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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하버드대 램자이어 교수, 일본 주간지 ‘슈칸신초’ 독점 수기

“위안부 강제연행설을 비판하는 학자에 대한 미국 학계 일부의 극단적 반응은 학적 스탈린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본 기고문은 일본 유력 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 2022년 2월 3일호에 게재된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위안부=직업매춘부’ 논문으로 ‘마녀사냥’ 당한 하버드대 교수, 그가 고백하는 비정상적인 학자 공격 문제(「慰安婦=職業売春婦」論文で「村八分」となったハーバード大教授が激白する“異常なバッシング”)’ 제하 수기를,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와 슈칸신초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2020년 말에 발표된 논문 ‘태평양전쟁의 매춘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은 ‘위안부=성노예’설을 부정하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격렬한 규탄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규탄은 정치적 의도에 근거한 운동으로, ‘학문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였다. 파동으로부터 1년, 한 학자에 대한 지독했던 인신공격의 전모(全貌)를 밝힌다.


[필자소개] 존 마크 램자이어(J. Mark Ramseyer).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 1954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76년, 고센 칼리지 졸업(B.A). 미시간대학에서 석사(M.A, 일본학),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무석사(JD) 취득.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학교, 시카고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 재직. 전문은 일본법. 일본어 저작으로 ‘법과 경제학-일본법의 경제분석(法と経済学―日本法の経済分析)’ 등.  



필자의 논문이나 서적이 일반인의 주목을 끄는 일은 거의 없다. 필자는 극소수의 전문가만 읽는, 도드라지지 않는 논문이나 저서를 쓰기 때문이다. 2020년 후반에 발표한, 위안부에 관한 필자의 논문도 처음에는 어느 경제 사이트가 가볍게 언급해 준 것 외에 일반 대중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1년 전인 2021년 1월 말, 일본의 산케이신문(産経新聞)이 매우 호의적으로 필자 논문의 요약본을 게재했다. 1월 28일 목요일에는 산케이신문 웹사이트에, 그리고 일요일에는 본지 지면에도 요약본이 게재됐다.

2월 1일 월요일, 필자는 여느 때와 같이 기상한 후에 아침을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필자를 비방 중상하는 짓궂은 헤이트(hate) 이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언론들이 필자의 논문을 언급한 산케이의 기사에 대해 다룬 것이다. 헤이트 이메일은 월요일 중에만 77건이 도착했고, 이는 일제히 적의(敵意)에 찬, 반일(反日)적인 내용이었으며 대부분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날 이후 매일 대량의 헤이트 이메일이 전송됐고, 이는 2개월간 지속됐다.

헤이트 이메일을 계기로 필자의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인 ‘인터내셔널리뷰오브로앤이코노믹스(The International Review of Law & Economics)’의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발행원인 엘스비어(Elsevier)사가 해당 논문에 대한 트윗 게시물을 올렸고, 여기에 1,200회의 트윗이 달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필자의 논문에 관해서 트윗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필자는 트윗을 읽는 방법조차 몰랐다. 

아들에게 도움을 구해 트위터 계정을 등록하고 서치 기능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미국인 학자 그룹이 한국 언론의 기사를 읽고 분노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학자들로부터의 맹공격

관련해 첫 번째 트윗을 올린 이는 한나 셰퍼드(Hannah Shepherd, 현재 예일대에서 일본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였던 것 같다. 그녀는 월요일 아침에 트윗을 하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미쓰비시가 지원하고 있는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위안부가 매춘부였다고 논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 시간 뒤에 그녀는 또다시 트윗을 이어갔고 “이 논문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한국 언론에서 1면에 다뤄지고 그(램자이어 교수)의 소속처 이름도 언급됐는데 무시할 수 있을까? 무시해도 좋을까?”라고 했다.

