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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한국영화, 스파이더맨3는 시작일 뿐

한국영화 마땅한 대응책 없어

‘스파이더맨3’ 열풍이 예상을 넘어섰다. 개봉 첫날 50만2000명 관객을 동원해 기록을 세운 뒤, 주말 기록마저 가볍게 갱신했다. 개봉 2주차인 5월16일까지는 31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1일 간의 성적만으로도 2007년 통산 국내 흥행 1위의 기록이다.


전국 816개 스크린을 싹쓸이한 것에 대해 독과점 비난도 있지만, 이는 영화시장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중박 수준 ‘극락도 살인사건’이 3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이 텅 비어있던 시점이었다.


‘스파이더맨3’와 동시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지난해 ‘국경의 남쪽’ 실패로 ‘멜로물이 안 먹힌다’는 평가를 받은 차승원 주연 ‘아들’이었다. 먼저 개봉한 영화들은 노쇠했고, 동시 개봉한 영화는 틈새시장용으로도 부족하니 싹쓸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장사가 안 될걸 알면서도 ‘문화다양성’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이미 산업적 발상이 아니다.


정작 ‘스파이더맨3’ 독점에 대해 이야기해볼 만한 부분은 원인의 분석이다. 왜 스크린 싹쓸이가 일어났고, 왜 관객들은 극장에 몰려들었으며, 왜 줄줄이 이어진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에 떨어야만 하는가.


스크린 싹쓸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시장의 진공상태에 기인한다. 5월은 생각보다 중요한 달이다. 영화의 주 관객층인 대학생층이 중간고사를 막 마쳐 여유가 생긴 시점이다.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로 중장년층과 유소년층을 비롯, 극장을 자주 찾지 않던 관객층이 가족단위로 극장나들이를 시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는 5월부터 8월까지가 라인업이며, 5월에 기선을 잡아놓으면 분위기를 타고 여름 내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블로킹할 수 있다. 5월을 진공상태로 놓아두면 지난해 여름의 ‘10주 연속 할리우드 영화 점령’ 같은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딱히 대범한 여름용 타이틀이 없으면, 이런 현상은 추석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영화도 기대작을 5월에 배치시켜 초반 승부를 걸어봄직하다.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더라도 어느 정도 활약만 해주면 적어도 시장점령 분위기를 막을 수는 있다. 스크린 싹쓸이 현상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싹쓸이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토록 많은 관객이 ‘스파이더맨3’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는 사실도 다시 바라볼 만하다.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는 사실 국내에서 그렇게까지 폭발력 강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2002년 개봉한 1편이 290만 관객을 동원했고, 2편은 그보다 떨어진 흥행을 보여 200만 관객을 간신히 넘어섰다. 인기가 감소하는 프랜차이즈였던 것이다.


본래 할리우드의 만화 베이스 슈퍼 히어로물은 국내에서 대박 흥행이 어렵다. 일단 원작만화의 팬베이스부터가 부족하다. 지난 5년간 국내에서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 10여편 중 슈퍼 히어로물은 단 한편도 없다. 3편은 그나마 비평면에서 프랜차이즈 최악이라는 평가였다. 비평집계 사이트 ‘라튼토마토’에 따르면, 1편이 90%, 2편이 93%의 비평가들에게 찬동을 얻어낸 반면, 3편은 61%의 비평가들에게만 찬동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3’가 한국은 물론, 전세계 107개국에서 주간 흥행 1위를 꿰찬 데에는 뉴스위크 비평가 데이비드 앤슨의 ‘허세전략’을 들어볼 만하다. 앤슨이 1999년, ‘오스틴 파워’ 속편이 일대흥행을 기록한 것에 대해 언급한 단어다.


‘오스틴 파워’ 전편은 1997년 봄, 5300만달러 정도의 ‘중박’ 흥행을 보였다. 그러나 2년 뒤 등장한 속편은 DVD 시장에서의 쾌조를 늘상 언급하며, 마치 여름시즌의 거물인양 이미지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속편은 전편의 4배에 가까운 2억500만달러를 미국 내에서 벌어들였다.


