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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일본어판 번역]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

한일 상호 이해를 위한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 번역 프로젝트 (40)



※ 본 콘텐츠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 日本語版)’에 게재된,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 항목을 번역한 것이다(기준일자 2022년 9월 7일판, 번역 : 박재이).



가라유키상

(からゆきさん)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 唐行きさん)은 일본 큐슈(九州)에서 쓰던 말로 19세기 후반 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건너가 일한 일본인 노동자를 가리킨다. 해외 진출은 알선업자(제겡(女衒, 뚜쟁이))가 중개했다.






목차


1 어원


2 개요


3 가라유키상의 노동 조건


4 기타


5 관련 문헌

 



1 어원(語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치하던 시기에 지금의 오사카 도톤보리가와(道頓堀川) 북쪽 강가에 유곽이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589년(덴쇼(天正) 17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최초의 유곽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교토 니조야나기초(二条柳町)의 유곽을 만들었다. 


오사카와 교토의 유곽은 17세기 전반에 각각 신마치(新町) 유곽과 스자쿠노(朱雀野)(시마바라(島原)유곽)로 이전했다. 쇄국 시대가 되자 1639년(간에이(寛永) 16년) 무렵에는 서양과의 유일한 창구로 번영한 나가사키(長崎)에 마루야마(丸山) 유곽이 탄생했다.


에도 막부는 ‘시마하라의 난(島原の乱)’이 일어난 무렵에는 데지마(出島, 에도시대 일본과 무역관계에 있던 네덜란드를 위해 설치했던 무역 거주구)나 중국인 주거시설에 출입하는 자격을 제한했다. 하지만 마루야마 유곽의 유녀는 예외로 허용됐다. 데지마로 가는 유녀들은 ‘고모유키(紅毛行)’, 중국인 주거시설로 가는 유녀들은 ‘도진유키(唐人行)’라고 칭했다. 일본인 남성을 상대하는 ‘니혼유키(日本行)’ 유녀와는 명확히 구별되었으며 ‘도진유키’는 이 중국인을 상대하는 유녀들을 나타냈다.


“‘도진유키’ 유녀들은 대부분이 ‘쇄국’ 시대부터 오랫동안 중국인만을 상대해왔다……. 일단 일본인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게 되자 그녀들이 가장 빨리 해외로 나간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Tang Quan(唐権) ‘바다를 넘은 정사 – 일중문화교류비사(海を越えた艶ごと一日中文化交流秘史)’, 신세쓰샤(新説社), 2005, p121)


에도시대 무렵, 나가사키의 중국인 주거시설 인근에 있는 시마하라 주변에서는 ‘가라유키’라는 말이 생겼고 이 말이 ‘가라유키상’의 어원이 되었다. 시마하라 반도, 아마쿠사(天草)제도에서는 시마하라의 난이 일어난 후에 인구가 격감했다. 그 때문에 막부는 각 번에 아마쿠사, 시마하라로 농민들을 대규모로 이주시킬 것을 명령했다. 1643년에 5,000명 정도였던 아마쿠사 제도의 인구는 1659년(만지(万治) 2년)에는 16,000명으로 증가했다.


유곽에서는 소녀들의 인신매매가 일상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개인이 직접 매춘했기 때문에 본인이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전혀 본인의 죄가 아니다. 대부분은 아직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이미 팔려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누마타 지로(沼田次郎), 아라세 스스무(荒瀬進) 공역 폼페 일본 체류 견문기(ポンぺ日本滞在見聞記) 유쇼도(雄松堂), 1968)


이미 에도시대부터 나가사키의 외국인 무역업자를 통해서 일본인 여성은 처첩이나 매춘부로 동남아시아 등에 갔다고 간주되고 있다. 총계 만 단위의 가라유키상이 있었다고 한다.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의 조사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의 큐슈에서 창녀뿐만 아니라 해외로 돈을 벌러 간 남녀를 ‘가라유키’라고 불렀다(시베리아 철도 건설의 인부와 하와이 이민도 포함). 다이쇼(大正) 시대 무렵부터 주로 동남아시아로 간 창녀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쇼와 10년대에 영화 ‘가라유키상’(1937년)*이 상영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평론가 오야 소이치(大宅壮一)의 르포에 ‘가라유키상’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말은 아니었다. 야마자키 도모코(山崎朋子)가 쓴 ‘산다칸 8번 창관(サンダカン八番娼館)’(1972년)이 나온 이후 널리 알려졌다.