이러한 트윗을 이어간 이들의 선두 집단에는 에이미 스탠리(Amy Stanley,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일본사를 가르치고 있다)와 데이비드 앰버러스(David Ambaras,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온종일 트윗을 주고받고 있었다. 젊은 학자 폴라 커티스(Paula Curtis, UCLA의 일본연구센터 연구원이다)도 거기에 가세했다.



화요일이 되자 이 트위터상의 학자들은 논문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에이미 스탠리와 한나 셰퍼드는 각각 월요일 중에 학술지 발행처에 연락을 취해 논문 게재 철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한나 셰퍼드는 자신이 낸 요청서를 트위터에 올리며, 다른 사람도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는, “램자이어의 논문은 일본의 ‘극우부인주의자들(極右否認主義者)’의 주장을 에코 체임버 현상(폐쇄적 공간 내에서 주고받기가 반복됨으로써 특정한 신념, 사상이 증폭 및 강화되는 것)으로써 학술지에서 반복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마치 축제와 같은 소동

필자의 비판자들은 트위터 상에서 마치 축제를 즐기는 눈치였다. “저기, 램자이어의 이 끔찍한 논문에 대해 적어도 다섯 명의 여성이 편집자에게 (논문 철회) 요청서를 보냈다고 하더군.” 폴라 커티스는 이와 같이 트윗을 남긴 후 “남성 학자는 몇 명이 항의했어?”라고 이어갔다.

2주 사이에 한나 셰퍼드, 에이미 스탠리, 챠타니 사야카(Chatani Sayaka, 茶谷さやか, 싱가포르 국립대학 조교수), 첼시 센디 샤이더(Chelsea Szendi Schieder,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 -- 이 모두는 인문학부에서의 일본 연구자들이다 — 는, 학술지에 필자의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30페이지에 걸친 요청서를 공동으로 제출했다.


하버드대학 동료들로부터도 일주일 내로 움직임이 있었고, 일본사 전문가인 앤드루 고든(Andrew Gordon)과 조선사 전문인 카터 에커트(Carter Eckert)가 논문 게재 철회를 요구하는 요청서를 학술지 발행처에 제출했다.

다섯 명의 학자들은 필자의 논문에 여러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고, 앤드루 고든과 카터 에커트는 필자가 실제 (위안부) 계약서는 보지도 않고서 논문을 썼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측 모두 필자의 논문이 학문에 있어 방대한 부정행위로 작성됐다는 식의 비난을 이어갔다.

소속 단체에 대한 압력

하버드대 로스쿨 동료인 석지영(Jeannie Suk)은 ‘더 뉴요커(The New Yorker)’(지식인층에 인기 있는 잡지라고 한다)에 비판적인 칼럼을 실었다. 그녀는 일본 및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필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예컨대 데이비드 앰버러스나 앤드루 고든)에게 연락을 취하며 그들과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실제로 30면(頁)이 넘는 필자의 논문 내용 중에서, 페이지 표시 등의 오류를 제외하고선 잘못된 부분은 3군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큰 오류는 아니었다.

앤드루 고든과 카터 에커트는 필자가 (위안부) 계약서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지만, 사실 조선인 및 일본인 위안부가 계약에 의해 일했다는 다수의 기술이 존재한다. 이 분야에 관한 일본의 서적은 거의 모두가 관련 계약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문서, 회상록, 신문광고, 일기 등에도 계약에 관한 기술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UCLA의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자 마이클 최(Michael Suk-Young Chwe)는 필자의 논문 게재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조직하여, 최종적으로 3,000개가 넘는 서명을 받아냈다. 그러나 서명인의 대다수는 일본과 조선의 역사에 대해 그다지 깊은 견식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학자라는 이들이,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의 논문에 대해 철회 요구를 한다는 건 필자에게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학자들이 서명에 가세했다.





미국인 교수들도 아주 낡고 잘못된 관습인 냉혹한 마녀사냥에 가담했다. 하버드 대학에는 일본 연구 프로그램이 있으며(전 주일대사이자 하버드대 교수의 이름을 따서 라이샤워 일본연구소(Reischauer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라고 한다), 필자도 그곳의 위원회 멤버다.  일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앤드루 고든과 5명의 학자들이 앞세운 비판문을 연구소 홈페이지에 곧바로 게재했고, 이후에도 그 비판문은 반년 가까이 게재됐었다.

