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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재한미군(주한미군) 위안부 문제(在韓米軍慰安婦問題)’

한일 상호 이해를 위한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 번역 프로젝트 (44)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재한미군(주한미군) 위안부 문제(在韓米軍慰安婦問題)’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22년 11월 17일판, 번역 : 박재이).




재한미군(주한미군) 위안부 문제(在韓米軍慰安婦問題)는 주한미군이 조선전쟁(한국전쟁) 중에, 그리고 전쟁 후에 대한민국의 군 주둔지가 있는 마을을 뜻하는 ‘기지촌’에서 통제 관리된 매춘부(위안부) 서비스를 이용한 문제 사안이다.

한국은 1948년부터는 매춘을 위법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은 미군에게 성교 서비스의 기본적인 조달원이었으며 미한관계의 구성 요소가 되기도 했다.(Lee, Na-Young (January 2011). “Negotiating the Boundaries of Nation, Christianity, and Gender: the Korean Women's Movement against Military Prostitution”.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17 (1): 34?66. doi:10.1080/12259276.2011.11666102. ISSN 1225-9276.)

한국에서 매춘부로 봉사한 여성은 ‘기지촌 여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군 외 한국군 병사와 민간 한국인도 방문해서 이용했다.

기지촌 여성으로는 한국인 외에도 필리핀, 중국,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및 독립국가공동체(특히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출신자도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옛 미군 위안부 그룹이 한국 정부 당국자가 조직적으로 미군과의 성적 행위를 강요했다고 하며 당시의 정부 지도자, 한국 정부, 미군을 미국 법원에 고발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로 알려졌다.

 

재한미군 위안부 문제(在韓米軍慰安婦問題)




창설(創設) : 조선전쟁(朝鮮戦争)


국적(国籍) : 한국(韓国)


범명(渾名) : 양공주, 미군 위안부




목차


1 약년표

  1.1 미군기지촌 정책 연혁


2 명칭


3 역사

  3.1 남조선의 미군정 통치시대, 1945-1948년

  3.2 조선전쟁 후

  3.3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 격리 및 차별

  3.4 기지촌 정화 대책

  3.5 한국의 여성 운동

  3.6 포스트 군사정권

  3.7 옛 주한미군 위안부에 의한 고발

  3.8 몽키 하우스

  3.9 한국 정부의 대응

  3.10 주스 바


4 정책

  4.1 공창제도 폐지

  4.2 상호 방위 조약

  4.3 닉슨 독트린


5 기지촌

  5.1 경기도


6 여성과 후손


7 대중문화


8 참고문헌




1 약년표(略年表)

1.1 미군기지촌 정책 연혁(米軍基地村政策沿革)

• 1947년 11월 4일 – 공창 제도 폐지
• 1950년부터 1954년 – 한국군 위안부 설치
• 1961년 11월 9일 – 윤락행위 등 방지법, 이른바 매춘방지법을 제정
• 1962년 6월  - 미군기지 인근 104군데를 특정(윤락) 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지역에서의 매춘 단속을 면제
• 1971년 12월 22일 – 정부 주도로 기지촌 정화 위원회 발족
• 1970년대부터 1980년대 – 강제 성병 검진 등 기지촌 여성 인권 침해가 심각한 상황
• 1992년 – 윤금이 살해 사건(미군 병사가 기지촌 여성 살해)
• 1990년대 후반 – 한국인에서 필리핀 등 외국인 여성으로 대체


2 명칭(名称)

재한미군 관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춘부는 현지에서 다양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수접대부’, ‘위안부’, ‘바 걸’, ‘호스티스’ 등으로 불렸다.

양공주(洋公主)는, 한국에 있는 미군 주둔지 마을을 뜻하는 ‘기지촌’의 매춘부에 대한 일반적인 별명이었다.*

[* 영어로는 Yankee princess나 Western princess로 표기되는 외국인 상대 매춘부]

‘양공주’라는 용어는 동아일보 등의 보도로 수십 년에 걸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명칭은 인종이 다른 부부, 특히 백인 남성과 한국 여성 커플을 지칭할 때 모욕적인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인을 상대하는 매춘부를 의미하는 ‘양갈보’도 일반적인 이름이다. 그녀들은 또 유엔군 상대 위안부(国連軍相対慰安婦, 유엔 마담(U.N. madam))로도 불렸다.

‘주스 걸’은 (한국에 있는) 필리핀인 매춘부의 일반적인 이름이다.

1990년대 초까지 ‘위안부’라는 용어는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를 지칭하는 말로서 한국의 미디어나 공무원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위안부는 대일본제국군을 상대하는 ‘섹스워커’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기도 해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양공주’라는 용어가 위안부를 대신해 미군을 상대하는 ‘섹스워커’를 지칭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 한국에서는 여성의 권리 운동이 양분된 모습이 보였다. 한쪽은 종군위안부(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대표되며, 다른 한쪽은 기지촌(미군 주둔 시설) 문제로 대표되는 운동이다. 양쪽 다 많은 여성들이 강제노동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군위안부를 편든 사람들 쪽에서는 기지촌 여성에 대해서 그저 아무하고나 성교하는 매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일부 한국 언론은 ‘미국군 위안부’를 번역한 ‘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3 역사(歴史)

1945년 초에 미군과 대한민국(당시는 남조선)이 제도화된 매춘 시스템을 도입 및 허가했다. 주한미군은 “매춘부를 고용하는 것은 우리의 군사적 가치관과 상반된다”는 방침을 밝히기는 했지만 ‘실천’과 ‘방침’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매춘은 ‘필요악’으로 간주되었다. 미군은 GI(Government Issue, 미군 병사를 가리키는 속어)가 울분을 풀 수 있고, 동성애 경향을 막을 수 있는 군사 문화로 매춘(의 의의)을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미국 병사를 상대하는 매춘부가 사회적 계층의 최하위에 있다고 억측했다. 또 그녀들은 매춘의 계층에서도 지위가 가장 낮았다.