‘스파이더맨3’는 이 ‘허세전략’에 정확히 부합되는 홍보를 펼쳤다. 부족한 팬베이스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3’는 ‘2007년 여름시즌을 시작하는 대표 할리우드 영화’, ‘2억5800만달러라는 세계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 ‘온 세계가 주목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최고봉’ 등의 수식어로 세계를 공략했다. 시사회도 일부러 미국이 아닌 일본 도쿄에서 열어, 프랜차이즈의 범세계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안될 영화도 되게 하는’ 할리우드의 전략에 전세계가 넘어간 것이다.


한편, ‘스파이더맨3’ 외에도 이번 여름에 등장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확실히 위협적이다. 전편이 460만 관객을 동원한 ‘캐리비안 해적’ 3편이 5월24일에, 전편이 330만 관객을 동원한 ‘슈렉3’가 6월6일에 도착한다.


미국에서 정작 대실패를 거두고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아일랜드’ 감독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가 6월28일에 포진해 있다. 늘 3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해리 포터’ 최신 프랜차이즈가 7월12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액션 프랜차이즈 ‘다이 하드’의 4편이 7월19일에 개봉된다. 단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서가 아니라, 국내에 이미 팬베이스가 있고, 국내 관객 취향에 맞는 영화들이 2007년 여름에 즐비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악운’ 차원을 넘어선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2007년 여름을 ‘전세계 재공략’의 해로 설정한 듯 보이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반응이 좋을 영화들보다, 해외 시장에서 먹히는 영화들만, 그것도 이미 팬베이스가 성립된 속편들만 배치시켰다. 점차 자국영화 시장을 회복해가는 해외에 긴장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다.


할리우드는 이미 한국을 놓쳤고, 일본도 지난해 무려 21년 만에 자국영화가 해외영화의 흥행을 앞질렀다. 프랑스, 독일, 태국 등도 자국형 블록버스터들을 제작해 자국영화 시장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해외시장을 완전히 잃기 전에, 일대 부흥전략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위세를 떨치고, 해외의 자국영화 시장에 타격을 주어 기세를 꺾으려는 심산이다.


이런 상황에 봉착한 한국영화계의 여름 전략은 미미한 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와 함께 개봉하는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밀양’이다. ‘슈렉 3’에 맞서는 영화는 전작 ‘파랑주의보’ 실패로 티켓파워에 의구심을 자아낸 송혜교 주연 ‘황진이’다.


7월에는 5·18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를 배치시켰다. 여름시즌 분위기에 상반되는, 전형적인 ‘틈새시장’ 전략으로 맞서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나름의 계산은 있을 것이다. ‘밀양’은 해외 영화제 성과 마케팅으로, ‘황진이’는 올 초부터 시작된 ‘황진이 트렌드’ 홍보에 힘입어 ‘허세전략’으로, ‘화려한 휴가’는 사회이슈화를 통한 ‘사회적 대의’형 마케팅으로 승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면승부가 아닌 전략은 여전히 위험하다.


한국 대중은 ‘대세론’에 민감하다. 한 영화가 인기를 끌면, 그 영화로 몰려간다. 다양성 추구보다는 현재의 대세 유행을 따라잡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본래 틈새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이 아니다. ‘아들’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지난 해 여름 ‘괴물’과 비슷한 시즌에 공개된 영화들 중 ‘각설탕’만이 간신히 100만 관객을 넘어선 일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굳이 수백억이 투여된 거대 영화가 아니어도 좋다.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기발한 아이디어의 가벼운 여름용 상업영화가 필요하다. 여름을 놓쳐도 가을, 겨울에 회복하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이제 위험하다. 할리우드는 이제 여름뿐 아니라 여타 시즌에도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배치시킨다. 한번 빼앗긴 시장 분위기를 되찾아 오려면, ‘괴물’ 급의 사회적 대의형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필요하다. 그것은 시장상황으로 보아, 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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