더불어 필자는 여럿 학술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지만, 필자의 비판자 중 한 명은 필자를 한 학술단체의 이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제정하라며 이사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비판자들은 학술지 편집인에게도 공격을 가했다. 복수의 출판사가 필자의 다른 논문들을 발간할 예정에 있었다. 이 논문들은 위안부 문제와는 무관한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자들은 학술지 편집부에 논문 게재 중지를 촉구했다. 

미국 대학이 한국처럼 변해도 되는가?

일련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이었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로 삼았다는 설은 합리적이지 않다. 세상 어느 군 기지에도 그 주변에 위안소가 있고 또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매춘부들이 있기 마련이다. 금전적인 이유에서 스스로 그 직업을 찾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이 굳이 조선인 여성들(이들은 애당초 일본 국적을 갖고 있기도 했다)만 강제로 모아서 일을 강요했다는 것일까. 그건 이치에 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쟁에는 ‘정치’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발 공격의 배경에는 정치적인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슈칸신초(週刊新潮) 독자들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현 한국 정권의 지지층은 강렬한 반일(反日), 곧 일본 비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세력이다. 즉, 한국에서는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들을 위안소에 강제연행했다는 설은 유권자 지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 설이 현 한국 정권의 세력 유지에 일조하고 있으며, 필자에 대한 공격은 바로 선거와 관련된 역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되,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는 선에서의 민주주의 국가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학자는 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나는 경우마저 있다. 때로는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러한 용납하기 어려운 문화를 마이클 최와 같은 학자는 미국의 대학에도 도입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인문학과의 대다수가 극좌(極左)

슈칸신초의 독자들은 미국의 일본 연구자들(예컨대 앤드루 고든, 에이미 스탠리, 데이비드 앰버러스 등)의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그 힌트가 폴라 커티스가 최근에 집필한 논문에 포함돼 있다. 그녀에 의하면, “특권, 제도, 그밖에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는 일부 그룹(그것은 대개 상급직에 속하는 엘리트 조직의 백인 남성들)이 직권을 남용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연구자들은 필자와 같은 ‘상급 백인 남성’으로부터 대학을 ‘해방시키고 개혁’하는 일에 계속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폴라 커티스의 일련의 발언은 현대 미국 대학의 인문학과에 존재하는 기묘한 정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인문학과는 대부분 한결같이 좌파이고 상당수는 극좌다. 그리고 위안부에 관한 극단적인 민족주의 코리아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사고에 부합하는 것 같다.

하여튼 위안부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에이비 스탠리나 데이비드 앰버러스 같은 비평가들은 단호하고 철저하게 검열에 몰두하는 듯 했다. 2021년 11월 중순, 저명한 한국의 경제학자인 이우연 박사가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글을 기고했다. 이 박사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데이비드 앰버러스는 이 박사의 해당 칼럼을 스크린샷하여 트위터에 올리며 “위안부 문제 부정론자들은 추악하다”고 단언하며, “왜 ‘더 디플로맷’은 이런 잡다한 기고문을 게재하느냐”며 따졌다.


기자의 대응은?

이어서 에이미 스탠리가 이를 리트윗했고, 첼시 센디 샤이더도 이에 가세했다. 몇 시간 지난 뒤 ‘더 디플로맷’ 기자인 미치 신(Mitch Shin)이 “대응 중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기고를 삭제했습니다. 이런 불쾌하고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미치 신은 이 사과로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저희 회사가 해당 기고문을 웹사이트에 게재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기고문은 삭제하였습니다”라면서 사죄를 거듭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앰버러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편집자들은 애초에 왜 게재를 허용했는가, 이 같은 잘못을 향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방책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라고 썼다. 

