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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돈관 편집위원 =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는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첫 구절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고 애타게 '님'을 찾는다.

송강의 가사와 만해의 시에 나오는 '님'은 현재의 국어 표기법대로라면 '임'으로 쓰는 것이 옳다.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임'이라고 하면 어쩐지 그런 뉘앙스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님'이라고 해야 더 그럴듯해지는 느낌이다. '가신 님'과 '가신 임', 어느 쪽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가 보라.

이 '님'이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어떤 명사 뒤에 붙으면, 상대를 높이는 뜻이 된다는 게 국어사전의 설명이다. 장관님, 사장님, 변호사님 하는 식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 이름 뒤에도 '님'을 붙여 '아무개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TV나 라디오에서는 'ID 1234님'이라는 식의 호칭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상당히 모자라는 처녀가 있었다. 매파의 농간으로 어떻게 짝이 지어져 시집을 가게 됐는데 부모의 걱정이 태산이다. 시부모와 남편 모시는 법이랑 살림하는 법을 일러주고 다시 일러줘도 그때만 "알았다니깐!" 해놓고 금방 까먹고 만다. 그렇지만 시부모에게 꼭 '님'자를 붙여서 부르라는 가르침은 시집가는 날까지 그치지 않는다.

알아 들었거나 못 알아 들었거나 시집을 가 새색씨가 된 처녀.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남편과 겸상을 한 시아버지 머리에 검불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친정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님'자 돌림으로 한 마디 하기를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네" 이랬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높임의 뜻을 갖는 접미사 '~님'으로 상징되는 불필요하고 과장된 경어체의 오.남용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명사는 그 자체에 이미 상대를 높여주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굳이 '님'자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장(長)'자 돌림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다니는 회사의 사장에게 대놓고 '김 사장' '이 사장' 이렇게 부를 수 있는가? 만약 내가 사장인데 상무가 그런 식의 호칭을 사용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또 다른 사람에게 나의 회사 사장을 언급할 때 '우리 회사 아무개 사장님'이라고 꼬박꼬박 '님'자를 붙이는가? 답은 뻔하다. 2인칭과 3인칭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언어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게에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는 1980년 어떤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4차원의 분석모델, 즉 ▲개인주의 문화 : 집단주의 문화 ▲권력차이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 남성적 문화 : 여성적 문화 등을 제시했다. 이어 1988년에는 여기에 '유교적 동력(Confusion dynamism)'을 추가해 5차원 모델을 완성했다. 통계학적 기법을 이용한 실증적 조사.연구에 의한 것이었다.

그중 '권력차이(Power Distance)'란 사회적인 분배가 구성원들 간에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나타낸다. 이것은 구성원의 정신구조에 내재된 권력의 중앙집권화와 독재정치의 정도를 보여준다. 집단주의적인 나라의 경우 커다란 권력격차를 보이지만 개인주의적인 나라를 보면 권력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 이 권력차이를 통해 구성원이 권력의 불공평한 배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가도 엿볼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의 한국이 어떤 모습이었을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종속적 의존관계로 존재하고, 직장 상사를 아버지처럼, 친척의 윗사람처럼 모시는 등의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홉스테드의 조사에서는 당연히 인도, 나이지리아, 멕시코, 중국과 함께 한국도 권력차이가 큰 문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화는 창의력을 중시하고 격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수평사회와 달리 ▲경험을 중시하는 수직사회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격식 고수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와 호칭 사용 등의 특징을 드러낸다. 권력에 대한 견제도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위계질서가 사람 간의 관계를 결정한다. 에드워드 홀은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이런 관계 중심의 문화를 '고맥락문화(high context)'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며칠 전,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 부부의 호칭을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로 통일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님'자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권위적이거나 군림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소신에 따라 이런 결정을 했으나 '현장'에서는 '대통령님' '여사님'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호칭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 '아무개 대통령 각하'였다.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을 언급할 때도 그랬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 때에 이르러 '각하'라는 호칭이 권위주의의 상징이라 하여 '대통령님'을 공식 호칭으로 삼아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이번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님'자까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전에는 대통령이 어떤 공식식장에 도착하면 "대통령 내외분(그 전에는 대통령 각하 내외분)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하고, 장내의 손님들은 '기립'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2월25일 취임식 때는 이런 알림 방송이 없었고, 손님들은 당연히 기립하지 않아도 됐다. 3.1절 기념식 때는 "대통령 내외분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라는 방송은 있었으나 기립은 없었다.

청와대 사람들이나 정부 각 부처의 수장 등이 어떤 상대와 대통령을 3인칭으로 언급할 때는 뭐라고 할까? 그냥 '대통령'이라고 할까, 아니면 '대통령님'이라고 할까? 내부의 모든 보고용 서류에서는 '님'자를 빼기로 했다고 하고, '현장'에서는 '대통령님'이라고 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들의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 "대통령 내외분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라는 문구를 놓고 보자. '대통령님'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한 마당에 '~께서', '계십니다'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명박 대통령 내외분이 입장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대통령 내외분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선진화와 함께 실용의 시대, 적극적인 변화, 개방.자율.창의를 강조했다. 권위적이거나 군림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님'자를 뺀 것은 겉으로 아주 작은 변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상징성만은 작은 듯 작지 않다. 내친 김에 '~께서'를 '~이'로, '계십니다'를 '있습니다'로 바꾸면 어떨까?

d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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