3.1 남조선의 미군정 통치시대, 1945-1948년(南朝鮮のアメリカ軍政統治時代、1945-1948年)

1945년 9월 존 리드 하지(John Reed Hodge) 사령관이 이끄는 미군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킨 후에 남조선을 점령했다. 여기에는 대일본제국의 위안소 시설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일본통치시대의 조선에서 확립된 정부 허가제 매춘이라는 기초를 순식간에 마련했다. 일본이 인가한 매춘 형태는 한국인 섹스워커를 위해 등록 절차와 STD 검사(성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의무화를 확립했다. 미군이 남조선을 점령한 후 이러한 검사는 보건복지국이 실시했다. 미국 병사가 매춘부를 통해 병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접대를 위한 ‘바’라든지 ‘클럽’은 군사기지 주변이나 내부에 배치되었다. 매춘부를 좁은 범위에 수용해서 미군은 여성의 활동 및 건강을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힘을 가졌다. 미국 군정이 매춘을 용인하고 관리했기 때문에 미국의 여성단체는 매춘 폐지를 호소했다. 이에 따라 1947년에 미국은 공영 매춘 폐지 법안을 가결했다. 이는 인가받은 매춘(공창)을 폐지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사창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일으켰다. (Lee, Na Young (2007). “The construction of military prostitution in South Korea during the U.S. military rule, 1945-1948.”. Feminist Studies 33 (3). OCLC 938373395.)

3.2 조선전쟁 후(朝鮮戦争後)

조선전쟁(한국전쟁)의 결과로 극도의 빈곤, 그리고 혼란이 일어났다.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성노동에 의지한 탓에 매춘부로 대량 유입되었다. 섹스워커의 ‘대량 생산’이 미국의 한국 점령 및 미국 군사 기지 설립을 정식으로 허락한 미한상호방위조약에 공헌했다는 설도 있다. 1953년까지 총 매춘부의 수는 35만 명에 달했고, 이 때문에 조선전쟁 후 한국에서는 기지촌에서의 매춘이 영구적인 구조가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서 한국인 매춘부의 60퍼센트가 미군기지 근처에서 일했다. (Cho, Grace M. (2008).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Shame, Secrecy, and the Forgotten War.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ISBN 978-0-8166-5275-4) (Clough, Patricia (2007). The Affective Turn: Theorizing the Social. Duke University Press. ISBN 978-0-8223-3925-0)

제2공화국(대한민국)은 매춘을 필수품으로 간주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되는 미군들에게 그들의 성적 상상을 충족시키는 관음쇼(Peep show)나 스트립 클럽 등의 오락과 여가를 제공하기 위한 공영 조직화된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 그들이 번 달러를 일본에서 지출하지 않게 하려고 동맹 병사에게 공급하는 매춘부를 훈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내무부(당시) 차관인 이성우(李成雨)는 미군을 위한 ‘매춘부 공급’을 정부가 일부 개선했다며 국회에서 답변하기도 했다(NYTimes, ‘Ex-Prostitutes Say South Korea and U.S. Enabled Sex Trade Near Bases’, Jan. 7, 2009). 이러한 기지촌은 미국 병사들의 위로, 휴양 장소로 존재했다.

전 대통령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한국을 통치한 박정희는 특히 미군으로부터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성산업을 장려했다.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핵심이 되는 법률 두 가지를 즉시 시행했다. 첫째는 매춘방지법인데 여기에서 ‘주둔지 마을(기지촌)’은 정부의 매춘 단속에서 제외되었다. 둘째가 관광 촉진법인데 이로써 기지촌을 특별 관광지구로 지정했다. (Lee, Jin-kyung (2010). Service Economies: Militarism, Sex Work, and Migrant Labor in South Kore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ISBN 978-0-8166-5126-9)

1960년대 기지촌의 매춘 및 관련 사업이 한국 GNP의 25퍼센트 가까이 차지했다. 1962년에 위안부가 2만 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매춘부들은 좀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팔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영어학원이나 에티켓 교실에 출석했다. 그녀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달러벌이 애국자’나 ‘진정한 애국자’로 칭찬받기도 했다.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South Korea: A Thriving Sex Industry In A Powerful, Wealthy Super-State’, 04/29/2013) 1970년대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미군에게 몸을 파는 우리 누나들은 애국자다. 그 누나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누나들을 양공주, 유엔마담이라고 손가락질 하면 안된다”라고 가르친 기록이 남아 있다.( 동아일보, ‘[늘보의 옛날신문읽기] 양공주, 유엔마담 그리고 화냥년’, 2000년 11월 3일자)

1971년 닉슨 독트린에 의해 미국 병사의 수가 18,000명까지 감소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북조선의 위협 및 경제적 영향에 대해 더욱 두려움을 갖게 됐다. 그래도 기지촌의 매춘은 이미 한국 생계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변호단체 두레방(My Sister’s Place)은 1991년에 미국 병사들이 한국 경제에 10억 달러를 기여했다고 기록했고, 이는 한국 GNP의 1퍼센트에 해당했다.(Moon, Katharine H.S (1997). Sex Among Alli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ISBN 978-0-231-10643-6. OCLC 36589954)


3.3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 격리 및 차별(アフリカ系アメリカ人に対する人種隔離および差別)