[* 사메지마 린타로(鮫島麟太郎) 원작. 다이쇼 시대 남양(南洋, 말레이, 필리핀군도)에서 고향인 시마바라(島原)로 돌아간 여성들에 대해서 마을 사람들이 '가라유키씨'로 부르며 차별을 하고, 이에 그녀들이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모여 사는 장면이 나온다.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 601호.]



2 개요(概要)


가라유키상으로서 해외로 떠난 일본인 여성은 대부분이 농촌, 어촌 등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을 해외 창관에 알선한 사람은 빈푸(嬪夫) 등으로 불리던 알선업자 제겡(뚜쟁이)들이다. 


제겡에 대한 기록으로 나가사키 출신의 무라오카 이헤이지(村岡伊平治)가 쓴 ‘자전(自伝)’이 있다. 제겡들은 가난한 농촌 등을 돌며 적당한 나이의 소녀를 찾아 해외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며 부모에게 현금을 건넸다. 제겡들은 소녀들을 매춘업자에게 넘겨서 품삯을 얻었다. 그런 품삯을 모으거나 투자를 받아 해외에서 직접 창관을 경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일본인 여성의 해외 진출은 당초 여론에서도 ‘낭자군(娘子軍)’(이들의 벌이가 자본이 되고, 또 그 인원이 일본인의 진출의 단서가 되어, 낭자군이라고 했다.)으로 선전해 메이지 말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인신매매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며 일본 내에서도 그녀들의 존재는 ‘국가의 수치’로 비난받았다. 1910년대에서 1920년대 사이(메이지 43년~쇼와 4년)에 해외의 일본 당국자는 일본인 매춘업소를 폐지하고 일본의 명성을 유지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가라유키상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달리 갱생책이 없어서 잔류한 사람도 있다.


가라유키상의 주요 목적지는 싱가포르, 중국, 홍콩, 필리핀, 보르네오,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지다. 더 멀리는 시베리아, 만주, 하와이, 북미(캘리포니아 등), 아프리카(탄자니아 잔지바르 등)로 간 일본인 여성의 사례도 있다.


메이지 일본의 제국주의 확대에 일본인 창녀가 수행한 역할은 학술적으로도 검토되고 있다(James Boyd (August 2005). “A Forgotten 'Hero': Kawahara Misako and Japan's Informal Imperialism in Mongolia during the Meiji Period” . Intersections: Gender, History and Culture in the Asian Context (11)).


바이칼호의 동쪽에 위치한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는 1860년대 이후 일본인 유녀와 상인이 이 지역 일본인 커뮤니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겐요샤(玄洋社)나 고쿠류카이(黒龍会)와 같은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러시아 극동 지역이나 만주의 일본인 매춘부들을 ‘아마존군’으로 미화해서 찬양하며 회원으로 등록했다. 또 블라디보스토크나 이르쿠츠크 주변에서는 일본인 창녀의 일정한 임무와 정보 수집이 이루어졌다.


청프전쟁(中仏戦争)에서는 가라유키상의 일본 여성 매춘부 시장이 형성되어 결국 1908년에는 인도차이나의 일본인 인구 대부분을 매춘부가 차지하게 되었다(Saigoneer. “‘Photos The Japanese Prostitutes Of Colonial Vietnam’”. Saigoneer).


19세기 후반 일본의 소녀와 여성은 매춘에 팔려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서 홍콩,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의 도시로 인신매매 당해 태평양, 동남아시아, 서호주 등으로 보내졌고 그녀들은 ‘가라유키상’이라고 불렸다. 서호주에서는 이러한 일본인 매춘부들이 장사를 하거나 다른 활동을 했는데 대부분은 중국인 남성이나 일본인 남성을 남편으로 삼거나 일부 소수는 말레이인, 필리핀인, 유럽인을 남편으로 삼았다.


조선이나 중국의 항구에서는 일본 국민에게 여권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가라유키상’으로 번 돈이 송금되어 일본 경제에 공헌했다는 점을 일본 정부가 인식했기 때문에 일본의 소녀들은 쉽게 해외에서 매매되었다. 1919년에 중국이 일본 제품을 보이콧해서 ‘가라유키상’이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에 더욱더 의지하게 되었다.


