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방위에서 자신을 밀착보좌하던 김양건 참사를 신임 통일전선부장에 임명함에 따라 작년 핵실험 이후 소원했던 남북관계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상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김양건 부장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김-김 라인'을 구축해 남북문제에서 실시간으로 최고통치자의 결심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용순 전 부장이 2003년 10월 교통사고로 사망한데 이어 후임 림동옥 부장마저 작년 8월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통일부 등 국내 대북관련 부처에서는 김 위원장에게 이어지는 직보라인의 부재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작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무산, 경의선 열차시험운행의 갑작스런 중단 등도 모두 림동옥 부장의 투병 등 직보라인의 부재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사회의 특성상 김정일 위원장과의 소통, 최고정책결정 부서인 국방위원회의 흐름이 중요할 것"이라며 "김 신임 부장의 기용은 이러한 측면까지도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신임 김 부장은 노동당 국제부에서 일을 시작해 국제부 부부장, 국제부장, 국방위 참사 등을 거치면서 대 중국 외교와 6자회담에도 깊숙이 간여했던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국제정세 및 북미관계와 조율된 남북관계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임명 시점이 '2.13합의'가 나오고 1개월 정도가 지난 지난달 중순께라는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핵문제와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2005년 6.17면담에도 배석했고 지난 3월에는 김 위원장의 중국 대사관 방문에도 동행했으며 국방위 참사 자격으로 6자회담과 관련된 사안을 실시간으로 챙겨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이나 중국 대표단의 평양 방문 때는 관련된 사안을 직접 챙길 정도로 대 중국 외교에서 전문성을 보여줬다.
북한의 대남정책 추진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용순 전 비서도 당 국제부장 출신으로 1991년에는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김양건 신임 부장의 기용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기대를 낳고 있다.
고 교수는 "북한이 대외관계에 밝은 김 부장을 임명한 것은 그동안 공작의 성격이 강했던 남북관계 업무를 정상국가 차원에서 다루려는 의도도 담긴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특히 신임 김양건 부장은 김용순 전 부장 등과는 달리 외향적이라기 보다는 전문 외교관료 출신으로 조용하면서도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학자 스타일로 알려져 향후 남북관계가 어떠한 패턴으로 진행될지도 주목된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국제문제에 해박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기용으로 남북회담에서도 핵문제나 6자회담, 북미관계 등의 이슈가 다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당 국제부에서만 주로 활동하면서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김 부장이 2004년 이후 몇 년 사이 국방위 참사를 거쳐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세로 떠오름에 따라 발탁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국방위원회에 근무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는 것이 발탁 배경의 하나이겠지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새 부인인 김 옥 국방위 과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인사가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 부인인 고영희씨 사망 이후 후계문제가 김옥씨의 영향력 등으로 쏙 들어간 상황에서 김옥씨는 권력의 핵심부에 자신의 측근들을 앉히는 등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대부터 김 위원장의 업무를 보좌한 김옥씨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2000년 10월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동행하기도 했고 김정일 위원장과도 단순히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국정 전반을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 씨가 국방위원회에서 함께 일해온 김양건 부장을 천거해 기용함으로써 남북문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