기지촌 클럽은 흑인과 백인을 인종 격리하여 병사의 인종에 따라 여성을 분류했다. 평택 험프리스 기지 근처에 사는 주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백인 미국인을 차별했다. 아프리카계 미군들은 기지촌 주민에게 분노를 발산했다. 1971년 7월 9일 아프리카계 미군 50명이 인종 차별에 대한 폭동을 일으켰고 험프리스 기지 인근에 있는 클럽 몇 군데를 파괴했다. 이번에는 주민들이 낫을 들고 아프리카계 미군들을 몰아붙였는데 미군 경찰과 한국 경찰이 이 폭동을 진압했다. (한겨레 ‘‘한-미 우호’의 아랫도리… ‘양공주’들을 민간외교관으로 활용하다’, 2005년 2월 1일자) 

한국인 매춘부는 대부분이 아프리카계 미군들에 대한 성적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태도로 나타냈다. 흑인에 대해 성적 서비스를 접대하거나 팔았던 여성은 미국인 및 한국인이 ‘흑인’으로 분류해서 다른 사람에 의한 심각한 사회적 비난과 사회적 불명예에 직면했다. (Kim, Elaine (1997). Dangerous Women: Gender and Korean Nationalism. Routledge. ISBN 978-0-415-91506-9)


3.4 기지촌 정화 대책(基地村浄化対策)

기지촌 문제의 대폭적인 증가와 커뮤니티 관계 사이에서 긴장의 결과로 미군기지 지역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정책이 생겼다. 1971년 8월 한국 내무부 장관은 보건 당국과 협력하여 각 경찰서에 성 감염증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고 이에 관해 매춘부에게 지시하도록 명령했다. (한겨레21, ‘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2011년 11월 28일 제887호) 1971년 12월 22일 대한민국 대통령인 박정희는 기지촌 정화 대책을 실시했고 이는 (미군 측에서) BCCUC로 유명해졌다.*

[* 기지촌 정화대책의 영문명 'Base Community Clean-Up Campaign'의 머리글자를 나열한 것.]

미군 관계자는 기지촌이 성 감염증과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온상이라고 한국 정부에 조언했다. 미국 병사 1천 명당 성병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과 기지촌의 관계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시정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미군과 BCCUC는 기지촌 개선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각각 임했다.(Dank, Barry Michael; Refinetti, Roberto, eds (2000). The Politics of Sexuality . Transaction Publishers. ISBN 9781412831420 )

BCCUC의 목표는 한국 국민 사이에서 재한미군의 바람직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BCCUC는 ‘수치의 근원’인 미군과 한국인 섹스워커 사이에서의 높은 성병 비율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매춘부 등록, STD 검사 실시, 진료소 개선 등이 BCCUC가 매춘을 관리하고 성 감염증 발생률을 줄이려고 시도한 방법이었다. 미군의 목표는 미군의 생활 환경을 개선해 도덕성과 규율을 높이는 데 있었다. (Moon, Katharine HS (2006). Sex among allies: military prostitution in US-Korea relations . W. Ross MacDonald School, Resource Services Library. OCLC 1011710706 )

정군 관계 소위원회(政軍関係小委員会)를 설립해서 성 감염증 근절 및 인종 차별 감축에 초점을 맞춰서 미군은 이러한 목표에 대응했다. 그 밖에는 도로 폭 확장, 공중위생 개선, 위로, 휴양시설을 이용하기에 쉽도록 매력적으로 하는 임무 등이 있었고 기지촌 전체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다.*

[* 정군관계(政軍関係]는 Civil Military Relations의 번역어이지만 미국에서는 ‘사회와 군대의 상호작용’을 얘기하는 것으로, 일본에서 말하는 정군관계와는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 대책은 미한 관계의 중요성을 매춘부가 좋든 싫든 이해해야 했다는 식이었다. 미군 경찰대와 한국 당국은 병을 옮겼다고 추정되는 매춘부를 정기적으로 강제 수색했다. 그들은 병에 걸린 듯한 사람들을 구속해서 창문을 울타리로 막은 이른바 ‘몽키 하우스’에서 그들을 감시하에 가뒀다. 여성은 자백(自白)작용이 보고된 약을 어쩔 수 없이 복용해야 했다. 병이 없다고 인정받은 여성은 명찰을 달았다. 미군은 클럽에서 일한 매춘부에게 성병 카드를 휴대하도록 요구했고 바의 단골손님인 미군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성병 가이드를 발행했다.(Kuo, Lenore (2005). Prostitution Policy: Revolutionizing Practice through a Gendered Perspective. New York University Press. ISBN 978-0-8147-4791-9)

3.5 한국의 여성 운동(韓国の女性運動)

군의 매춘에 반대하는 여성 운동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1920년대 크리스천 여성 단체의 오랜 대처가 불처럼 번졌고 이는 매춘을 근절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 운동은 여성간의 관계, 민주화, 또 미군의 권위주의적 지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 운동을 위해 크리스천 여성단체와 학생운동가가 함께 활동했다. 두레방(My Sister’s Place)은 1986년에 설립된 최초의 여성 조직으로 기지촌 운동에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들은 매춘 폐지와 조선인 여성의 착취 반대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두레방도 기지촌 여성을 위한 교육과 갱생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심이 되었다. 기지촌의 성매매에 반대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한 대처는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수많은 페미니즘 연구자들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Lee, Na-Young (January 2011). “Negotiating the Boundaries of Nation, Christianity, and Gender: the Korean Women's Movement against Military Prostitution”.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17 (1): 34?66. doi:10.1080/12259276.2011.11666102. ISSN 1225-9276.)

3.6 포스트 군사정권(ポスト軍事政権)

1990년대 초에 매춘부가 한국 반미 내셔널리즘의 상징이 되었다. 1992년에 미군기지 주변에는 약 18,000명의 등록된 그리고 9,000명의 미등록 한국인 매춘부가 있었다.1992년 동두천시 기지촌 성노동자 윤금이 씨가 미군에 의해 참살되었다. 윤 씨는 음부에 콜라병 등이 박히고 항문에는 우산이 꽂힌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993년 8월, 미국 정부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약 72,000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매춘부가 살해된 이 사건 그 자체로는 미군 특권에 관한 국민적 논의를 자극하지는 못 했다.

