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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제13차 집회, 세종대 호사카 유지 규탄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호사카 유지는 당당하면 토론에 나와라!”

한일우호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2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규탄 집회를 열었다.

국민행동은 그간 매주 월요일 오후에 고정 집회를 열었지만, 백은종 서울의 소리 대표를 비롯한 극좌세력에 속한 괴한들이 매주 집회를 지속적으로 방해함에 따라 이번 집회는 날짜와 시간을 긴급히 바꿔서 열었다.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는 “우리 집회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게 목적이지, 정체불명의 괴한들과 싸우려는 생각은 없다”며 “집회의 자유를 결코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집회 날짜와 시간을 고정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는 아무 다툼없이 잘 마무리됐고, 참가자들은 호사카 유지를 향해 ‘당당하면 직접 나와서 토론하자’고 일관되게 호소했다.

아래는 국민행동 집회 사진과 성명서.



















[제13차 국민행동 성명서] 호사카유지, 일본군 위안부가 어째서 성노예인가? ?


오늘날 국내적으로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고 대외적으로 한일 외교를 파탄지경에 빠트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는 정의기억연대가 있다. 1990년부터 위안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신대 문제를 내걸고 30년 가까이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정대협이 2018년 단체명을 뜻도 모호한 정의기억연대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냥 정의기억연대가 아니라 앞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이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의연이 말하는 일본군 성노예제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를 일컫는다”고 하였다. 범죄의 주체는 일본군, 피해자는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위안부를 성노예로 삼은 가해자는 일본군이며, 피해자는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인가?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UN인원위 보고서에는 “위안소라는 제도 설립의 공식적인 명분은 매춘 행위를 제도화하고, 그것을 통해 매춘 행위를 통제함으로써, 육군의 점령 지역에서 보고되는 강간 보고의 수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매춘 행위의 제도화’란 곧 공창제(公娼制)를 이른다. 공창제란 일본군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인허가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건강 진단과 성병 검진을 실시하는 합법적 매춘 제도다. 이는 국내에서 조선총독부 경찰이 요리옥이나 유곽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매춘 여성을 관리하는 것과 똑같다. 당시 경찰은 매춘 여성의 화대(花代)까지 직접 결정하고 조정하였다. 


군에서 관리하는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규정에 따라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며, 그곳에 종사하는 위안부도 필수 서류를 제출하여 인허가를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일본군이 관리하는 위안소에는 위안소 주인과 위안부뿐만 아니라 위안소를 이용하는 군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 있었으며, 군인들은 계급별 시간별로 정해진 요금을 지불해야만 위안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병사는 30분에 1.5엔, 하사관은 40분에 2엔, 장교는 50분에 3엔, 장교가 숙박할 경우는 8엔 수준이었다. 


1944년 10월, 미국 전쟁정보국 심리전팀이 작성한 ‘일본군 포로 심문 보고서 제49호’에는 위안부의 한 달 수입이 보통 1,500엔이라고 하였다. 1943년도 일본군 대장이 월 550엔, 이등병이 월 6엔을 받았으므로 대략 일본군 대장의 3배, 이등병의 250배에 달하는 엄청난 고소득이었다. 쿠마라스와미 UN인권위 보고서에는 위안부 한 명이 하루 60~70명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이를 1회 1.5엔으로 환산하더라도 60명이면 하루 90엔, 한 달 2,700엔이다. 50%를 포주의 몫이라 하더라도 이는 엄청난 고소득이다. 또 ‘그녀들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구매할 많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잘 살았으며, 옷, 신발, 담배, 화장품을 살 수 있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한 군인을 받지 않는 등 ‘고객을 거절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었다.’고도 하였다. 


노예(奴隸)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使役)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노예는 ‘성적 권리나 자유를 자기 의사에 따라 행사하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요금을 내야하고 요금을 내지 못하면 이용할 수 없었다. 고객을 거절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는 것은 제한적이나마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위안부가 일본군의 성노예라는 말인가? 


다음은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피해자로 적시한 부분이다. 호사카유지는 일본군 위안부의 구성을 일본인 여성 50%, 조선인 여성 40%, 기타 10%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가 편찬한 『증거자료집』의 난징 위안소 위안부에 대한 건강 검진 결과 보고서에는 4회 연인원이 일본인 1,007명, 조선인이 113명으로 무려 10배에 달한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과반을 일본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도 일본군의 성노예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호사카유지는 ‘취업 사기로 매춘을 강요당한 여성들은 '계약 기간 동안은 '성노예'였다.’고 하는가 하면, ‘적어도 계약 기간이 끝나거나 혹은 전차금을 모두 갚을 때까지는 여성들이 (포주의) 성노예였다’고 하여 일본군이 아닌 포주의 성노예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정의기억연대가 주장하고 있는 방향과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런 호사카의 포주 성노예설도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포주는 위안부와 계약에 따라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여 이윤을 취하는 영업자일 뿐 위안부를 지속적‧직접적으로 성적 학대를 행사하는 가해자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위안부가 포주의 성노예인가? 


더구나 호사카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일본군이 피지배 민족의 여성들을 총칼로 위협하면서 범한 성범죄’라고 하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과 조선총독부의 범죄’라고 하였다. 또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군,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에 의한 인신매매와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라고도 하였다. 호사카는 일본군 위안부제가 마치 반이 넘는 일본 여성은 제외하고 조선인 여성만 피해자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성가족부나 정의연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려면 조선인 여성만이 아니라 일본군 여성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왜 조선인 여성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며, 조선인 여성만 전쟁범죄 피해자인지 관련자는 답을 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여성가족부와 정의연에 답을 요구하기 전에 호사카유지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한다. 


1. 호사카유지가 인식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의 성노예인가, 아니면 포주의 성노예인가! 


2. 일본군 대장의 3배, 이등병의 250배의 고소득 영업자가 어떻게 성노예인가! 


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조선인 여성만 해당되는가, 아니면 일본인 여성도 해당되는가! 


호사카유지의 성실한 답변을 기대한다. 


2020. 12. 2. 

국사교과서연구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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