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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김시습의 부활 ‘사랑애몽’이 꿈꾸는 사랑은?

극단 거목 창작 연희극 ‘사랑애몽’에 홀린 꿈결 같은 70분, 곧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만복사(萬福寺) 안 동쪽에 자리한 한 그루의 배나무. 어느 봄날 밤 활짝 핀 배나무 밑을 오가며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는 양생은 아름다운 사내다. 부모 없이 천애 고아로 절간 방 한 칸 얻어 홀로 살아온 외로운 처지이나 반듯하다.

심란한 세상, 천지간 혼자인 외로움은 자연히 짝을 그리게 된다. “그대가 참으로 아름다운 짝을 얻고 싶다면 어찌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걱정하느냐?” 공중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따뜻한 목소리.

이 맘 때 양생이 사는 마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때는 삼월 이십사일, 법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드물어지자 양생은 대웅전에 나아가 부처와 저포(摴蒲-윷놀이와 비슷한 게임)놀이 내기를 한다.

부처에게 이겼다고 득의양양한 양생은 부처에게 배필을 점지해 줄 것을 단단히 약속을 걸고 불상 뒤로 숨어 인연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나타난 열대여섯쯤 된 아리따운 아가씨. 그녀의 하소연을 들은 양생은 연정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녀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양생은 천상의 선녀 같기만 한 아름다운 이 여인과 세속의 시간 3년에 해당하는 꿈같은 3일을 보낸다.

서로를 갈구하는 지극한 연인의 사랑은 이별의 순간을 맞고야 만다는 가슴 아픈 사랑의 역설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양생과 여인은 결국 서로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을 맞는다. 양생이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그녀는 이승을 떠나야 했던 귀신의 몸. 애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셈이다.

양생에게 여인은 춘추시대 월나라 미인 서시의 자태를 지닌 고운 사람이다. ‘당신은 나와의 백년가약을 어기고 떠나려느냐’고 하소연 하는 양생. 하지만 “당신의 진실한 사랑 덕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게 돼 기쁘다”며 몸과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여인. 그녀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난다.

절찬 상영 중인 극단 ‘거목’의 창작극 ‘사랑애몽’은 우리나라 첫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5편의 단편소설 중 하나 ‘만복사저포기’를 원작으로 한다.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야기인 명혼소설(冥婚小說)로, 조선시대 천재 중 천재라 불린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역작이다.



김시습은 3살 때부터 외조부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해 유모가 맷돌을 가는 것을 보고 한시를 지어 궁궐에까지 신동이란 소문이 퍼졌던 인물이다. 다섯 살 때 그의 소문을 들은 세종이 궁궐에 불러 자신이 요구하는 대로 시를 척척 지어내는 어린 신동 모습에 감탄해 상을 내리고 훗날 큰 인재로 쓰겠노라 약속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약관을 갓 넘긴 21세 젊은 나이에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하던 공부를 접고 책도 모두 불태운 뒤 스님이 되었다. 귀머거리, 소경인 체 하며 세상을 등지고 벼슬길을 권하던 세조의 부름을 끝까지 거부하며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생육신 한명으로도 유명하다.

‘만복사저포기’ 속 양생은 단종을 애틋하게 사모하던 김시습 본인의 모습, 양생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지만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은 단종이 투영돼 있다.



흔히들 젊음의 거리로 일컫는 홍대 번화가에 위치한 ‘더 스텀프(The Stump) 극장’에서 수 백년 전 쓰인 고전적 사랑이야기가 상영 중인 것은 묘한 역설로 느껴진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양생과 귀신 여인의 사랑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공연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저녁 시간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 눈빛에선 호기심이 반짝반짝 빛났다. 출연 배우들이 가(歌) 무(舞) 악(樂) 희(戱)로 의인화해 봉산탈춤과 판소리와 서도소리, 굿의 전통춤과 창작무용 및 발라드풍의 음악 등으로 표현했다. 일종의 현대식 마당극의 형태.

저녁 7시,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창작극은 공연시간 70분이 한 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만복사저포기’ 원작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작품을 그대로 재연하기보다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하긴 수백 년 전 천재의 작품 모방을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원작 그대로를 상상한 관객이라면 기대에 조금 미진할지 모르겠으나, 사랑애몽은 수백 년 만에 부활한 ‘만복사저포기’라는 점 하나만의 이유에서라도 훌륭하다. 이 작품을 기획했다는 극단 거목 조윤서 대표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윤서 대표는 “교육적 가치가 충분하고 문화적 재해석이 가능해 우리 고유의 다양한 표현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질 작품으로 만복사저포기를 선택했다”며 “사랑도 해보지 못한 채 죽어 귀신이 된 여인과 배필을 그리워하는 총각 양생의 그리움을 한 서린 노래로 아리게, 그 둘의 만남은 한판 굿으로 신명나게, 그들의 사랑은 눈부신 춤으로 그리고 아픈 이별은 서러운 제(祭)로 가슴 치게 했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해학과 풍자에 관객들과 함께 웃고, 때로는 안타까움과 먹먹함을 맛보며 시간은 그렇게 꿈결처럼 흘렀다. 이달 말일(31일)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사랑애몽’, 그러나 작품과 이별의 아쉬움은 곧 또 다른 기쁨이 되어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네 씻김굿과 한바탕 제(祭)로써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극단 대표의 약속은, 기약 없이 양생의 곁을 떠나간 여인이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연인을 마음에 품고 기다리는 양생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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