2004년 이후 필리핀인 또는 러시아인 여성이 매춘부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양국 여성이 보다 저렴한 대체 노동력이 되면서 한국인 성노동자는 감소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군사기지 인근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의 80~85%를 외국인이 차지했다. 소련 붕괴에 따라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이 위안부로 일하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했고, 어떤 이들은 미군과 민간 한국인 모두를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필리핀인과 러시아인 성노동자가 대다수라고는 하지만 한국인 매춘부가 여전히 다수 존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대한민국)에 따르면, 2002년 한국인 매춘부는 약 33만 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기지 부근에서 일하지 않고 지역경제 내에서 일하고 있다. 2013년, 여가부는 약 50만 명의 여성이 국내 성산업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한국페미니스트협회는 실제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 추계에 의하면, 15세부터 29세까지의 여성의 최대 1/5이 성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또 성산업 거래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4%를 차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South Korea: A Thriving Sex Industry In A Powerful, Wealthy Super-State’04/29/13)



1999년 8월, 동두천시에 있는 클럽의 한국인 소유주가 미군 기지를 위해 1,000명 이상의 필리핀인과 러시아인 여성을 한국으로 데려가 여성을 불법 거래(인신매매)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한국의 재판부는 이 소송을 기각했다. (Time(Donald Macintyre/Tongduchon) ‘Base Instincts’ Aug. 05, 2002) 2000년 군산시에서는 성매매 업소에 감금된 5명의 외국인 여성이 화재로 사망했다. 

2002년 미 폭스 방송의 한 프로그램은 인신매매된 여성이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철창이 달린 매춘업소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 병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클럽이나 술집 주인은 매춘부들을 경매로 구입했고,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여권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Hughes, Donna M.; Chon, Katherine Y.; Ellerman, Derek P. (30 June 2016). “Modern-day comfort women: the U.S. Military, transnational crime, and the trafficking of women”. Violence Against Women 13 (9): 901-922. doi:10.1177/1077801207305218. PMID 17704050.)

2002년 5월, 미국 국회의원들은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에게 “만약 미국 병사들이 이들 시설을 순회하거나 자주 방문한다면, 우리 군이 실질적으로 인신매매업자들의 배를 불리도록 돕고 있는 것”이라며 조사를 의뢰했다. (Time(Donald Macintyre/Tongduchon) ‘Base Instincts’ Aug. 05, 2002) 2002년 6월, 미국 국방부는 인신매매에 관한 증언을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2003년 서울지방법원은 케이시 기지(Casey Station) 근교의 주인 3명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한 필리핀 여성 전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Korea JoongAng Daily ‘Court rules in favor of Filipina prostitutes’, May 31, 2003)

클럽 주인은 그녀들의 여권을 압수하고 그녀들을 지속해서 구속하고 있었다. 포로 신세가 된 한 필리핀 여성은 자신의 감금, 구타, 낙태, 기아(飢餓)에 관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국제이주기구는 외국인 여성의 인신매매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제네바 본부에 보고했다.(KoreaJoongangDaily ‘[EDITORIALS]Deliver them from 'hell'’, January 6, 2003)

필리핀 대사관도 이 절차에 참여했고, 국민을 대신하여 조치를 강구하는 최초의 대사관이 되었다.(Korea JoongAng Daily ‘Court rules in favor of Filipina prostitutes’, May 31, 2003)

2002년 한국 정부는 러시아 여성에 대한 비자 발급을 완전히 중단했기 때문에 성매매 업자들은 그 대신에 필리핀 여성들을 더 많이 데려오는 일에 암약했다. 인신매매업자들은 또한 위장결혼을 통해 러시아인 여성들도 데려왔다.

2005년에는 필리핀 여성과 러시아 여성이 미군 기지촌 매춘부의 90%를 차지했다. 2005년 동두천시 클럽주인 황수향(Hwang Sook-hyang)은 불법 성매매 혐의로 10개월의 징역형과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이어진 민사재판에서는 2004년 2월 8일부터 3월 3일까지 미군과 성관계를 강요당한 필리핀 여성에게 배상금 5,000달러가 선고됐다. 이 필리핀 여성은 2004년 필리핀 주재의 한국 기업에 의해 나이트클럽 가수로 채용되었고, 그 후 그녀와 몇몇 필리핀 여성들은 한이 운영하는 클럽에 감금되어 미국 병사들과의 성관계를 강요당했다. (Stars and Stripes ‘Ex-bar worker who was forced into prostitution wins $5,000 judgment’, August 6, 2005)

주스바의 전직 종업원은 병사가 성교 목적으로 여성을 술집에서 호텔 방으로 반출하는 데 평소 150달러를 지불했다고 증언했고, 여성들은 그중 40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주스바는 음료의 판매량에 따른 할당 시스템(쿼터제)을 실시하고 있었다. 즉, 주스를 일정량 판매하지 못한 여성들은 점포 관리자에 의해 매춘을 강요당하는 형태였다.(Stars and Stripes ‘'Juicy bars’ said to be havens for prostitution aimed at U.S. military’, September 9, 2009)

2004년에 미국 국방부는 반-매춘(anti-prostitution)을 제안했다. (오키나와에 있는) 캠프 포스터(Camp Foster)의 미국 군인들은 미합중국, 한국, 태국, 호주에서는 매춘이 불법이지만 “상당히 오픈”되었었다고 ‘성조기(Stars and Stripse)’ 신문 기자들에게 말했다.(Stars and Stripse ‘Troops mixed on anti-prostitution proposal’, September 25, 2004)

