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 이명박 선생이 영도할 차기 정부의 공식 명칭이 ‘실용정부’로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선수 특유의 직감으로 얘기하면 이는 명백히 잘못된 명칭이다. Brand Naming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Category의 창출에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재기 넘친 카피라이터들의 재치 있는 말장난쯤으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본질은 예쁜 이름을 짓는 데 있지 않다. 자사가 출시하는 상품이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범주의 시장을 탄생시켰음을 알리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옳다. 특정정권의 정체성을 ○○정부로 규정하는 정치행위는 김영삼 정권 시기부터 비롯되었다. 공화국의 숫자로 정권을 구분하던 기존방식에 변화를 준 결과다.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 출발한 이와 같은 관행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를 거쳐, 노무현의 참여정부로 이어져 내려왔다.
청계 선생은 브랜드의 가치와 활용전략에 관해 일자무식인 인상이다. CEO 출신 맞아?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정권까지 소급되는 역대 민주화 정권들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띠고서 출범한다. 표면적으로는 잃어버린 10년이지만, 사실상은 잃어버린 15년인 상실의 시대를 보상받겠다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고토수복 욕구가 청계 이명박 선생을 대한민국 제17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연결되는 일련의 정부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는 방향으로 정부 명칭을 정하는 게 현명했다.
어감의 측면에서도 실용정부는 매우 좋지 않다. 냉소적이고 자포자기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명박 정권 밑에서는 돈이 없으면 바보멍청이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라는 살풍경한 세태를 자조적으로 풍자하는 용도로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 가난한 청춘남녀들은 애인에게 바람을 맞고 만다는 ‘실연정부’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한 풍토를 극단적으로 고착시킨 부도덕한 집권세력을 원망하는 ‘실형정부’ 따위로 희화화될 개연성이 짙은 것이다.
실용정부가 철회 불가능한 명칭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최종 명칭이 아니라면 더 지체하지 말고 명칭 변경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마땅하다. 실용주의의 기원과 타당성을 둘러싼 난해한 학문적 논쟁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에 언급된 이유들만으로 실용정부가 부적절한 명칭임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을 터.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자면 다음 정부의 명칭은 그냥 ‘이명박 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무현 정권의 커다란 문제점으로 비판되었던 무책임함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정부 명칭에 대통령 본인의 실명을 삽입함으로써 진정성 있게 과시할 수가 있으리라. 정권과 정부 가운데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하느냐의 오랜 논란 역시 말끔히 끝낼 수 있을 테고.
족발집 같은 요식업소들에서는 주인 할머니의 얼굴과 이름을 간판에 새겨 넣는 경우가 흔하다.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음식점조차 이러하거늘 하물며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거는 일을 망설여서야 되겠는가?
청계 이명박 선생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특검수사의 대상까지 된 데는 자기 이름을 웬만해서는 내걸지 않으려는 겸손함 아닌 겸손함이 적잖이 작용했다. 때로는 지나친 겸손을 넘어 위장전입, 위장취업, 위장계열사 등의 시비들마저 빚기 일쑤였다. 다스도, 옵셔널벤처스도, 도곡동땅도, BBK도 결국은 소유주를 뚜렷이 밝히지 않은 점이 물의의 원인을 제공했다. 불미스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기 정부는 이명박이 설립한 정부임을 명확히 천명하라. 청계 선생께서는 실용정부라는 알쏭달쏭한 브랜드를 폐기하고 이명박 정부로 호칭을 정리하기 바란다.
실용정부! 가난하면 실연당해도 싸고, 돈 없으면 실형이나 살라는 조롱으로 서민들한테 들릴 기분 나쁜 명칭이다. 이명박 정부로 명칭을 바꾸면 만사 OK다. 이명박 정부가 싫거들랑 ‘청계정부’로 교체하던지. 실용정부, 청계정부, 이명박 정부. 셋 중에서 어떤 명칭이 가장 상식적일까? 답은 벌써 나와 있다.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사람도, 나라도 바로 설 수 없다.
- 추신 : 독자들의 긴급한 지적을 받고 최신뉴스를 검색해보니 이명박 정부로 개칭하기로 했단다. 혹시 청계 이명박 선생이 국민원로의 도플갱어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청계 선생 있고, 청계 선생 속에 나 있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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