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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국민에 맡겨라

민주주의와 인권정신은 노래 형식이 살리는 게 아니다


광주민주화 항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와 무관한 일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장에서 합창하느냐 제창하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5.18을 광주사태로 객관화시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역사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아픔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불행한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오롯이 안고 가면서 우리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역사를 큰 줄기로 봐야 한다. 곡을 합창으로 부른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광주정신을 폄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창으로 부른다고 국민 전체가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광주 정신을 기리는 것도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광주항쟁이 광주시민만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논란은 의외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합창제창 형식논리에 갇힐 게 아니라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다.

손석희 앵커는 뉴스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왜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시민들이 선량한 시민이었느냐, 아니면 폭도였느냐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광주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선량한 시민들이 정당하게 독재권력에 저항한 운동이라면 당연히 국민모두에게 그렇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제창이길 원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권력을 부당하게 공격한 것이라면 당시에 정부가 주장한대로 폭도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이것은 손 앵커가 광주시민의 뜻을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곡을 합창하면 희생된 시민들이 폭도가 되고 제창하면 폭도가 선량한 시민들로 바뀐다는 것은 황당한 얘기일뿐더러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정신이 어떻게 노래 한곡 부르는 형식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얘긴가.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논쟁 그만하자

만일 곡을 제창한다면 그때 희생된 군인들은 우리에겐 또 어떤 존재가 되나. 독재권력의 하수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5.18 당시 광주에서 사망한 사람들 중엔 민간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193명이었는데 이중에는 군인과 경찰이 27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이 광주시민에게 무슨 원수가 졌다고 맞섰겠나. 그때 희생된 공수부대원들과 경찰들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똑같은 아픔을 가진 우리 국민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여부에 따라 그들이 독재권력의 하수인도 됐다가 폭도를 진압하다 산화한 국가영웅도 됐다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들도 그까짓 기념식 때 부르는 노래 형식 하나에 따라 마음대로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값싼 목숨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노래의 순수성을 인정하더라도 희생된 이들 모두와 국민전체를 감싸 안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빛나는 광주정신을 기리는 노래라면 더더욱 그렇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형식논쟁은 그래서 이제 멈춰야 한다.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국민의 의사도, 부르고 싶지 않은 국민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보훈처가 올해에도 합창을 고수했다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국회권력의 힘만 믿고 제창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광주정신과 어긋나는 것이다. 탱크 앞세우고 기관총을 들어 무력으로 자유의지를 제압하는 것과 의회 권력으로 수긍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제창을 강요하는 것, 본질이 뭐가 다른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광주정신의 본질이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를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며 박원순 시장처럼 정치권이 선동할 것이 아니라 제창 문제도 국민이 판단하도록 시간에 맡겨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위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면서 과거의 역사와 화해했다. 정치권은 표심 잡겠다고 노래 한곡으로 광주와 호남을 들쑤시는 잔꾀를 부릴 때가 아니다. 아픈 과거는 치유하고 미래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가려면 통 크게 포용하고 화합하는 길을 가야 한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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