2009년까지 주한국 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여성이 성매매를 강요당한 술집의 '감시 리스트'를 작성했고, 미군 사령관이 각 부대의 이러한 시설 이용을 금하게 할 것을 기대하고 미군과 해당 리스트를 공유할 계획도 세웠었다.(Stars and Stripse ‘Philippine Embassy has 'watch list' of suspect bars in South Korea’ September 26, 2009)

2009년 현재 약 3,000에서 4,000명의 여성이 매년 동남아시아에서 와서 매춘부로 일하고 있으며, 매춘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기지촌은 여전히 단속에서 실질적으로 면제되고 있었다.(INTER PRESS SERVICE(Zoltán Dujisin) ‘RIGHTS-SOUTH KOREA: Prostitution Thrives with U.S. Military Presence’, Jul 7 2009)

2010년, 미국 국무부는 미군기지 근처의 바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의 곤경이 한국에서 진행 중인 인신매매의 문제점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군기지 근처에서 일하게 할 목적으로 필리핀 여성을 한국으로 데려가는 이른바 흥행 알선 업체의 인가를 정지했다.(Stars and Stripes ‘Report on human trafficking cites South Korean juicy bars’ June 18, 2010)

2011년 제8군(미군)은 성폭력 저지 특별수사반(Prevention of Sexual Assault Task Force)을 설립했다. 이 특수반은 미국 병사간의 성폭력에 관한 한국 국내의 풍조를 평가해 보고했다.(Stars and Stripes ‘Report underscores Army's ineffectiveness to prevent sexual assaults in Korea’ May 21, 2013) 

2012년 주한미군 공익사업부가 “현재 가수나 무용수가 되려는 젊은 여성들이 한국에 유치돼 있다”며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라고 분명히 공표했다. 주한미군은 유튜브에 비디오를 올려 “주스바에서 비싼 음료를 사는 것은 현대 노예제도의 한 형태인 인신매매 산업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PAO USFK ‘Human Trafficking public service announcement’ https://youtu.be/adQQ1mQFdUc)

그러나 성매매나 인신매매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한 미군 병사가 이러한 바에 가는 것을 용인하는 사령관도 있다.(Stars and Stripes ‘USFK video links 'juicy bars' with human trafficking’, October 28, 2014)

최근 2013년 6월에는 잔-마크 조아스(Jan-marc Jouas) 사령관이 제7공군(미군) 요원에 대해 오산 공군기지 밖에 있는 모든 주스바 이용을 금지했다. 이 정책 변경의 결과로서 해당 지역에서는 3주간의 대규모 항의 데모가 일어났다. 조아스 사령관은 이 정책 변경으로 인해 지역 내에 있는 주스바의 대부분이 폐쇄되었다고 생각했다.(Stars and Stripes ‘Businesses counter-protest 'juicy bars' demo outside Osan’, June 17, 2013) (Stars and Stripes ‘Bar owners, workers protest Osan's off-limits ban on juicy bars’, June 14, 2013) (Osan Air Base ‘Fighting human trafficking - the Songtan Protest and its aftermath’, 7/10/2013)

2014년 6월 25일, 미군을 상대한 한국인 생존 위안부 122명이 자국 정부를 상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줄 것과 원고 1인당 1,000만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미군과 한국 정부의 감독하에 있었고, 한국 당국은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성매매 알선업자들과 공모하고 있었다.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3인은 신체적 및 심리적 손해에 대한 보상으로 원고 57인 각각에 대하여 4,240달러 상당의 금액을 지급하도록 정부에 명령하였다.(NYTimes ‘South Korea Illegally Held Prostitutes Who Catered to G.I.s Decades Ago, Court Says’, Jan 20. 2017)

2014년 이후 주한미군은 교제 목적으로 호스티스에게 손님들이 음료(또는 주스)를 구입할 수 있는 시설 방문을 모든 미군에게 금지하고 있다. 호스티스 바, 주시 바 등 성적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회사는 미군에게는 모두 출입금지다. 미군 관계자들은 호스티스 바의 주고객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로 인해 한국 내 모든 미군기지 근처에 있는 호스티스를 테마로 한 시설들이 폐쇄하게 됐다.(Stars and Stripes ‘USFK bans buying drinks for 'juicy bar' workers’ October 28, 2014)

3.7 옛 주한미군 위안부의 고발(元・在韓米軍慰安婦による告発)

2009년 1월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전자판)가 옛 주한미군 위안부의 고발을 보도했다(NYTimes, ‘Ex-Prostitutes Say South Korea and U.S. Enabled Sex Trade Near Bases’, Jan. 7, 2009).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직 위안부이자 재판 원고인 여성(Kim Ae-ran)은 한국 정부가 미합중국군의 하나의 큰 포주(one big pimp)였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은 가난하고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남한 당국자들은 성매매 금지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들을 찬양하고 성매매를 장려했다고 주장한다. 원고 여성은 한국 당국자로부터 “몸을 더 팔아라. 당신들은 달러를 얻는 애국자다”라고 칭찬받았다고도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발에 대해 주한미군도 한국 정부도 뉴욕타임스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거부했다.

2013년 11월 한국의 야당이 박정희 대통령의 결재 서명이 들어간 문서 기록을 바탕으로 정부를 이 문제에 관해 추구한 적도 있었으나, 한국 정부는 호소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한국 언론조차도 이들은 단순 매춘부였다며 무시했다. 해당 문서에 의하면, 기지촌은 62개소가 있었고 '미군 위안부'는 9,935명이 있었다고 한다.(산케이신문(産経新聞) ‘한국에서 ‘미군 위안부’ 122명 국가에 배상요구 집단제소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 ‘인권침해’‘ 2014년 6월 28일자)

2014년 6월 25일 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며 한국 여성 등 122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 언론도 그제야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이미 일정한 배상도 지불되었지만, 비슷한 처지의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은폐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의 사죄도 배상도 없으며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원자에 의하면 미군 위안부에 의한 국가배상 소송은 처음이라고 한다. 