미치 신은 답신을 하며 “당사의 공식 계정에 성명을 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한반도 문제 수석기자로서 앞으로 편집자들과 더욱 긴밀히 연락하여 사외에서의 기고문을 심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앰버러스는 “감사합니다. 부정론에 대응하기 위해 저희는 산더미와 같은 난제를 떠안고 있네요”라는 답장을 남겼다.  

미치 신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감사인사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이번 문제를 지적하여, 저와 ‘더 디플로맷’이 조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직접 연락을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저희의 발신 내용을 확인하시고, 여러분의 식견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정보원은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

과거 조선에서 일어났던 일은 실제론 매우 단순하다. 성병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이미 국내에 존재했던 매춘 면허 제도를 해외로 확장했던 것이다. 군은 여성들에게 굳이 성매매를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극빈(極貧) 여성들에게 매춘은 높은 급료를 받는 직업이었고, 전쟁 전, 일본과 조선에서는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이 경쟁을 뚫고 이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일본군에는 원치 않은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일에 병사를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어쨌든 병사들은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후 40여 년이 지났을 무렵,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라는 남자가 ‘나의 전쟁범죄(私の戦争犯罪)’라는 책을 펴냈고, 그는 과거에 다른 일본 병사들과 함께 조선에서 위안소로 보내질 여성들을 사냥을 했던 적이 있다고 서술했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중년의 한국 여성들이 돌연 자기들이 과거에 일본 병사에 의해 강제연행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에 금전과 사죄를 요구했다.

예전에는 자신의 의지로 취직했다고 말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요시다 세이지의 책이 출간된 뒤) 일본인 병사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부모의 압력에 의해 그런 직장을 구했다던 여성들이, 그 일은 사실 일본인 병사들에 의해 강요당했던 일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 유명한 유엔 인권위의 일본 비판(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도 마찬가지의 내용이다.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해당 보고서에서 요시다 세이지의 책을 명확하게 인용했다.

하지만 슈칸신초의 독자라면 이미 알다시피, 요시다 세이지는 이후 자신의 책이 완전히 엉터리였다고 자백한 바 있다. 실제 19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일본군이 조선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한 증거는 전무하다. 한국에서도 1985년 이전의 출판물에는 일본 정부가 조선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했다는 기록이 사실상 없다. 그리고 증언을 번복한 여성들은, 최근 한 거액의 금융사기 문제로 기소된 여자가 운영했던 노인 요양 시설에서 생활했었다.



학문의 장에서 스탈린(Stalin)주의

이런 역사를 미국 학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2003년에도 앤드루 고든은 한 영어 자료를 정보원으로 하여 책을 냈는데, 그 영어 자료는 요시다 세이지의 엉터리 저서를 토대로 하여 작성되었다. 하지만 2003년이라면 이미 일본에서는 요시다 세이지의 책이 허위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던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2003년 하버드대학에서 일본사를 연구하는 교수가 요시다 세이지의 책을 근거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책을 집필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요시다 세이지의 책이 출간된 이후부터 (한국) 여성들이 강제연행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인 연구자들은 옛 위안부들의 증언을 다수 인용하지만 옛 위안부들의 증언이 바뀌었다는 사실(증언이 여러 번 바뀐 경우도 있다)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아울러 위안부 논쟁 자체가 요시다 세이지의 허위 주장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도 대부분 언급을 하지 않는다.

1930년대에 조선반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일본군은 조선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은 명백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학자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확실하게 틀렸을 경우에, 누군가가 옆에서 단순하게 진실만을 얘기해줘도 격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위안부 주제에 관해서는 일본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인 연구자들은 놀랄 정도로 과격한 모습을 띤다. 그들은 필자의 논문에 대해 아무런 반증도 시도하지 않았으며, 줄곧 논문 발행의 금지만을 요구했다. 

이것은 학문의 장에서 펼쳐지는 스탈린(Stalin)주의다. 그리고 이는 미국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연구의 미래에 있어서도 결코 좋은 방향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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