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나와 있는 대선후보들이 모두 단일화에 실패하고 제각각 출마하면 어떻게 될까? 이명박 후보가 유리하다. 범여권의 분열 때문이 아니다. ‘극우’ 이미지를 이회창 전 총재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오른쪽’을 잃는 대신, ‘가운데’로 기반을 넓힐 수 있다.”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분석이다. 이 양반이 어디가 아픈가? 성한용이라는 이름 석 자가 아까울 정도의 헛발질이었다. 한데 찬찬히 숙고해보니 성한용의 실수라고 탓하기만은 어려웠다. 이회창의 떡밥이 너무나 완벽해서다
이회창은 자기가 경선불복이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계에 복귀한 주된 명분을 좌파정권 종식에서 찾았다. 그는 좌파정권을 종식시키려는 일차적 목적이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데 있음을 천명했다. 애매모호한 대북관을 가진 이명박이 집권하면 참된 의미의 정권교체가 아니므로 오직 그, 즉 이회창만이 좌파정권을 끝장낼 적임자라는 것이다.
진보개혁 성향의 매체들은 이회창의 주장을 시대착오적 냉전의식의 소산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이회창이 존재하지도 않는 좌파정권 종식을 운운하고, 남북관계 경색을 서슴없이 공약하는 건 강경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노린 포석이라는 진단이 이들 매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극우의 이회창이 이명박을 중도로 밀어냄으로써 오히려 MB를 도와주리라는 성기자의 전망은 이러한 관점에 근거한 걸로 보인다.
어떤 후보자건 당선을 목표로 선거에 출마한다. 이회창 또한 예외는 아니리라. 진실로 이회창은 강경보수 유권자들만의 몰표만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이회창이 조갑제 시늉에 몰두하는 데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고 해석해야 옳다. 그는 현란한 페이크 모션을 취하는 거다. 극우의 깜박이를 켜고서 반노로 핸들을 꺾는다.
모든 수구보수는 반노다. 그러나 모든 반노가 수구보수는 아니다. 국민원로는 2007년 대통령 선거전의 열쇳말은 '정서'라고 천명하는 바이다. 금년 대선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철저한 정서 중심의 선거다. 정책도 이념이 실종된 자리를 정서가 메웠다. 정서 중에서도 단연 파괴력 있는 정서가 반노정서다. 영남정서, 호남정서, 반기업정서, 반노조정서, 반미정서, 친북정서 따위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위치의 정서에 머문다. 반노정서야말로 수많은 정서들의 꽃이자 여왕이다.
이회창이 이명박에게서 가져가려는 핵심가치는 노무현의 안티테제란 인상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명박과 노무현을 모순관계로 생각, 정확히는 착각한다. 경제를 살릴 거 같아서, 민생이 나아질 듯해서 등의 이명박 지지이유는 면피용에 불과하다. 2004년 치러진 4ㆍ15 총선서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핑계로 정동영의 노인폄한 발언을 제시한 행동과 똑같다. 차떼기와 탄핵이란 두 단어가 따라붙은 한나라당을 지지할 알리바이로 정동영의 하찮은 말실수를 끌어온 것이다.
이명박 지지자들이 이명박을 미는 근본동기는 그를 노무현의 주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노무현을 혼내주려고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얘기를 차마 공개적으로 발설하지는 못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줄 구실이 바로 경제고 민생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과연 이명박이 정권을 잡은 다음 진짜로 노무현을 통쾌하게 응징할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 틈새를 이회창은 아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좌파정권 종식과 한미동맹 복원은 이회창이 유권자들에게 선물하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성한용은 미끼를 월척으로 오인하고 말았다.
(변)희재와는 달리 나는 한겨레신문이 특정정당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현실상황은 진보언론이 점잖은 심판관으로 지내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훈수를 두는 게 나쁜 게 아니다. 두려면 좀 제대로 두라는 거다. 강준만은 제자들 데리고 신선놀음에 열중하고, 진중권은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모르게 잠수모드에 들어갔으며, 정대화와 유창선은 오락가락 횡설수설하는 지금, 성한용 기자까지 엉터리 점괘를 남발하면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의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도 이회창
이회창은 이명박에게서 보수의 대표주자가 아니라 반노의 총사령관 포지션을 훔치려 한다. 이회창의 진정한 의도를 깨닫지 못한 이명박은 재향군인회 모임에 출석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댔다.