1947년 공창제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1950년 조선전쟁 때 미군(유엔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정 지역을 만들어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했다. 이 실태에 대해서는 미국 공문관에서도 역사 사료를 열람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의 성매매 관리는 강제적이었고 위안부 중에는 부모에게 팔렸거나 속여서 끌려온 10대 소녀도 있었다. 도망치려고 경찰에 뛰어들어도 다시 끌려갔다고 증언하는 여성도 있었다. 또 성병을 가진 위안부는 아래에 서술된 몽키 하우스에 강제 수용되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직접 관리했다는 지적도 있다.  (산케이신문(産経新聞) ‘한국에서 ‘미군 위안부’ 122명 국가에 배상요구 집단제소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 ‘인권침해’‘ 2014년 6월 28일자)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자도 있었고, 약물을 투여받고 중독된 자도 있었다고 한다.(Hankyoreh ‘[土曜版 カバーストーリー] 「人身売買に遭い毎晩泣きながら米兵を受け入れた」’ 2014년 7월 5일자 )

이 때문에 위안부와 지원단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가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하였고 아직 미국에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 정부를 피고로 하는 재판의 첫 공판은 2014년 12월 19일에 열렸고, 다음 공판은 2015년 1월 30일에 예정되어 있다.*

[* 2017년 1월 20일 1심에서 원고 부분 승소, 2018년 2월 8일 2심에서 추인, 2022년  9월 29일 대법원에서 이를 최종 추인했다. ]

3.8 몽키하우스(モンキー・ハウス)

'몽키하우스'는 성병을 앓은 주한미군 상대 위안부(윤락녀)를 강제 수감한 시설이다. 한국 경찰이 관리한 시설로 알려졌다. 성병을 앓은 윤락녀를 주한미군 헌병과 한국 당국이 찾아내 신병을 한국 경찰에 인계한 뒤 몽키하우스에 수감했다. 시설의 창문은 철창살로 되어 있고, 출입문은 잠겨져 있었다. 시설에서는 성병의 치유행위가 이루어져 성병이 완치될 때까지 시설을 나갈 수 없었다고 원고 여성은 주장했다. 옛 위안부에 따르면 페니실린 등 항생제를 대량으로 투여받아 사망한 자도 있다고 한다. (NYTimes, ‘Ex-Prostitutes Say South Korea and U.S. Enabled Sex Trade Near Bases’, Jan. 7, 2009) (Hankyoreh ‘[土曜版 カバーストーリー] 「人身売買に遭い毎晩泣きながら米兵を受け入れた」’ 2014년 7월 5일자 )

2015년 11월 7일, SBS TV의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는 ‘‘꽃’에 관한 인권보고서 2부작 - 2부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편을 방영했다. 방송에 따르면 몽키하우스의 원래 명칭은 ‘낙검자(落検者) 수용소’(낙검자란 검사 불합격자)라고 한다.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軍事クーデター)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백태하(白泰夏) 씨가 주한미군 병사들을 위해 성매매 여성들을 모아 아메리칸 타운 건설을 주도하여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다.

병이 아니라고 증명된 경우에는 개처럼 태그를 붙이도록 강요당했다. (Korea JoongAng Daily ‘Openly revealing a secret life’ July 31, 2005)

• 한국에서 미군을 상대한 여성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특별한 강의를 자주 들었고, “진정한 애국자”나 “달러를 버는 요정”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한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한국을 도우러 온 병사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청결하게 하라고 지도했다.(Korea JoongAng Daily ‘Openly revealing a secret life’ July 31, 2005)

3.9 한국 정부의 대응(韓国政府の対応)

이 주한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제주도 4・3사건,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여수 순천 사건, 라이따이한 문제 등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서 손해배상이나 사과를 청구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옛 일본군 위안부의 보상과 사죄에 대해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국에 청구를 계속하고 있다.

3.10 주스바(ジューシー・バー)

오늘날에는 한국에서 미군을 상대로 하는 주스바(Juicybar)에 종사한 필리핀 여성들이 인신매매 상황에 처해 있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술집 등은 당국의 적발 대상에서 제외된다.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은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의해서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한다는 명목으로 모집된 여성들이다. 주한미군 조차도 이들 여성들은 가수,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PRESSTV ‘US servicemen in Korea contribute to human trafficking: report’ Dec 21, 2012)

필리핀 여성들은 양키 매춘부, 쌀로 움직이는 꼬마 갈색 퍼킹머신 등 경멸적인 호칭으로 불렸다. (Foreign Policy in Focus, ‘Military Sexual Violence: From Frontline to Fenceline’ June 17, 2013) 1,000명이 넘는 필리핀 여성과 러시아 여성이 미군기지 주변 클럽에서 인신매매당했다며 클럽 주인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으나, 한국 재판부는 소를 기각했다. (Time(Donald Macintyre/Tongduchon) ‘Base Instincts’ Aug. 05, 2002)

하지만 2002년 미국 폭스TV가 한국에 인신매매된 여성들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음을 보도하자, 이듬해부터는 감금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일부 필리핀 여성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으며, 필리핀 여성들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제하던 경영자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사회봉사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나오게 됐다.  (Korea JoongAng Daily ‘Court rules in favor of Filipina prostitutes’, May 31, 2003)

2000년 이후 한국의 매춘업소에 감금되어 있는 외국 여성 등이 다수 화재로 소사(焼死)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현대 위안부와 미군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동논문 ‘Modern-Day Comfort Women: The U.S. Military, Transnational Crime, and the Trafficking of Women’에 구체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2009년 미군 기관지 성조기(Stars and Stripes) 신문은 한국에서 주스를 쿼터제로 파는 여성들은 매출에 따라 가게 주인들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여성들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술집의 감시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여성들의 재판을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Stars and Stripes ‘Philippine Embassy has 'watch list' of suspect bars in South Korea’, September 26, 2009)

2012년 주한미군은 주스바에서 비싼 음료값을 지불하는 것이 현대 노예제도의 하나인 인신매매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다.(PAO USFK ‘Human Trafficking public service announcement’ https://youtu.be/adQQ1mQFdUc)

현재 진행 중인 인신매매라고 미군도 주의권고를 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Donna Hughes, Katherine Chon, Ellerman Ellerman (2007). Modern-Day Comfort Women:The U.S. Military, Transnational Crime, and the Trafficking of Women.)