보르네오섬 원주민, 말레이시아인,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등 모든 인종의 남자들이 산다칸의 일본인 창녀를 이용했다]. ‘구다쓰’에는 일본인 매춘업소 2군데가 있었고 중국인의 매춘업소는 없었다. 산다칸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9개의 매춘업소가 있었으며 산다칸 매춘업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국 통치 시대에 일본과 필리핀의 경제 관계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1929년에는 일본이 미국에 이어 필리핀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경제 투자에 따라 상인이나 정원사, 일본인 창부(가라유키상) 등을 중심으로 하여 필리핀으로 대규모 이민이 이뤄졌다. 민다나오섬의 다바오에는 당시 2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살았다.


1890년부터 1894년까지 싱가포르는 무라오카 이헤이지를 통해 일본에서 인신매매 당한 일본인 여성 3,222명을 받아들였다. 싱가포르나 다른 목적지로 인신매매되기 전에 일본인 여성은 수 개월간 홍콩에서 구속당했다. 일본의 관리인인 사토(佐藤)는 1889년에 나가사키에서 다카다 도쿠지로(高田徳次郎)가 홍콩을 경유해 여성 5명을 인신매매하며 “한 명을 말레이인 이발소에 50파운드에 팔고, 두 명을 중국인에게 40파운드에 팔았으며 한 명을 첩으로 삼고 다섯 명을 창녀로 일하게 했다”고 말했다. 사토는 여성들이 “조국이 수치스러워할 만한 부끄러운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호주 북부로 이민을 온 사람들 중 멜라네시아인, 동남아시아인, 중국인은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일본인은 여성을 포함한 특이한 이민집단이었다. 서호주나 동호주에서는 금광에서 일하는 중국인 남성에게 일본인 가라유키상이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북호주의 사탕수수, 진주, 광업 주변에서는 일본인 창녀가 카나카족, 말레이인, 중국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본인 창녀는 1887년에 처음으로 호주에 나타나 퀸즐랜드 주 일부, 호주 북부, 서부 등 호주의 식민지 개척자로 매춘산업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었으며 대일본제국의 성장은 가라유키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가난한 농민들이 사는 섬들은 가라유키상이 된 소녀들을 태평양이나 동남아시아로 보냈다. 큐슈의 화산성 산지는 농업에 적합하지 않아서 부모는 일곱 살짜리 딸들을 나가사키현이나 구마모토현의 제겡에게 팔아넘겼다. 하지만 5분의 4는 본인의 뜻에 반해서 강제로 매매되었고 5분의 1만 자신의 의지로 팔려 갔다.(Frances, Rae (2007). Selling Sex: A Hidden History of Prostitution (illustrated ed.). UNSW Press.)


인신매매 업자가 그녀들을 실어 나른 배는 상황이 심각해서 배의 일부에 숨겨놓아 질식사하는 소녀와 굶어 죽을 뻔한 소녀도 있었다. 살아남은 소녀들은 홍콩,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에서 창녀로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호주 등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1872년부터 1940년 무렵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매춘업소에서 수많은 일본인 매춘부(가라유키상)가 일했다.



3 가라유키상의 노동 조건(からゆきさんの労働条件)


‘산다칸 8번 창관’에서 묘사한 다이쇼 중기부터 쇼와 전기(1920~30년대 -역주)의 보르네오 사례의 경우, 창녀의 몫은 50%, 그중에서 빚 변제분이 25%, 나머지에서 기모노, 옷 등의 잡비를 내는 데 월 20명의 손님을 받아야 했다. “돈을 갚을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매달 백 엔 정도씩은 갚았다”고 하니 검사비를 합하면 월 130명에 해당한다(여담이지만 필리핀 정부의 위생국에서 검사할 경우, 주 1회 임질 검사, 월 1회 매독 검사를 합치면 그 잡비의 2배를 창녀가 부담해야 했다).


평소에 받는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항구에 배가 들어왔을 때가 어느 창관이든 손님으로 꽉 찼고 가장 심할 때는 하룻밤에 손님 30명을 받았다고 한다. 하룻밤에 10엔, 숙박하지 않으면 2엔이었다. 손님 한 명당 시간은 3분이나 5분, 그보다 더 걸릴 때는 할증요금이 규정이었다.


현지인을 손님으로 삼는 것은 선호하지 않았고 접객을 거부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은 죽고 싶어진다고 소감을 말했고 그럴 때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었다고 한다.