세 번째 대권도전에 나선 이회창이 서민대중에게 보여준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잠바 입은 昌의 모습이다. 잠바는 현장정치, 민생정치, 실용정치의 상징물이다. 이제껏 잠바 차림은 이명박의 전유물이었다. 단 이틀 만에 이회창은 이명박으로부터 잠바를 뺏어왔다. 이회창이 벗겨간 잠바를 되찾는답시고 이명박이 잠바때기 두르고 돌아다니면 이회창 흉내 낸다는 면박을 즉각 듣게 마련이다.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민생현장을 탐방하는 장면의 연출은 노무현 정권과 제일 효과적으로 대립각을 긋는 방법이다. 대통령과 고관대작들이 매끈한 정장 복장을 하고서 청와대 회의실에 둘러앉아 현학적 단어를 써가며 장시간 토론하는 광경은 노무현 정권 사람들이 국민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참여정부의 이미지다. 노무현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여당 정치인들 역시도 잠바를 입었었다. 잠바를 입었던 범여권 인사들은 이명박 짝퉁이란 핀잔에 시달렸다. 잠바정치의 거두 이명박을 이회창은 단숨에 잠바패션의 듣보잡으로 만들었다.
이회창은 미치거나 경직되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영리하고 유연하게 변모했다. 이회창 뱃속의 능구렁이 숫자와 의자왕이 궁궐에서 부렸음직한 궁녀들 머릿수는 아마 난형난제일 게다. 이회창의 변신을 입증할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2002년 한나라당 선대본부에서 일하던 친한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사연이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회사명만 들어도 알 만한 IT 업체에서 이회창 진영에 홈페이지를 제작해 납품했단다. 말이 납품이었지 알아서 상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홈페이지 개발비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웬만한 중소기업 하나를 차리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현물형태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셈이다.
관리자용 툴만 수천만 원이라던 이 홈페이지가 참으로 묘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네티즌들이 이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불편했다. 대신 한나라당 구성원, 특히 고위 당직자들의 눈높이엔 삐까번쩍했다. 실제로 홈페이지를 방문할 시민들에 대한 배려는 도외시한 채 그저 후보님 보시기에만 흐뭇한 사이트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회창이 일찌감치 대선출마를 준비한 증거로 언론들은 그가 이미 초봄에 홈페이지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든다. 국민원로는 이회창 진영이 제작을 추진한 시점이 아닌, 제작을 의뢰한 업체에 놀랐다. 판도라TV! 5년 전의 이회창 캠프였다면 삼성SDI나 LG전자, 또는 NHN이나 한국IBM처럼 규모가 크고 널리 알려진 기업체에 제작을 위탁했으리라. 혹은 업체들이 알아서 제작을 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했거나. 2007년의 이회창은 외형과 네임밸류보다는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거래를 시도한 모양이다. 돈 줄 것 다 주는.
이회창은 수구다. 그렇지만 그는 수구는 수구이되 꼴통수구에서 지능수구로 업그레이드를 완료했다. 노무현이 창안한 깜박이와 운전대를 따로따로 운용하는 기술마저도 성공적으로 터득했다. 이명박을 보수시장 사수에 올인하도록 유도한 연후에 자신은 반노시장 전체를 통째로 접수하겠다는 성동격서의 전략이다.
박근혜와 그녀의 참모 및 추종자들은 이회창의 입후보가 이명박의 낙마를 재촉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참 한심한 족속들이다. 늑대가 사라진 곳에 호랑이가 나타날 텐데 뭐가 그리 좋은지. 지나가는 행인 붙잡고 물어보시라. 박근혜와 이회창 가운데 누가 노무현을 확실히 감옥에 보낼지. 열이면 아홉은 이회창이라 대답할 게다.
이명박은 뼈아픈 손실을 기록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잠바를 잃어버렸다. 이제 이회창은 박근혜의 안정된 무게감과 절제된 카리스마마저 탐낸다. 이회창한테 본인들의 보장자산을 도둑맞은 이명박과 박근혜 전부는 권영길과 이인제 등급의 정치적 빈곤층으로 영락할 터. 대도 조세형은 물론이고 괴도 루팡조차 울고 갈 솜씨라 하겠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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