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레바논 북부 도시 트리폴리와 인근의 나흐르 알-바리드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시작된 레바논 군과 팔레스타인 민병조직 간의 충돌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간의 현지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번 사태는 레바논 군이 19일 트리폴리 인근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 용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나흐르 알-바리드에 근거지를 둔 파타 알-이슬람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100∼200명의 민병대원을 거느린 것으로 알려진 파타 알-이슬람은 레바논 군의 선제공격에 반격으로 맞서 전면적인 무력충돌로 비화했다.
따라서 이번 충돌을 유발한 쪽은 레바논 정부라고 볼 수 있다.
파타 알-이슬람 요원들이 은행강도 사건에 실제로 개입했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된 원인은 정치적인 논리에 파묻히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 정부가 파타 알-이슬람을 팔레스타인 난민촌 안에서 용인되는 민병조직이 아닌 테러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이번 충돌이 레바논 군과 테러조직 간의 싸움으로 변질한 것이다.
◇레바논 정부, 미국에 대규모 군사원조 요청 =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 정부가 미국에 군사원조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레바논 정부가 파타 알-이슬람을 진압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2억8천만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요청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레바논 군은 지금 야만적인 일단의 극단주의자들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며 이번 충돌 사태의 와중에 이뤄진 레바논 정부의 요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원조 내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난해 레바논에 4천만 달러 상당의 군사장비와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올해 레바논 군사원조 예산으로 500만 달러를 책정해 놓은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액수는 엄청난 규모이다.
레바논 군은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이 자국을 침공했을 때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일으킨 전쟁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한편 아랍연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레바논 군에 군사 지원과 장비를 제공한 아랍국가들에 감사한다며 현 상황에서는 아랍국가들이 이러한 지원을 계속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성명의 내용만으로는 아랍국들이 이번 충돌사태가 시작된 후 레바논에 군사지원을 제공했는 지 여부가 불분명하지만 추가 지원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파타 알-이슬람에 집중되는 비난 = 파타 알-이슬람은 22일 휴전을 제안했지만 레바논 군이 거부해 사흘째 교전이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유엔 구호품을 실은 차량이 나흐르 알-바리드 난민촌에 접근했을 때 교전이 벌어져 구호품을 받으려던 난민 2명이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레바논 정부를 지지하면서 파타 알-이슬람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엔은 미셸 몽타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레바논 군과 경찰에 대한 범죄적인 공격행위를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파타 알-이슬람을 비난했다.
레바논을 방문 중인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도 레바논 정부가 테러 조직과 싸우고 있다며 레바논 군의 파타 알-이슬람 소탕작전을 옹호했다.
이집트, 쿠웨이트, 요르단 등 친미 아랍정부들도 일제히 파타 알-이슬람을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하고 레바논 정부와 군이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성난 팔레스타인 난민들 = 레바논 군의 공격이 집중된 나흐르 알-바리드 난민촌 주민들은 22일 저녁 교전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본격적인 탈출을 시작했다.
현지 유엔 구호 관리들은 이날 밤 사이 난민촌 주민 4만 명 가운데 1만 명 정도가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 군에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레바논 군의 공격이 집중된 나흐르 알-바리드 난민촌의 다문 지역에 살아온 라미 마흐무드는 로이터통신에 "레바논 군이 모든 곳을 공격했다"며 이스라엘 군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흐무드 알-힌디는 "지난해 난민촌 근처의 레바논 군 초소가 이스라엘 군의 폭격을 받았을 때 주민들이 모두 달려가 도와줬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이런 것이냐"며 레바논 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규탄했다.
자밀라 아흐마드는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해놓고 어떻게 무장해제를 요구할 수 있느냐"며 "우리는 고향(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절대 무기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내의 다른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는 이날 레바논 군을 규탄하는 시위가 펼쳐졌다.
아랍권 신문인 알-쿠드스 알-아라비의 편집장인 압델 바리 아트완은 AP 통신 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건장한 어른이 자신을 모욕한 4세 어린이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고 레바논 군의 과잉대응을 비난하면서 알-카에다가 레바논 내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이로=연합뉴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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