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딩땐 동네에 30살쯤 되보이는 거지가 한사람 있었습니다.
신발은 튼튼하게는 생겼지만 낡은 워커를 신고 손에 마늘을 항상
들고 다니며 수시로 까먹는 거지... 마늘을 먹은 입으로 내 앞에
서서 "돈좀 줘"할때면 콧속으로 들어오는 매운 마늘냄새.
머리도 며칠 아니 몇 달을 안 감았는지 검은 머리가 아예 희게 변한
그 아저씨는 우리 동네의 불쾌함이었습니다. 긴 머리에서는 금새라도
각종의 벌레들이 기어나올 것 같았던...
이 아저씨는 주로 우리들의 놀림거리였습니다.
지퍼를 열어놓고 다니는 거지아저씨를 보며 우리들은,
우리들: 삼룡아~ 남대문 열렸다~
아저씨: 히히~ 히히~
친구넘:(십원짜리 하나를 보이며) 삼룡아~ 돈줄까?
아저씨: 히히~ 히히~ 응 응 줘라...
우리들: 어떻게 하나 한 번 던져 봐!!
친구넘이 휙 던진 십원짜리 동전을 마치 어린아이가 좋아서 달려가듯
깡총깡총 뛰어서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는 "고마워"라며 연신 웃음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아주 희한한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려 물난리가 났을 땐데, 방둑에 모래주머니를 쌓는
사람들 틈에 삼룡이라 불리우는 거지 아저씨가 구슬땀을 흘리며
모래 주머니를 쌓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는...
나: 삼룡아, 왜 모래주머니를 날러?
아저씨: 히히~ 나 힘세다고 하래 히히~
결국, 그날 아저씨는 모래주머니를 끝까지 날랐고, 비는 계속 퍼부었습니다.
드디어, 전기도 끊기고 수도물도 끊긴 무서운 날이 이틀쯤 지속되었을까?
더욱 더 희한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아파트단지 앞에는 ´14동´이라 일컫는 10여 가구쯤 되는 판자촌 주민이
살았었는데 그나마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가 몽땅 물에 잠겼었습니다.
헌데, 쌀이며, 라면등을 분주히 날라주는 사람이 다름아닌 삼룡이라 불리우는
거지 아저씨 였습니다. "수퍼에서 배달도 하네?"란 생각으로 아저씨의 행동을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판자촌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거지 아저씨에게 고마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 아줌마, 삼룡이가 수퍼에 취직했대요?
아줌마: 요 나쁜 놈! 나이도 어린 녀석이 삼룡이가 뭐야?
나: 에이, 다들 그렇게 부르잖아요? 삼룡이는 멍청해서 그런 거 몰라요.
아줌마: (어이없다는 듯) 너같은 놈보다 삼룡이가 백배 천배 낫다.
나: ?@#$???
아줌마: 삼룡이가 구걸한 돈으로 우릴 돕겠다고 라면이며 음료수며 다
사다준거야. 뭘 알기나 하고 떠들어야지?
거지 아저씨는 분주히 라면상자들을 나르고 있었고 그게 사실인지 확인을
해 봐야 했습니다.
나: 삼룡아, 아니...아저씨...
아저씨: 응?
나: 진짜루 삼룡, 아니 아저씨가 돈 낸거야? 아니 내신 거예요?
아저씨: 히히~ 나 돈 있다. 여기 아줌마들이 나한테 먹을 거랑
돈 많이 줬다.
나: 그래두 삼룡...아니 아저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저씨: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봐~ 많지?
나: 피~ 그래두 그렇지 여기 사람들만 사람들인가 뭐?
사주려면 아파트 사람들도 사 줘야지...
아저씨: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기 사는 사람들 보다는 여기 사람들이 더
배고프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정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동냥을 하며 모아온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삼룡이라 불리웠던 거지 아저씨. 13동까지 존재했던 아파트 단지의 입구를
사이에 두고 판자촌에서 빈민으로 살아가던 사람들과 삼룡이란 거지 아저씨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고, 아파트에 살았던 저였지만 고개가 숙여지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길에서 동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아저씨가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그럴 때 마다, 어떤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배부른 우리보다 더 잘 알았고 행동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그 아저씨의 모습에서 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삼룡이라 불리웠던 아저씨. 이 정도면 조금 특별한 거지가 아닐까요?
어딘가에서 마늘을 즐겨 드시고 계실거라 믿으며...
감성열전(닉네임)
출처:다요기 http://www.dayo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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