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 출간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88년 척 피니를 미국 갑부 23위에 올려놓고 그의 재산이 13억 달러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오보였다. 척 피니는 1982년 애틀랜틱 자선재단을 만들어 가족의 재산 1천5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1984년에는 바하마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애틀랜틱 재단에 양도하는 서류에 서명했다.
그가 당시 기부한 재산의 규모는 정확하게 평가되지 않았지만 5억-10억 달러 사이였다. 세계적인 면세 체인사업체 듀티프리쇼퍼스(DFS)의 공동창업자인 그는 그렇게 53세 때 자신의 재산을 포기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연봉을 받기 때문에 그 기부로 가난뱅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억만장자 대열에서 탈락하고 500만 달러 정도의 순자산만 가진 사람이 됐다. 따라서 포브스의 기사는 오보였다.
피니가 지금까지 약 25년간 기부한 돈은 4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철저히 기부자를 밝히지 않는 익명의 자선가로 활동했다.
그의 신분이 드러난 것은 1997년이었다. 그가 재단에서 약속한 지원금을 내기 위해 DFS의 지분을 팔기로 하면서 동업자들과의 이해 관계가 얽히는 바람에 DFS의 실체가 드러났고 그의 조용한 기부행위도 공개됐다.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물푸레 펴냄)는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보다 훨씬 앞서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기'의 모델을 제시한 척 피니의 극적인 성공기와 더 극적인 기부사례를 들려주는 책이다.
책을 쓴 아일랜드 기자 코너 오클리어리는 피니가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아일랜드 금언이 있다고 전한다. 76세의 피니는 지금도 남은 4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두 기부할 계획을 실천 중이다.
책은 피니가 보여줬던 기가 막힌 '돈벌이 본능'과 젊어서부터 자기 인생을 디자인한 용의주도함, 부에 대한 집착을 한순간에 놓아버리는 비범함을 피니의 육성을 담아 생생하게 보여준다.
뉴저지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을 전후로 4년간 주일 미군기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군인장학금을 확보했고 1952년 코넬대에 세계 최초로 생겼던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호텔에 취직하는 편안한 삶을 택하는 대신 프랑스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등을 다니면서 주류 면세사업을 시작으로 DFS를 일궈내게 된다.
이 과정에는 코넬대 동문들과 아일랜드 인맥이 적극적으로 활용됐고, 군대생활에서 부지런히 익힌 일본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실력도 제대로 써먹었다.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내게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에"에 기부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이코노미클래스 비행기를 타고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한다.
그는 늘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원제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The Billionaire Who Wasn't)'.이순영 옮김. 45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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