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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나 암 불구 내겐 불운이란 없어"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힘"
"새해엔 평범한 교수생활로 돌아가고싶다"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편집위원 = 수필가이며 번역문학가인 장영희 교수(서강대학교 영문과)에게 '불운(不運)'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는 듯하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 아주 어릴 때부터 목발을 집고 다닌 신체장애자다. 지금은 다 나아졌지만 두 해 전에는 느닷없이 찾아든 척추암으로 지난해 봄까지 오랜 기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척추암이라며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통보를 받고도 이상하게 놀라지 않았다는 그다. 오히려 웃음이 나오더라는 거다.
그러나 얼마 전 서강대학교 내 그의 방에서 마주한 장 교수는 '불운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장영희'라는 언론과 주변의 표현이나 시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요즘 저를 두고 '불운을 딛고 일어선 장영희', '희망의 상징' 이렇게 표현하는 게 굉장히 싫습니다. 저는 절대로 불운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반대입니다. 훌륭한 가족 사이에서 태어났구요. 신체장애란 단지 겉으로 보인다는 것일 뿐이에요. 수십억 인구 모두에게 물어보세요. 사랑을 못 받는다든지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다든지 누구 하나 장애가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건 더 슬픈 장애거든요. 희망이라는 것은 장영희만 가지는 특별한 힘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힘이에요."
그의 바로 옆에는 목발이 보디가드나 되듯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요즘 건강을 묻자 "저는 극적인 병만 걸려요. 소아마비나 암이라든지…. 나머지 소화불량이라든가, 편두통 이런 잔병은 없어요. 대단한 병,그러니까 영원히 신체장애가 된다든지…."라며 그의 말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또 크게 웃는다.
장 교수는 2006년에는 무척 바쁘게 지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늘 기본적으로는 강의준비에서부터 수필가로서, 번역문학가로서, 교과서 집필가로서, 아름다운 영미시를 일반에 널리 알리는 전도사로서 정신없이 보내긴 했지만.
우선 지난해에는 항암치료차 고통스럽게 병원을 들락날락했어야 했다. 그 와중에 봄과 여름에 '생일'과 '축복'이라는 두 권의 영미(英美) 시 산책 도서를 출판했다. 이들 시집은 나오자 마자 영미시집으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지난해 서점계의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장 교수는 또 화가 김점선 씨와 함께 신촌과 영동 세브란스병원에서 영미시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마감시간을 맞춰야 하는 외부원고로도 무척이나 바빴다.
"강의가 있어서 학교에 나오는 날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과 출판사 사람들이 한데 엉켜 저를 만나려고 이 방 앞 복도에 몰리는 바람에 한 때는 조교가 은행에서처럼 순서표를 나눠준 적도 있었어요.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까 서로 자기가 먼저 와서 기다렸다고 우기는 때도 생겨 할 수 없이 그런 방법을 썼죠." 얼마나 그가 바쁘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해프닝이다.
출판사 직원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제자들은 장 교수가 좀더 충실한 교육을 위해 방으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학생들이 기가 막히는 일이 있지 않는 한 교수방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또 과제물이 없으면 책을 읽지 않고 강의실에 들어오고 있구요. 그래서 과제물도 많이 주고 이 방에서 몇 명씩 모여 영어로 토론도 하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영문학과 입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일말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은 영문학과 입학생 100명 중에서 교수 되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요. 서너명 정도…. 대부분이 통역가, 외교관으로 또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어 배우러 왔다고 하면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죠. 어쨌든 언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문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고 '문학도 공부하니까 재미있더라'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저의 과제죠."
장 교수가 한 잡지사나 한 종합일간지 등을 통해 그간 소개해 온 주옥같은 영미시들의 독자 중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인이나 암 등 중병환자들이 많다. 마음의 아픔,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다.
