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현상은 국가와 기업, 노조의 연대책임입니다."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발표를 앞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8일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과연 여성에게 평등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공공부문 여성 비정규직 실태를 설명하고, 정부와 사용자, 노조가 교묘히 연대해 공공부분 비정규직의 여성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감추고 싶거나 무관심하거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에 드러난 노사정의 정치와 여성'을 주제로 발표한 조 교수는 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의 남녀 비정규직 비율은 각각 17.5%와 51.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남성은 여섯 명 중 한명 꼴로, 여성은 두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같은 수치는 2006년 8월 기준으로 노동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에 근거한 것으로 공기업 전체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심각한데 정부는 정확한 실태를 밝히지 않아왔다"면서 "이는 정부가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예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조 교수는 이처럼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여성으로 채워지는 것은 정부와 사용자, 노조의 책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공공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정부 정책으로 여성 등 저임금 노동자가 외주화의 주요 대상이 되며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사용자의 경우 '경영 합리화'를 구실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진정한 경영 합리화를 위해서는 억대 임금을 받는 상위 직급의 임금을 조절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공공기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핵심 공공기관의 직원 평균 연봉은 5천300만원이고,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2억3천만에 달한다.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강조한 외주화 바람으로 공기업 여직원의 절반이 고용과 생계가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데 비해 기관장들과 이사, 감사 등 임원들은 고액의 연봉을 누리고 있는 것.
조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가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독려하는 정책으로 이런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매년 노동생산성, 조직의 효율성, 예산 투입의 타당성 등을 살피는 공기업 경영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여금 형태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노동생산성은 부가가치 또는 공공이익을 평균인원으로 나눠 산출되므로 정규 직원이 적으면 적을수록 노동생산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조 교수는 "상황이 이렇기에 공기업은 인력감축과 외주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단기적 성과를 내는데 매달릴 수 밖에 없다"면서 "이같은 정책은 공기업 정규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 위주의 정책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온전한 정규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대책의 차선책으로 인식되는 '무기계약 근로제'를 반대하는 일부 노동조합 역시 '생색내기식 노동운동'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의 여성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정부와 기업의 고용형태에 대한 정보 공개 확대, 국가 예산 증액 등을 요구했다.
그는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전체의 4% 수준으로 15-25% 사이인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면서 "특히 보건과 사회복지, 교육 부분은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고용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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