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문서 '군.경.영사관 역할분담' 입증
"日서도 부녀자 유괴, 위안부로 내몰아"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국제적인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제의 위안부 동원에 군과 경찰은 물론 영사관까지 철저하게 역할분담을 해가며 깊숙이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공개돼 주목된다.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는 1937년 12월 21일 중국 상하이(上海) 주재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관인 다지마 슈헤이(田島周平)가 일본 나가사키(長崎) 수상경찰서에 보낸 '황군장병 위안부녀 도래에 관한 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5일 공개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 발간한 단행본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①』에 포함돼 있는 이 문서를 발췌해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황군(일본군) 장병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여러 관계기관이 심도 있게 연구하던 가운데 당관(총영사관) 육군 무관실 헌병대와 합의한 결과, 전선 각지에 군 위안소를 설치하도록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일제는 ▲영사관이 위안소의 영업허가, 위안부의 도항에 관한 편의제공, (위안부의) 도착과 동시에 체제 여부를 결정한 후 헌병대에 이첩 등을 ▲헌병대는 위안부 등의 운송, 위안부 영업자 및 위안부에 대한 보호 등을 ▲육군 무관실은 위안소 등의 준비, 위안부의 검진 등을 각각 담당했다.
이 문서는 또 "이와 같은 요령으로 일본 또는 조선을 다니며 위안부를 모집하고 있으며 관련 신분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승선 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38년 2월 7일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현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공문에는 "1938년 1월 6일 와카야마현 다나베(田邊) 하마거리에서 거동이 수상한 2명을 붙잡아 조사했는데 이들은 상하이 황군위안소로부터 3천명의 위안부 모집요구를 받아 같은 해 1월 3일 70명을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나가사키항을 통해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공문은 또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무지한 부녀자들에게 '급여가 좋다'는 등의 얘기를 하며 '유괴'하는 방법으로 데리고 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일제가 위안부를 광범위하게 동원하기 위해 중국 영사관 등 관련 부서가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했고, 자국에서 조차 위안부를 동원하기 위해 유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조선 등 강제로 점령하고 있던 곳에서는 어떤 식으로 위안부가 동원됐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이 이제 와서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며 "일본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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