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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여성혐오자인가?

언론이 여혐 부추겨선 제2의 강남역 살인 막을 수 없다

피해망상을 가진 중증 정신질환자의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몰아가는 언론의 선동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어쨌든 피해자는 여성이고 남성은 가해자’라는 식의 막무가내 논리부터 이번 사건 본질과 상관없이 ‘기승전-여성혐오’라는 무조건적인 비약까지 다양한 논리와 확대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여성혐오라는 궤변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이 “논란이 뜨겁다는 보도 자체가 여성혐오”라는 주장하는 논객의 글까지 신문에 싣는다. 세상에! 그럼 논란이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기자는 최악의 여성혐오자가 되는 건가?

생물학적으로 분명 여성인 나는 여성혐오자인가? 나는 평소에 같은 여성을 증오해온 잠재적 범죄자라도 된다는 이야기일까? ‘여자는 여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주장이 엉터리라는 걸 여혐범죄를 주장하는 언론이 동의한다면, 나는 정말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할 말이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분석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번 사건 본질과 무관하게 여혐범죄로 규정짓고 그쪽으로만 몰아가는 건 분명 정치적 선동이다. 여혐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과학과 사실을 무시하고 믿고 싶은 대로만 보고 싶은 대로만 기사를 쓴다면 그건 언론이 아니라 선동하자는 대자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번 사건으로 젊은 여성들이 불안감과 막연한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며 포스트 잇에 추모 문구를 적은 23살의 평범한 여성을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23살의 평범한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뒤 나온 추모 문구의 하나다”라고 써선 안 된다.

이번 살인 사건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르는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피해망상증을 앓는 환자에게 불운하게 살해당한 것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고 발끈하는 사람들, 언론이 있다.

정신분열을 앓는 환자라고 모두 망상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가벼운 초기 증세에서 중증까지 증세도 다양하다. 또한 정신분열증을 앓더라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치료하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한 피해망상이 있는 환자가 망상증세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남을 공격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는 게 현실이다.

이번 살인 사건 피의자가 자신이 먼저 당하기 전에 죽였다고 말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화장실에서 남성들은 다 보내고 여성을 골라 죽였는데 어떻게 인지 능력이 없느냐, 그런 분별능력이 있으니 최소한 심리적으로 여성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의식을 가진 게 분명하다는 주장도 틀렸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는 “조현병 환자도 의식이 뚜렷하고 나름대로 분별력이 있다. 그러나 분별하는 현실감에 망상이 개입돼 왜곡되게 보게 만드는 것”이라며 “순간적으로 망상이 발현되면 범죄 대상이 남녀노소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지 여성혐오의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뇌 속에 순간적으로 망상이 개입돼 저지른 살인을 사회적 여성혐오 범죄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때문에 지금 강남역 추모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혐, 남혐 논쟁은 부질없다. 단순하고 분명한 사건을 엉뚱한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시켜 남녀싸움을 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강남역 사건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는 게 분명한 팩트이자 부정할 수 없는 핵심이다. 그럼 이후의 논쟁이 우리나라 조현병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이어져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옳은 방향 아닐까? 엉뚱한 남혐 여혐 논쟁이 아니라...

이번 일로 20대 여성들이 피의자를 수사한 경찰서 앞에 가서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살인’이라며 항의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이렇게 번진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고발하고 싶은 건 이해해도 이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여혐으로 보고 싶어도 언론은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박주연 기자 phjmy9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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