4 정책(政策)

미국과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점령 지배와 영향력을 결정했다. 한국인 지도자와 미군의 공동 작업을 통해 용인하고 관리한 매춘의 제도화 시스템이 생겨났다. 미국 병사의 방한은 한국인 섹스워커에 대한 수요 급증 및 위로, 휴양 시설의 고객 수 증가를 가져왔다. (Moon, Katharine HS (1997). Sex Among Allies .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ISBN 978-0-231-10643-6 . OCLC 36589954)

4.1 공창제도 폐지(公娼制度廃止)

1947년 11월 11일에 공창제도 폐지가 성립되었고 1948년 2월 14일에 시행되었다. 일본 통치하에 확립된 공창제도를 변경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이 도입되었다. 공식적으로 인가된 매춘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매춘의 ‘민영화’ 및 지역 전체의 광범위한 매춘부 분산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이는 정부가 매춘부와 그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구체적으로는 매춘부에 대한 의무적인 STD 검사를 더 이상 실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매춘부와 미군 사이에서 성 감염증이 대규모로 유행했다. 매춘부를 위한 갱생과 복지 원조는 새로운 법률의 일부가 될 것이었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이러한 계획을 위한 국가 기금을 저지했다.(Lee, Na Young (2007). “The construction of military prostitution in South Korea during the US military rule, 1945-1948”. Feminist Studies 33 (3). OCLC 938373395.)

공창제도를 폐지하기 전까지 미군 정권은 인가받은 매춘 시설을 군사기지 인근 기지촌에 다시 설치했다. 이는 매춘부와 미군을 위한 교류 공간을 제공하게 되었다.

4.2 상호 방위 조약(相互防衛条約)

조선전쟁(1950-1953년)의 시기에 한국을 원조했던 미국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과 미국을 군사 동맹으로 선언하는 1953년 미한상호방위조약을 가져왔다. 이 조약을 통해 대한민국은 조선에서 미군의 군사시설, 구역, 지위를 무기한으로 정식 인정했다. 상호방위조약 하에 미군부대의 존재가 기지촌에서의 높은 매춘 비율을 만들어냈다.(Moon, Katharine HS (1997). Sex Among Allies .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ISBN 978-0-231-10643-6 . OCLC 36589954)

4.3 닉슨 독트린(ニクソン・ドクトリン)

1969년에 닉슨 독트린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줄일 필요성을 선언했다. 그 결과로 미군 2만 명이 한국에서 떠나고 미군이 군사경계구역(DMZ)에서 정식으로 철수했다. 일과 수입을 미군의 존재에 경제적으로 의존한 탓에 매춘 자체는 감소했지만 클럽, 업자, 섹스워커간의 경쟁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각 신문들은 뚜렷한 경제적 손실과 미군 철수 후에 발생할 수 있는 광범위한 혼 문제에 대해을 보도했다. 일부 시설에서는 하룻밤에 200-300달러를 팔아도 이익이 4-5달러라고 공표했다. (Moon, Katharine HS (1997). Sex Among Allies .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ISBN 978-0-231-10643-6 . OCLC 36589954)

미군기지 근처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집중된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지만 한편으로 다른 산업에서 일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닉슨 독트린 하에서의 미군 철수는 기지촌 문제의 증가와 미국에 대한 큰 원한을 불러일으켰다.


5 기지촌(基地村)

대규모 육군 주둔지 기지촌은 주로 북조선과 남조선 사이에 있는 비무장지대(DMZ) 근처에 위치해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기지촌은 평택시, 파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이며 이 지역들은 주요 미국 육군기지의 근처에서 개발되었다. 기지촌은 미군의 주둔 기지에 인접해서 미국인과 한국인 주민이 혼재했다. 이 지역은 미군의 편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과 오락으로 이루어졌다. 매춘업소, 바, 클럽 등의 휴식, 위로 시설이 미국 병사에게 기지촌 여성을 제공했다. 기지촌에는 이발소, 전당포, 편의점 등의 다른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둔지 마을은 기지촌에서 밤놀이를 하러 오는 손님의 발길에만 의존했다. 

5.1 경기도(京畿道)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서 경기도는 수많은 미군과 한국인 성노동자를 수용했다. 1977년 한국인 섹스워커 추정 36,924명 중 18,551명이 경기도에 살았다. (Moon, Katharine H.S (1997). Sex Among Alli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ISBN 978-0-231-10643-6. OCLC 36589954) 

2001년에 남아 있는 미군 기지 34개 중 21개가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 중에서는 동두천, 평택, 파주, 의정부가 매춘을 위해 가장 인구가 집중한 도시다.(Lee, Na Young (2006). The Construction of U.S. Camptown Prostitution in South Korea: Trans/Formation and Resistance.)


