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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굴곡 담은 연극 '반성'

연출가 김태웅 신작...반성 없는 역사 비판



"철저한 반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한 가족의 비극으로 치환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연극 '이(爾)'로 유명한 연출가 김태웅(43) 씨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책임 추궁 없이 흘러온 우리 역사에 섬뜩한 비판을 가한 신작 '반성'(3월2일-4월1일, 대학로 씨어터 디아더)을 들고 관객 앞에 선다.

지난해 1천만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로 유명세를 치른 김씨는 그동안 '불티나', '꽃을 든 남자' 등 사회비판과 역사의식이 뚜렷한 작품을 만들어온 극작가이자 연출가.

지난해 '이'의 앙코르 공연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그의 신작 발표는 2004년 예술의전당 젊은 연극 시리즈에 선정된 '즐거운 인생' 이후 3년 만이다.

'반성'은 우리 역사와 기독교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어 여러 모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가족이 반성 없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묵직한 비극으로 극중 가족은 현대 사회를, 가족의 역사는 현대사를 상징한다.

갑성과 명자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금실 좋은 노부부다.

5년 전 심장 수술을 받고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예감한 갑성은 자신이 명자의 전 남편 은봉을 죽였다며 50여년 전의 충격적인 비밀을 명자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명자를 마음에 뒀었고, 임신한 명자가 먹고 싶다던 잣죽을 쒀주기 위해 산으로 잣을 따러 간 은봉을 따라가서 충동적으로 죽인 뒤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갑성은 명자에게 은봉이 그 때 죽지 않았어도 한국 전쟁의 광풍 때 죽었을 거라고 살인을 합리화하며 용서를 구한다.

충격을 받은 명자는 집을 나가지만 얼마 후 다시 차분한 모습으로 집으로 다시 돌아와 갑성의 생일 날 예정대로 자식들을 부른다.

IT 사업을 한답시고 집안 재산을 날리고 미국으로 간 큰아들 일호, 형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둘째아들 두호, 불임으로 고통받는 운동권 출신의 딸 혜선까지 온가족이 모인다.

명자가 자신을 용서했다고 믿는 갑성은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것에 흐뭇해하지만 이들 사이엔 그동안 쌓인 갈등이 폭발하며 가족은 결국 파멸을 맞이한다.

연출가 김씨는 작품에 대해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면서 "냉철한 반성과 참회 없이 용서를 이야기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답답함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과거에 대해 명확히 참회한 다음에 용서가 뒤따랐죠. 우리는 그런 절차가 없다 보니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됐고, 다함께 흙탕물에 빠진 느낌이에요. 힘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다 보니 비리가 쉽게 용인됐고, 잘못을 해도 교회 가서 대충 참회한 뒤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요?"

갑성이 은봉을 죽인 뒤 기독교에 귀의해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의롭지 못하게 시작된 가족을 끝내 몰살시키고, 자살을 택하는 명자의 모습에는 과거에 대한 명확한 반성을 촉구하는 연출 의도가 담겨 있다.

"어쩌면 명자는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 봐요. 새출발과 거듭남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는 거죠. 결말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한편 극에는 건설업을 해 큰 돈을 벌게 되는 주인공 갑성이 폭력배를 동원해 무자비한 철거를 자행하고, 가족 예배의 기도 시간에 아들이 눈을 뜨고 있는 모습 등 성장 논리에 다른 가치가 모두 희생됐던 1960-70년대 개발 독재 시대에 대한 단상과 억압적인 기독교 가정에 대한 풍자도 들어있다.

프로듀서 이승훈, 조명 김정화, 의상 조혜정, 분장 이명자, 조연출 하지혜, 출연 진경, 박수일, 정석용, 구자승, 염혜란.

평일 8시 금ㆍ토 4시ㆍ7시30분, 일 3시ㆍ6시. 1만5천-2만원. ☎02-744-7304.




(서울=연합뉴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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