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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포워드] 하타 이쿠히코의 명저가 위안부 패러다임 변화 촉매제가 될 것인가?

“한일간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의견의 자유시장’론을 엄격히 준수하고 지적 담론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 본 서평은, 일본의 영자신문인 ‘재팬포워드(Japan Forward)’ 2022년 10월 28일에 게재된, 요시다 켄지(吉田賢治) 기자의 기고문 ‘하타 이쿠히코의 명저가 위안부 패러다임 변화 촉매제가 될 것인가?(The Comfort Women Issue: Is Ikuhiko Hata's Masterpiece a Catalyst for Paradigm Shift?)’를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교수의 명저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慰安婦と戦場の性)’이 마침내 한국어로 번역돼 한국내 각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영어판은 2018년에 해밀턴북스(Hamilton Books)에서 출간된 바 있는데, 1999년 신초샤(新潮社)에서 원 일본어판이 출간된 이후 23년 만에 한국 독자들에게도 선보이게 된 셈이다.

하타 이쿠히코는 근대 일본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이 책을 포함하여, 그의 책들은 실증적이고 면밀한 연구로 널리 칭송받아 왔다.

최근 수십 년간 위안부 담론이 정체된 가운데 이번 한국어판 번역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한국 내 지식인과 학자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위안부에 관한 방대한 연구가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위안부의 총 숫자는 물론 그 정확한 정의에 대해서도 학술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하타 이쿠히코는 위안부 대부분은 일본인이었으며 그 총 숫자를 약 2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교과서와 주류 학계에서는 조선인 위안부만도 그 10배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쟁의 이면

관련 논쟁의 핵심 초점은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구 일본군이 여성들을 ‘강제연행’하여 ‘성노예’로 삼았는지 여부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정설로 퍼져 있다.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왔지만 1993년 고노 담화에서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의 일부 ‘강제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이 문제에서 합의점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외교적 화해와 관련해서도 거의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만 허비해 왔다.

이처럼 양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1990년대 초에 일본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던,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이 한국에서는 차츰 정착되어 갔다. 그 기원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일본제국 육군 출신인 요시다 세이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을 노예사냥하듯이 강제연행하여 군이 운영하는 위안소에 감금했다고 증언했고, 일본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은 이를 선정적으로 다뤘다. 그리고 이 픽션과 함께 1991년에 나왔던, 자칭 위안부 출신 김학순 씨의 공개 증언이 결국 일본을 전범국가로 낙인찍는 패러다임을 형성했다.

사실은 제치고, 활동가들이 이를 대신하다

오랫동안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하타 이쿠히코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이 문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학자다. 그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세심하게 검증한 첫 학자로서 직접 제주도까지 방문해 조사를 했다. 하타 이쿠히코는 섬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요시다 세이지를 전문 사기꾼이라고 선언하고선 1977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요시다 세이지의 기만적인 회상록을 독해하는데 있어서 독자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유감스럽게도 요시다 세이지가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한 1996년에는 이미 문제가 수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아사히신문의 부정확한 보도 직후부터 지식인과 변호사를 포함한 일본과 한국의 이른바 반일 운동가들은 앞서 언급한 패러다임을 앞세워 일본 정부가 이 문제로 속죄할 것을 촉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의 사과와 일본 정부의 금전적 보상 시도에도 불구하고 반일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의 이른바 반일 운동가들은 이어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연행과 성노예의 역사를 무시했다고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에도 일본의 전시 범죄를 규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분쟁에 휘말린 유엔인권위원회

그리고 1996년에 유엔인권위원회는 이 외침에 응답하듯 여성폭력에 대한 조사보고의 일환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조사보고관을 임명했다. 

이 임무를 맡은 스리랑카 출신 변호사인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는,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조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에 그녀는 위안부 문제의 권위자로 알려진 두 사람의 일본인 학자를 인터뷰했다. 그중 한 사람이 당시 지바(千葉)대학 교수 하타 이쿠히코였고, 또 한 사람이 일본 주오(中央)대학 교수로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의 확고한 옹호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였다. (단, 요시미 요시아키도 일본군에 의한 직접적 강제연행은 부정하고 있다.)