6 여성과 자손(女性と子孫)

미군과 한국의 매춘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병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종종 방기되었다. (Korea Joongang Daily ‘The actual reality of interracial relationships’ June 12, 2012) 1970년대까지 한국인 여성과 미군 사이에 수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시사저널 ‘6·25의 사생아 ‘양공주’ 통곡 50년’ 2003년 7월 29일자)

한국에서는 이들 어린아이가 인종차별적 폭력과 학대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백인 병사의 자녀는 ‘양공주의 사생아’(양공주 새끼)로 불렸으며, 소수파인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검은 것’ 또는 ‘검둥이’로 불렸다.*

[* 사생아라고 번역하였으나, 조선어에서 ‘새끼’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새끼’를 가리키며, 이는 이른바 ‘사람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뜻하는 욕설이다.]

미군기지 주변의 한국인 매춘부들은 한국 사회에서 찍힌 낙인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고, 그녀들의 유일한 희망은 미국으로 이사해 미군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Hughes, Donna M.; Chon, Katherine Y.; Ellerman, Derek P. (30 June 2016). “Modern-day comfort women: the U.S. Military, transnational crime, and the trafficking of women”. Violence Against Women 13 (9): 901-922. doi:10.1177/1077801207305218. PMID 17704050.)

인신매매된 필리핀인 또한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POLITICO ‘My body was not mine, but the US military’s’ NOVEMBER 3, 2015)

일부 미군은 결혼하기 위해 여성의 빚을 주인에게 갚고 그녀들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군이 인신매매의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일부 병사들은 필리핀 여성이 클럽에서 도망치는 것을 돕기도 했다. 

2009년 케이시 기지 근처에서 정치권력을 갖고 있던 주스바의 주인은, 미군들이 결혼을 약속하고 술집 여아를 설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 당국자들에게 뭔가 방법을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Stars and Stripes ‘'Juicy bars’ said to be havens for prostitution aimed at U.S. military’  September 9, 2009) 2010년 6월, 미군은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방기한 병사를 찾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동아일보 ’[뉴스테이션/탐사리포트]또 다른 양공주의 비극’ 2010년 4월 27일자)

미군의 자녀이자 한국 여성인 그레이스 M. 조(Grace M. Cho)가 집필한 매춘부 연구서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Shame, Secrecy, and the Forgotten War’는,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아시아와 미국계 아시아인에 관한 2010년 베스트북을 수상했다.(CSITODAY ‘Cho Wins Best Book On Asia Award’ Jun 28, 2010)

한국의 전직 매춘부들은 뉴욕타임스에 자신들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최대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자신들을 전쟁 피해자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NYTimes, ‘Ex-Prostitutes Say South Korea and U.S. Enabled Sex Trade Near Bases’, Jan. 7, 2009)

이러한 부패한 역사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이 백인 남성 또는 ‘흰둥이’와 (성교)한 한국 여성에 대해 가지는 스테레오 타입은 주로 부정적인 것이다.*

[* ‘흰둥이’ 한국에서 백인을 지칭하는 모멸 용어다.]

또한 국제결혼은 대부분 미국 병사와 주둔지 매춘부였던 한국 여성, 또는 미군 기지에서 일하던 한국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Korea JoongAng Daily ‘Forum tackles overseas marriages’ October 23, 2005) 2010년까지 10만 명 이상의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사했다.(CSITODAY ‘Cho Wins Best Book On Asia Award’ Jun 28, 2010)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은 매춘부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종종 심각한 오명을 뒤집어쓴다. 스페인 사람과 결혼한 한 여성은, 남편과 손잡고 길을 걸을 때 한국인 중년 남성의 거의 100%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고 말했다.(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 내 마음속 제노포비아‘ 2012년 3월 14일자)


7 대중문화(大衆文化)

7.1 영화(映画)

 ‘The Women Outside: Korean Women and the US Military’(1995), 박혜정(Hye Jung Park)과 J.T. 타카기(J.T. Takagi)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Comfort Woman - Wianbu(2008), 제임스 방(James Bang)이 감독·제작한 단편 영화. 제35회 학생 아카데미상 에 후보되었다.

 ‘악야’(1952) 및 ‘지옥화’(1958), 영화 속에서 한국인 매춘부를 그린 신상옥 감독의 작품.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이 작품에서 장길수 감독은 약탈된 한국국가의 상징으로 매춘부를 비추고 있다.

• ‘아름다운 시절(Spring In My Hometown)’(1998), 결코 돌아오지 않는 미국인 연인을 기다리는 매춘부를 그린 이광모 감독의 작품.

• ‘수취인 불명’(2001), 결코 한국에는 돌아오지 않는 매춘부의 연인을 그린 김기덕 감독의 작품.

• ‘Bloodless’(2017), 김진아 감독에 의한 이 작품은 1992년 미군 병사에 의해 참살된 한국인 매춘부의 실화, 윤금이 살해 사건에 근거한 것 .

 Camp Arirang(1995)

7.2 극(劇)

• Seven Neighborhoods Like Warm Sisters ', 햄프리스 기지 근처에서 사는 매춘부를 그린 작품.

7.3 소설(小説)

• ‘쇼티김(Shorty Kim)’ (1957).

• ‘오발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매춘부가 된 여성을 그린 유현목의 작품.

• ‘What Crashes, Has Wings’(1988).


8 참고문헌(参考文献)

• Argibay, Carmen (2003). “Sexual Slavery and the Comfort Women of World War II”. Berkeley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21 (2).

• Cheng, Sealing (2010). On the Move for Love: Migrant Entertainers and the U.S. Military in South Kore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ISBN 978-0-8122-4217-1

• Cho, Grace M. (2008).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Shame, Secrecy, and the Forgotten War.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ISBN 978-0-8166-5275-4

• Chow, Esther Ngan-Ling; Segal, Marcia Texler; Lin, Tan (2011). Analyzing Gender, Intersectionality, and Multiple Inequalities: Global-transnational and Local Contexts. Emerald Group Publishing. ISBN 9780857247445

• Clough, Patricia (2007). The Affective Turn: Theorizing the Social. Duke University Press. ISBN 978-0-8223-3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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