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발 쓰나미로 실종된 것 같던 4.27 재보선에 대한 관심이 뒤늦게 불붙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분당 출마선언으로 전국 4개 지역이 모두 관심지역으로 떠올랐다. 분당은 전·현직 여야 대표의 대결이라는 점과 강원은 전현직 MBC 사장간의 대결이라는 점, 그리고 김해와 순천은 각각 친노세력과 난닝구의 부활이 관전 포인트다.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펼쳐진다는 점에서 지난 지방선거처럼 중간평가적인 성격이 있지만 유시민을 둘러싼 야당 내부의 역학관계도 흥미롭다. 언제부턴가 유시민이라는 이름 석 자가 곧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되어버렸다. 한 번도 조용한 적 없던 이슈메이커지만 그를 향한 공격은 여당이 아닌 야권 내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과거 피아를 가리지 않고 독설을 난사한 경력으로 볼 때 자업자득인 셈이다. 하지만 난처한 것은 그가 아니라 민주당이다. 명색이 제1야당이면서 매번 유시민 하나를 극복하지 못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시민식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이 민주당인 것을.

민주당이 그를 버거워 하는 것은 비록 싸가지 없을지언정 틀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옳은 소리를 거북하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시민도 문제지만 정직한 논리구조로 접근하면 속수무책으로 깨지는 민주당은 더 큰 문제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유시민은 정동영에게 ‘신의 없는 정치’를 한다고 공격했다. 바로 유시민 특유의 ‘싸가지 없는 정치’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민주당의 신의 없는 정치다.

노무현 사후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내세우며 관장사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정상적 두뇌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은 쪽집게 과외 교사처럼 같이 놀아서는 안 될 사람을 콕콕 찍어주고 갔다. 대표적 인물이 손학규다. 노무현의 독백을 들어보면 아무리 야당인사 시절이지만 자신을 ‘경포대’로 비난하던 손학규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런 사적 감정을 접어 두고라도 ‘바보’같은 정치적 행보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노무현이 양지만 찾아다니는 철새를 용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이 그를 당대표로 뽑았으니 노무현의 정치적 아들이라면 함께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이들의 행태는 그렇다손 치자. 하지만 이광재의 경우는 과연 친노 집단 역시도 다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가 뭐래도 노무현의 오른팔이었다. 잠시나마 강원지사직에 있었던 것은 노무현에 대한 동정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광재는 차기 대선에서 손학규를 밀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노무현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물이 주군이 남긴 유훈은 도대체 어디로 들은 것일까? 지난 지방선거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왜 한나라당에는 이광재나 안희정 같은 인물이 없느냐고 한탄했다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차라리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지난 주군의 무덤에 풀이 자라기도 전에 새로운 주군으로 말을 갈아타는 인사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한나라당의 적대적 공범자들

손학규의 분당 출마선언 직후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30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 대단한 30대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최근 선거에서 386세대를 능가하는 진보의 전위부대로 평가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가장 분노했던 것 또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진보세력으로 규정한다면 그 사전적 정의도 다시 내려야 옳을 듯하다. 반 보수세력, 반 한나라당세력이라면 모를까 손학규의 상품성에 열광하는 이들을 진보세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할까?

손학규가 전통적 여권 지지층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는 조사를 보자. 지난 4월4일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손학규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15.6%를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주목할 것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경기지사를 지지했던 유권자중 30.4%가 손학규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전·현직 경기지사라는 점 외에도 민주화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 전향한 이력 등 두 사람의 이미지가 상당부분 중첩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고 보면 손학규의 상품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분열을 완화하고 정치적 통일을 이룩할 인물이다. 여론조사대로라면 이념과 세대 간 갈등을 모두 무화시켜 버리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지금부터 김문수에 공을 들일 차례다. 어차피 자력으로 능력 있는 대선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이니 차기에는 손학규를 밀고, 차차기에는 김문수를 빼오면 된다.

하지만 만일 지금 이대로 손학규가 보궐선거에 승리하고, 여세를 몰아 내년 대권까지도 접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승리일까?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승리는 확실한데, 그것을 진보진영, 혹은 민주화세력의 승리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손학규는 바보 노무현이 걸었던 길과 정확히 반대되는 길을 걸어왔다. 재임 중의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한때의 시대정신을 흡수한 인물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그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외길을 걸은데 대한 대중들의 평가 덕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손학규는 노무현의 대칭적 존재로서 ‘천재 손학규’라고 불러줘야 옳다. 절대 손해 보는 일 하지 않고 이익만을 챙겨 왔으니 말이다.

이런 인물이 한국처럼 분열된 사회에서 정당과 세대를 초월해 지지를 넓혀가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손학규가 김대중처럼 위험하지도, 노무현처럼 짜증나지도 않은 지극히 한나라당스러운 인물인 탓이다. 지금 손학규에 대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여론조사는 바로 중산층집단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천당 밑 분당’이라거나 ‘분당우파’로 지칭되는 것은 괜한 명성이 아니다. 당연히 안정희구세력이자 경제적 요인에 민감한 이들의 입맛에 손학규는 더 없이 들어맞는 인물이다. 하지만 서민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에서 이런 인물이 후보로 나와 대권을 잡는다면 그는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보낸 트로이 목마인가? 진보가 보수에게? 보수가 진보에게?

민주당이 현재처럼 정치모리배들의 서식지가 된 것은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김대중의 서거 직후 민주당 대표였던 정세균은 그를 ‘어버이’에 비유했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어버이라는 단어에서 북한의 수령체제를 연상하며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정서가 민주당 내에서는 전혀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당초 민주당이 김대중의 집권을 위한 사당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민주화세력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내부적 절차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 그들이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걸어온 행태는 바로 그 사기업의 오너와 같은 존재가 사라지면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한 탓이다. 결국 신의 없고 잇속만 챙기려드는 야바위꾼들이 유시민에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민주당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한 정당에 대해 냉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진보, 평화, 개혁 같은 화려한 대의명분은 더 이상 그들의 몫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야권연대의 목소리는 시민단체를 가장한 모리배들의 술수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연대하거나 통합해야 할 대상은 한나라당이다. 화려한 대의명분, 아름다운 구호는 진정으로 그 가치를 실현하는 집단에게 되돌려 주도록 하자.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는 대국민 사기극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죽어야 민주주의가 산다. 민주당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