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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위안부 이용수 “실은 원피스와 구두에 홀려 위안부 됐다” KBS 영상 발굴

“이용수 씨는 본인 증언만 들어봐도 위안소 포주의 꼬임에 넘어간 경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알려진 이용수 씨가 일본군 강제연행이 아니라 실은 위안소 포주의 유혹에 위안부가 됐다는 증언을 한 내용이 공영방송사 방영 기록으로까지 남아있음이 확인됐다. 큰 파문이 예상된다.

1992년 8월 15일 KBS ‘생방송 여성, 나는 여자정신대 – 민족수난의 아픔을 딛고서’는 당시 최초로 위안부 증언을 한 김학순 씨를 중심으로 이용수 씨 등도 출연해 이른바 ‘피해자’ 증언을 했다. 



당시 얼굴도 이름도 가렸던 이용수 씨는 사회자 오숙희 씨가 “어떻게 정신대(위안부)로 가게 됐습니까?”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네, 저는 그 때 나이 열여섯살인데, 헐벗고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가 원피스 한 벌하고 구두 한 켤레를 갖다줍디다. 그걸 주면서 가자고 그래가지고, 그걸 받아가지고 아주 그 때는 뭐 그런 줄도 모르고 좋다고 따라갔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자 오숙희 씨는 다소 당황한 듯 “아, 그래서 꼬임에 넘어가셨군요”라고 하면서 이 씨의 증언이 일본군 강제연행 증언이 아니라고 재확인까지 해줬다.

일본군 강제연행을 부인한 이 씨의 증언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1993년도에 정대협이 채록한 ‘증언집 I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한울)에서도 이 씨는 똑같은 증언을 공식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이 씨는 당시 가출상태였다고 한다.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분순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통치마에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을 입고 게다를 끌고 있었다. 가서 보니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는 마흔이 좀 안 되어 보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옷보퉁이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속에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있다고 했다. 보퉁이를 살짝 들쳐 보니 과연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이번에 이 씨의 결정적 KBS 증언 영상을 재발굴한 이는 최근 연일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는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이다.

김 소장은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性的)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명백히 규정돼 있다”면서 “하지만 이용수 씨는 본인 증언만 들어봐도 위안소 포주의 꼬임에 넘어간 경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데도 지금껏 거짓말로 위안부법에 따른 각종 지원, 혜택을 누려온 부정수급자이자 범죄자”라면서 “이 씨의 범죄에 대해선 지난 1월 말 이미 경찰에 고발한 바 있으며,  KBS 증언 영상을 여성가족부에 제출해 자격박탈 민원을 넣을 것이고 여성가족부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용수 씨는 오는 16일, 하버드대학에서 하버드아시아태평양법대학생회(APALSA) 주최 원탁토의에서 위안부 ‘피해자’ 영상 증언을 할 예정이다. 최근 하버드대 램자이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 논란과 관련, 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이 원탁토의에는 이 씨는 물론 미국 위안부 결의안(HR121)을 이끌어낸 마이크 혼다 전 의원과 한국계 필리스 김 씨, 중국계 줄리 탕 씨 등도 참여한다.










[정정보도]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이 최근 이용수 씨의 위안부 증언들을 1차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검토한 결과 과거 미디어워치의 이용수 검증 보도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알려왔습니다. 김 소장의 지적은 다음과 같으며, 미디어워치는 이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정정하는 바입니다. 


(1) 이용수 씨의 위안부 관련 증언이 미디어워치의 지적처럼 1993년부터 최근까지 이십여 차례에 걸쳐 연도, 나이, 경위, 기간 등에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미디어워치가 연합뉴스 등의 관련 보도를 인용하여 증언 내용이 달라졌다고 지적한 '2007년 미국 의회 증언'과 '2018년 프랑스 의회 증언'은, 원 증언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같은 취지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두 증언에는 공히 “강제연행 현장에 군인이 있었다”, “등에 칼이 찔려 끌려갔다”는 ‘1993년 최초 증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강제연행 증언이 담겨 있는데, 이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내용은 아니고 실제로는 (2007년, 2018년이 되어서가 아니라) 이미 2000년을 전후로 하여서 등장한 내용으로 여겨진다. 이 씨의 ‘1993년 최초 증언’이 2000년대 들어서 국내외로 갑자기 과격한 강제연행 증언으로 바뀌고, 결국 2007년 미 의회에서까지 그렇게 바꾸어 증언한 경위를 추궁하는 것이 이용수 위안부 증언 변천 문제의 핵심이다. 이 씨가 ‘1993년 최초 증언’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최초 증언집은 더 이상 팔면 안 된다고 최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음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 미디어워치가 한겨레를 보도 등을 인용해 이용수 씨가 2016년 12월, 박유하 교수 결심 공판에서 한 증언은 미디어워치의 소개와는 달리 공식적인 '법정증언'이 아니다. 이 씨가 당시 증언대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씨는 일단 당시에 증언선서를 한 바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단순히 재판 방청인의 의견진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유하 교수의 관련 1심 기록을 직접 확인한 결과로도 이용수 씨가 법정증인으로 채택된 내역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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