발간된 유엔 보고서를 읽어본 하타 이쿠히코는 쿠마라스와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왜곡하여 인용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곧바로 외무성의 도움을 받아 쿠마라스와미와 유엔인권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보고서 수정을 요청했지만 양측 모두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 책 9장에서는 쿠라마스와미 보고서의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일부 오류는 너무 심각해 하타 이쿠히코는 절망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서구 일류대학의 리포트라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수준의 허술한 작품이다. 사실 위안부 문제로 한국 측 주장을 지지하는 요시미 요시아키나 와다 하루키와 같은 좌파 지식인들조차 이 보고서에 수많은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요시다 세이지가 자기 증언의 허위를 인정하였고 또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과 관련된 18개의 기사를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이 아직도 굳건하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주로 옛 위안부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과거 일본제국 육군이 수십만 명의 조선인 여성을 강제연행하고 이들을 제도화된 사창가에서 성노예로서 강제수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논의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이 책은 정체되어 있는 한국내 위안부 담론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일반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지금까지 배워온 위안부의 역사와 상충되기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하타 이쿠히코는 위안부 제도가 태평양전쟁 이전부터 일본에 존재했던 공창제의 연장이자,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서도 만연했었던, 전쟁 시기에 나타나는 한 현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위안부였던 조선 여성 대부분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위안소에서 일정한 계약에 따라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은 사실상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 (2-4, 6, 12장).

하타 이쿠히코는 이어 필리핀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일본 영토가 아닌 점령지)에서 발생한 이른바 일탈행위를 제외하고는, 일본군이 자신들의 영토였던 조선의 여성을 강제연행하거나 군 상층부가 이에 상응하는 명령을 내렸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6, 12장)

그는 “면장 전원, 주재소 순사의 대부분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강제연행은 어려웠을 것이다. ... 아무튼 평상시와 동일한 매신 방식으로 여성을 모으는 것이 가능했다면 식민지 통치가 붕괴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는 강제연행에 관헌이 나설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일부 위안부는 브로커의 강요나 감언에 속아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저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학적 객관성이 그것을 가능케 하다

588쪽에 이르는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하타 이쿠히코가 편향없이 자신의 연구를 기술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중립 성향의 학자인 하타 이쿠히코는 많은 조선인 여성이 빈곤의 희생자였음을 밝히고선 위안부 제도는 결코 근대 일본사가 자랑할 만한 역사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미 하타 이쿠히코의 연구를 잘 알고 있는 한국 학자들에게 이 책은 기존 지식을 연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물론 후속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니시오카 쓰토무, 이영훈, J.마크 램자이어 등),  많은 지식인들은 하타 이쿠히코야말로 한국의 지배적인 통설을 반박하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최초의 학자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다. 

반일 분위기로 국제사회의 인식이 기울었던 세기말에 이 문제를 다루면서 정설에 이의를 제기한 그의 용기는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 명저가 한국어로 번역되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점이 아쉽다. 만약 이 책이 더 빨리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면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의 확산과 그 부정적 영향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의 선택적 검열 문제와 학문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황의원 대표의 대담한 결단이 없었다면 이 책의 한국어판은 더 오랜 기간 기다려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언론사 미디어워치 편집장이기도 한 그는 민감한 역사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디어워치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워치를 통한 또 다른 번역물들

최근 몇 년 동안 황의원 대표는 일본의 저명한 한반도 지역 연구자인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의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문제에 관한 책도 번역해 출판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김학순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모순을 발견한 최초의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선 통념에 도전하는 출판물이 엄청난 파장과 위험을 동반한다는 현실을 봤을 때 황 대표의 행보는 참으로 용기 있는 일이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한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와 활동가들이 퍼뜨려온,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밝히는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도 같은 법적 제재를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의 유죄 선고를 했고, 김 소장의 책은 판매가 금지됐다.

하지만 황의원 대표는 계속해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향후에도 한국의 대중과 언론이 ‘친일’ 또는 ‘극우’라는 부당한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담론을 다룬 서적들을 계속해서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황 대표는 한일간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의견의 자유시장’론을 엄격히 준수하고 지적 담론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부터 앞장서서, 비록 정설에 반하는 내용의 책이라도 한국 사회에 계속 소개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출판사가 순수하게 이념적 또는 정치적 동기로만 특정 출판물의 출간 거부하는 행위는 사실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도 단언했다.

황 대표는 비록 비공개적으로나마 이미 한국의 몇몇 학자들과 전문가들로부터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이 훌륭하게 번역됐다고 칭찬하는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도서관의 도서 리스트에도 이 책이 추가가 됐다. 

아직은 이런 예측이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어쩌면 서서히 한국 사회가 위안부 문제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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