"제 글을 읽었다는 재소자들로부터 편지가 많이 와요. 특히 청송교도소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분들이 쓰는 언어가 너무 아름답다는 걸 느껴요. 시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아주 대단하다는 걸 느끼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본인이 쓴 시를 보내주기도 하구요. 네 벽에 갇힌 상태이니까 역설적으로 마음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장 교수는 사실 지난해 영미시 산책 도서 '생일'을 출간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냈다. "교도소나 병원에서 생일을 맞는 사람들에게 케익과 함께 '생일' 책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 이 생각을 전달했는데 그 쪽에서 행정적인 절차나 인력부족 이유로 난색을 보이는 바람에 그냥 아쉬움만 남긴 채 실행에 옮기질 못했어요." 그래서 대신 한 것이 병원에서 한 시화전이다.
자신이 '희망의 상징'으로 얘기되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뭔가 희망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로 삶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 전 낸 그의 수필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척추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를 회상하면서 쓴 이런 대목의 글이 있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장 교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신체장애자를 배제하는 것을 당연시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가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도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어느 대학이나 장애인에게 시험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서강대가 유일하게 '시험은 다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보는 것'이라는 취지의 반응과 함께 응시를 허용했고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 글을 보면서 제가 환상적이고 감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학교에 가고 싶어도 받아주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학교에 갈까,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어요. 저 '메인스트림' 안에 내가 들어가야겠다고 한 생각이 저를 현실적으로 만들었어요.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이 싫었고 하나의 엄연한 사회인으로서 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만큼 그는 강인했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려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하자 미국 뉴욕주립대로 가 외국인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영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어 곧바로 모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게 된다.
자신이 밟아온 길 때문인지 그는 서강대에 입학한 신체장애학생들 중 일부 학업성취도가 낮은 제자들에게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한다. 서강대는 일찍부터 장애인 학생을 받아들이고 장 교수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시설이나 제도 면에서 장애인에 대해 배려가 다른 학교에 비해 사뭇 다르다.
"(이런 배려를) 악착같이 이용해야죠. 제가 우리 학교 장애인 학생 자문교수를 하고 있어요. 장애학생들을 특례입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학생들 중 학사경고를 받는 애들이 있어요. 이 사회는 '정글'이잖아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인식이 모자란 것 같아 답답해 죽겠어요."
강인하고 악착같지만 그는 정도 많고 눈물도 많다. 우연히 한 제자가 선행을 하는 것을 목격한 후 성적을 A를 주기도 했고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에는 마음이 아픈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 슬프다!"하며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장 교수는 이번 겨울방학에는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3주 가량의 미국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일이 너무 많이 밀린 탓이다. 미국 퓰리처상 수상작가 앤 타일러(Anne Tyler)의 소설 '아마추어 결혼(The Amateur Marriage)'을 포함해 3편 작품의 번역도 곧 마쳐야 한다. 올해 초여름에는 아직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수필집을 낼 계획이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삶의 감동, 기쁨을 다룬 글들이 대부분이란다.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쉽게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청소년 대상 문학가이드 책도 준비 중이다.
"올해는 강의나 저술활동 외에는 특별한 대외활동 같은 것은 계획하고 있지 않아요. 새해에는 가능하면 저의 원래 본분인 교수생활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지난 2-3년 간 투병생활 때문에 암환자 장영희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아주 평범한 교수 장영희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새해에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예의나 배려, 측은지심, 사랑 등을 다 합친 의미로서 컴패션(Compassion)을 가졌으면 한다는 희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영희(張英嬉) 교수는
1952년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강대학교 교수가 됐다. 전문 분야는 19세기 미국소설. 1994년 작고한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이자 수필가이며 번역문학가였던 장왕록(張旺祿) 박사가 그의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채택률 1위의 영어교과서를 집필했으며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내 생애 단 한 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의 수필집과 선친을 그리워하는 편지와 선친의 유고 등을 담은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펴냈다. 지난해에는 '생일'과 '축복' 등 2권의 영미시 산책 도서를 냈다.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를 비롯 많은 문학작품들을 번역했다. 한국문학번역상 수상. 올해도 수필집과 많은 번역서를 펴낼 계획이다.
kangfa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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