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왜곡 수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올들어서는 교과서 출판 업체들이 문부과학성의 검정에 대비해 정부가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은 아예 신청 단계부터 '자체검열'을 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는 물론 출판사까지 조직적으로 역사왜곡에 가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부과학성이 30일 발표한 내년에 사용될 고교 교과서 일본사 A, B 검정 결과를 보면 이런 현상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담을 것을 요구해 파문을 일으켰던 문부과학성은 올해도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취지의 검정의견을 재차 제기하고 나섰다.
한 교과서에 기술된 '1963년 조선과의 사이에 다케시마(竹島.일본측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 문제가 발생했다'는 내용은 문부과학성의 수정의견 제시로 인해 해당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또 독도가 "1905년 편입됐다"는 주장도 쓰지 못하도록 하고 독도가 "일본의 영토다"라는 부분만을 교과서에서 강조하도록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군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국내외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교도(共同)통신은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은 검정 신청 단계부터 아예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교과서 회사측이 쟁점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측 견해를 배려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그동안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일부 양심세력들의 주장이 '군사대국화' '보수화'로 치닫고 있는 집권세력의 목소리에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소송이 제기돼 해결돼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는 부분도 검정을 거치면서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이처럼 교과서 업체들의 자체검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검정 의견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표현이 16군데나 나왔다는 것이 외교통상부의 분석이다. 그만큼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나 동해 표기 문제를 둘러싸고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합헌이라는 판결은 없다'는 표현을 '지금까지는 공식참배를 합헌으로 인정한 판결은 없다'는 식으로 비공식 참배는 합헌인 듯한 표현으로 바꿨다.
동해에 대해서도 '일본해가 세계 지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표현만을 강조하도록 했다.
이처럼 교과서 업체들이 정부의 수정 요구를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함에 따라 앞으로 집권당이나 정부의 성향에 따라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 수시로 변할 수도 있어 보인다.
올해의 경우 일본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자결 부문에 대해서도 '일본군에 의해 이뤄졌다'는 부분을 삭제토록 하는 등 국내 역사에 대해서도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벌써부터 과거든 현재든 일본과 관련된 일이면 부정적인 것은 최소화하거나 아예 은폐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은 성명을 내고 "올해도 역시 교육적 배려 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검정, 즉 정부 견해를 일방적으로 쓰도록 한 검정이 이뤄졌다"고 비판하는 등 한국 등 주변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제기되고 있어 역풍도 만만치 않다.
(도쿄=연합뉴스) choina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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