4 기타(その他)


• 파생어인 ‘자파유키상’은 1980년대 초에 생긴 조어로 20세기 후반, 반대로 아시아 국가에서 일본으로 건너와서 댄서, 가수, 호스티스, 스트리퍼 등으로 일하는 외국인 여성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 1972년 8월 1일 태국의 입관 당국은 일본인 여성이 관광객을 가장하여 입국해 마사지로 큰돈을 번다고 비난했다.



5 관련 문헌(関連文献)


• 무라오카 이헤이지 ‘무라오카 이헤이지 자전(村岡伊平治自伝)’ 난보샤(南方社), 1960년(고단샤(講談社)문고, 1987년, ISBN 978-4061840379)


• 야마자키 도모코 ‘산다칸 8번 창관 – 밑바닥 여성사 서장(サンダカン八番娼館 - 底辺女性史序章)’, 치쿠마쇼보(筑摩書房), 1972년(ISBN 978-4480810267)


• 야노 도루(矢野暢) ‘‘남진’의 계보(南進」の系譜)‘, 주오코론샤(中央公論社)’주오신서‘, 1975년


• 모리사키 카즈에 ‘가라유키상’, 아사히신문사, 1976년(아사히문고, 1980년, ISBN 978-4022602350)


• 야마자키 도모코 ‘아메유키상의 노래 : 야마다 와카의 기구한 생애(あめゆきさんの歌 : 山田わかの数奇なる生涯)’분게이순주(文藝春秋), 1978년


• 야마타니 데츠오(山谷哲夫 ) ‘자파유키상 – 여자들의 아시아(じゃぱゆきさん - 女たちのアジア)’, 정보센터출판국, 1983년(고단샤문고, 1992년, ISBN 978-4061853225)


• 쿠라하시 마사나오(倉橋正直) ‘북쪽의 가라유키상(北のからゆきさん)’, 교에이쇼보(共栄書房), 1989년(ISBN 4-7634-1005-9)


• 쿠라하시 마사나오 ‘가라유키상의 노래(からゆきさんの唄)’, 교에이쇼보, 1990년(ISBN 4-7634-1009-1)


• 쿠라하시 마사나오 ‘시마하라의 가라유키상 – 기승 히로타 겐쇼와 대사당(島原のからゆきさん - 寄僧・広田言証と大師堂)’, 교에에쇼보, 1993년(ISBN 4-7634-1012-1)


• 시라이시 겐지(白石顕二) ‘잔지바르의 낭자군(ザンジバルの娘子軍)’, 사회사상사, 1995년(ISBN 978-4390115339)


• 야마다 메이코(山田盟子) ‘파도여 말해다오- 북미 가라유키상 이야기(波よ語っておくれ - 北米からゆきさん物語)’, 리틀걸리버, 2001년(ISBN 978-4947683502)


• 구도 미요코(工藤美代子) ‘캐나다 기루에 내리는 눈은(カナダ遊妓楼に降る雪は)’(쇼분샤(晶文社) 1983년, 나중에 슈에이샤(集英社)문고)


• 다케모토 니나(嶽本新奈) ‘가라유키상 – 해외 ‘돈벌이’ 여성의 근대(からゆきさん - 海外 ‘出稼ぎ’ 女性の近代)’, 교에이쇼보, 2015년(ISBN 978-4-7634-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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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es, Rae (2007). Selling Sex: A Hidden History of Prostitution (illustrated ed.). UNSW Press. ISBN 978-0868409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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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mazaki, Tomoko (일본어) ‘산다칸의 묘(サンダカンの墓)’‘Tomb of Sandakan’ 분게이슌주, 1974년.


• Yamazaki, Tomoko (1985) (영어). The story of Yamada Waka: from prostitute to feminist pioneer. Kodansha International. ISBN 9780-870117336


• Yamazaki, Tomoko; Colligan-Taylor, Karen F. (2015) (영어). Sandakan Brothel No.8: Journey into the History of Lower-class Japanese Women: Journey into the History of Lower-class Japanese Women. Routledge. ISBN 978-1317460251


• 후카사쿠 미쓰사다(深作 光貞) ‘가라유키상’ ‘일본대백과전서(니포니카)’ 쇼가쿠칸(小学館), 고토뱅크, 2021a. 일본대백과전서(니포니카) ‘가라유키상’ - 고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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