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전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불법적으로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최성진 한겨레 기자에게 검찰이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2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고흥 부장검사)는 1월 18일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직접 청취, 녹음 후 기사화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최성진 기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좌파진영 인터넷 비평 웹진 미디어스는 <한겨레 기자 '징역 1년' 구형한 검찰의 '황당'심문>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검찰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매체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한겨레신문 기자 보도의 왜곡 부분을 빈틈없는 논리로 비교적 상세히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 측 이봉창 검사는 "기자는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도청해도 되나?" "신문기자로서 비실명으로도 요약보도가 가능한 것을, 굳이 실명을 다 노출시키며 전문을 공개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에 최 기자는 "최필립 이사장, 이진숙 본부장은 공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게 (기자로서) 정당한지는 언론계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해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될 일"이라며 "이 보도를 두고 재판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검사님에게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우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기자 주장대로라면 통신 대화 대상이 공인일 경우 몰래 엿듣고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기사화해도 정당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럴 경우 취재를 빙자한 기자들의 불법 도청 행위를 공공연히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검사는 또 "(최필립 이사장의 휴대전화 기종이었던) 아이폰과 (최성진 기자의) 갤럭시 S2를 이용해 당시 상황을 직접 실험해 보았다. 아이폰-갤럭시S2의 전화통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의 대화를 녹음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더라"고 지적했다. 이에 미디어스는 이 검사가 “한겨레가 공개한 대화록 자체가 최필립 이사장/이진숙 본부장 등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며 이 검사가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 ‘청계광장’ ‘대학로’를 ‘대형광장’ ‘대학’으로 의도적 왜곡?
그러나 미디어스 기사만 봐도 오히려 최 기자가 대화 내용을 자의적으로 추론해 보도한 사실이 확인된다. 실제로 이 검사는 음성 파일과 한겨레의 대화록 보도 내용이 다르다며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대화록에는 당시 이진숙 본부장이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기자회견 장소로 “대형광장이나 대학”을 지목한 것으로 나오지만, 음성 파일에는 ‘청계광장이나 대학로’로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검사는 "이진숙 씨는 언론인으로서 자기 뜻을 담아 '청계광장'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를 '대형광장'이라고 보도한 것은 왜곡이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 기자는 "'청계'라는 단어가 잘 들리지 않았고, 불분명하게 들리는 부분을 추정 보도할 수가 없어서 '대형광장'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며 "대화록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최 기자 주장과 달리 이 대목에서 이 전 본부장이 ‘청계광장’이라고 했는지 ‘대형광장’이라고 언급했는지는 미묘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최 기자가 광장 이름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면서도 ‘대형광장’이라고 적은 것은,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정수장학회와 MBC 측이 사람이 많이 모이고 또 모을 수 있는 큰 광장에서 주식 매각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최 기자가 의도적으로 적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음성 파일에서 광장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경우, 단순히 ‘광장’ 혹은 ‘OO광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최 기자가 ‘대형광장’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정수장학회와 MBC 측의 ‘정치적 의도’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대학로’를 ‘대학’으로 적은 것도 정수장학회와 MBC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박근혜 후보 선거 운동을 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한겨레신문은 2012년 10월 15일 단독보도에서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많이 지나다니는 대형 광장과 대학을 지목한 뒤”라고 표현했다.
이 밖에 이봉창 검사는 대화록 가운데 최필립 이사장이 "이걸 하게 되면 비꼬는 말이 상당히 나올 거라고" "뭐 대선 앞두고 잔꾀 부리는 거라고 해가지고 이야기는 나올 거야"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이 전 본부장이 "네, 맞습니다.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이라고 맞장구를 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음성파일의 발언이 "박근혜에게 뭐..."였다는 점도 '왜곡보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음성 파일에서 이 전 본부장 등은 '만약에' '저희들이 추진한다면'이라는 가정적 표현을 수차례 사용했지만, 대화록에는 이 같은 표현이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 기자는 '도움을'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맥락을 고려해 복원한 것일 뿐이다. 일반적인 복원 방식"이라며 "대화 자체가 (열흘 뒤의 기자회견을 전제로 한) 가정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것 아닌가. 전반적으로 미래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대화내용에서 '만약에'라는 표현이 없다는 것을 굳이 문제 삼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성진 기자 측 김형태 변호사는 "대화록에서 중요한 것은 '청계광장'인지 '대형광장'인지가 아니라 (최필립 이사장 등이)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을 정수장학회 지분 처리를 극비리에 논의해 불과 열흘 이후인 10월 19일에 대중들에게 발표하려 했다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들이 직접 알렸을 내용을 기자가 먼저 보도했다고 해서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게 아니라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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