막후를 보면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주요 주주와 대주단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준기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 대부분을 동부일렉트로닉스에 담보로 제공하고 있는데다 연대보증까지 섰다. 그룹 계열사중 동부건설과 동부제강은 각각 1대주주와 2대주주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대주단은 동부전자 시절 체결한 신디케이트론으로 1조원 이상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동부일렉트로닉스 자체적인 상환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특히 산업은행의 경우 935억원의 신용보강까지 제공하고 있고 일부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대주단측에서 2차 신디케이트론의 재무약정을 위반했을 경우 다른 계열사와 합병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결국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차입금 부담을 동부한농이 떠안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설명회에 참석했던 한 채권보유기관 담당자는 "산업은행은 동부한농 회사채를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고, 합병발표를 불과 한달 앞두고 400억원 가량의 회사채를 발행했다"며 "이 자금으로 산업은행의 시설대출금 454억원의 대부분이 상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종구기자 dark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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